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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민족 전투원형개경(開京)전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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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경(開京)전투

시대 : 고려
시기 : 1362년(공민왕 11) 1월 17일~18일
전투지역 : 개성 일대
상세내용

1362년(공민왕 11) 1월 개경을 점령한 홍건적을 몰아내기 위해 고려군이 벌인 전투.

함종전투의 패배 이후 고려 조정이 충주로 파천하자 1360년 11월 24일 홍건적은 개경을 무혈로 점령하였다. 1362년 1월 17일 총병관 정세운이 지휘하는 20만의 고려군은 개경 성내에 주둔하고 있는 홍건적을 소탕하기 위한 공격을 개시하였다. 정세운은 각군 장수들이 거느린 대군을 개경 보정문 밖 동쪽 교외의 천수사 앞에 집결시켜 개경성을 포위하도록 하고, 자신은 임진강 나루 남쪽에 있는 도솔원에 진을 쳤다.

홍건적은 개경의 성곽이 견고하지 못한 점에 주의하고 소·말의 가죽을 성벽에 덮고 거기에 물을 뿌려 얼게 하였다. 때마침 진눈깨비가 내리는 악천후였으므로 고려군은 여러 차례의 공성작전에도 불구하고 성을 쉽사리 함락시킬 수가 없었다.

몇 차례의 고려군의 공성작전을 격파하는 데 성공한 홍건적이 방심한 틈을 타서 개경 숭인문의 공략 임무를 분담한 이여경 부대의 호군 권희는 1월 18일 새벽 기병 수십 명을 이끌고 숭인문에 기습 돌격을 감행하였다. 불시에 기습을 받은 홍건적이 크게 당황하여 우왕좌왕하는 틈을 타서 고려군은 성벽 위로 기어 올라가 홍건적의 진내로 돌입하였다. 이와 같이 숭인문의 방어망이 돌파되고 고려군이 성 안으로 밀려들어가자 홍건적은 퇴로를 완전히 차단당한 가운데 성 중앙에 설치한 방책 안으로 들어가 저항을 계속하였다. 고려군은 방책에 접근하여 널판을 걸치고 방책을 뛰어넘어 홍건적의 진영 안으로 돌격하였고, 양쪽 군대 사이에 혼전이 벌어졌다.

그러나 고려군이 홍건적의 괴수 사류(沙劉)·관선생(關先生) 등을 잡아 목을 베면서 승세가 고려군측으로 기울자, 고려군은 개경성 동쪽의 숭인문과 동북쪽의 탄현문 일대의 포위망을 해제하여 홍건적의 퇴로를 열어주었다. 이에 파두반(破頭潘)을 비롯한 10여만 명의 홍건적 패잔병들은 개경성을 빠져 나와 북상을 거급하여 압록강을 건너 요동지방으로 달아났다.

개경전투에서 고려군은 무려 20만에 달하는 홍건적의 대부대를 포위 공격하여 결정적인 승리를 거둠으로써 홍건적의 침입을 근절시킬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