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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천(堤川)전투

시대 : 조선
시기 : 1896년 5월 23일~6월 8일
전투지역 : 충북 제천 일대
상세내용

1896년 5월 23일부터 6월 8일까지 제천 남산에서 벌어진 제천의병과 관군 사이에 벌어진 전투.

1895년 단발령이 내려지자 제천지역의 의병은 위정척사에 앞장섰던 유인석을 창의대장으로 추대하여 궐기하였다. 1896년 2월 17일 유인석 부대는 충주성 함락에 성공하였으나, 가흥과 수안보에 주둔하던 일본군 수비대와 관군의 충주성 탈환 공세에 밀려 3월 5일 충주성을 포기하고 다시 제천으로 이동하였다.

제천에 도착한 유인석 부대는 진영을 설치한 다음 원도상(元道常)을 제천 수성장으로 삼아 제천 본진을 지키도록 하고, 제천으로 접근하는 요지에 부대를 배치하여 방어하도록 하였다. 유인석 부대가 제천에 집결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문경지역의 이강년 부대 등 각처에서 활동하던 의병 부대들이 속속 제천으로 몰려들어 유인석 의병 진영에 합류하였다. 군세가 강화되자 유인석은 제천을 중심으로 하여 주위의 단양, 청풍, 원주, 영월, 평창, 정선 등에 수성장을 임명하고 해당 지역을 분장 관장하게 하였다. 그리고 제천으로 들어오는 요지에 병력 배치를 강화하여 관군측의 제천 진공에 대비하였다.


한편, 관군은 이때 경상도지역으로 후퇴하는 경기도 의병을 추격하여 충추지역에 도착하였다. 관군의 지휘관인 장기렴은 의병에게 해산과 귀순을 권유하고, 의병측은 관군에게 의병에 협력하도록 종용하는 서신을 보내어 서로 협상을 시도하였으나 실패하고 5월 23일부터 전투가 시작되었다. 관군은 남한강을 도하하여 황석촌(黃石村)으로 진출하여 북쪽 대덕산을 점령하고, 24일 날이 밝자 북창진 의병의 측면을 공격하였다. 이에 의병부대는 고교(高橋)로 후퇴하였고 제천 본진에서는 증원군을 보내 방어진을 보강하였다. 그러나 관군은 북창진~제천간의 도로 차단에 주력한 의병진을 다시 우회하여 제천에 직접 접근하였다.

25일 중군장 안승우(安承禹)는 제천의 병력을 집결시켜 관군과 최후의 결전을 시도하였으나 관군이 장기렴의 진두지휘 아래 남산을 공격하였다. 의병은 화승총을 이용하여 이에 맞섰으나 신식 소총으로 무장한 관군에게 밀려 패하고 말았다.

남산의 방어선이 무너지자 의병부대는 제천을 포기하고 단양, 영춘, 영월을 거쳐 6월 10일 원주로 이동하여 진영을 설치하고 충주·제천 등지의 군사를 모아 병력을 증강시켰다. 이때 여주의병과 춘천의병이 유인석 의병부대에 통합되었다. 유인석은 원용석(元容錫)을 새로이 중군장으로 임명하여 군세 확장에 박차를 가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