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홈
  • 문화원형 라이브러리
인쇄 문화원형 스크랩

홍주성(洪州城)전투

시대 : 조선
시기 : 1906년 5월 24일~31일
전투지역 : 충남 홍성
전쟁상대국 : 일본
관련유적 : 홍주성
상세내용

1906년 5월 홍주성에서 의병과 일본군 사이에 벌어진 전투.

1905년 일제에 의해 을사조약이 강제로 체결되자 정산에 은둔하고 있던 전 참판 민종식은 5월 11일 홍산에서 의병의 기치를 들었다. 이곳을 중심으로 서천·남포·보령·청양 등지의 의병을 규합한 민종식 부대는 서부지방의 중심지인 홍주를 공격할 계획을 세웠다. 이때 부대 병력은 1,000여명으로서, 그 중 신식 소총과 화승총 등 화기류로 무장한 병력이 500여명, 창검과 활 등을 소지한 병력이 200여명, 나머지는 비무장이었다.

5월 19일 오후 홍주에 도착하여 홍주성 서남쪽 남산에 진을 치고 공격을 시작하였다. 당시 홍주성에는 일본군 헌병부대와 거류민 등이 남문 성벽에 의거하여 항전하였다. 이에 의병부대는 맹렬한 사격을 가하면서 남문을 집중 공격하였고, 남문을 지키던 일본군 헌병과 거류민들은 마침내 의병의 공격 기세를 당해 낼 수 없게 되자, 북문을 열고 덕산으로 패주하고 말았다.

호서지방의 요충인 홍주를 의병이 점령하자 일본군은 곧 이를 탈환하고자 반격을 시도하여 이튿날인 5월 20일부터 다섯 차례에 걸쳐 헌병과 경찰 병력을 동원, 홍주성을 공격하였으나 정찰대 7명 전원이 사살당하는 등 성과를 볼 수 없었다. 조선 정부에서도 공주 진위대와 청주 진위대의 병력을 출동시켜 일본 헌병 및 경찰과 합세하도록 하였으나, 의병은 견고한 성벽에 의지하여 집중 사격하면서 이들의 공격을 막아냈다.


이와 같이 소규모 부대에 의한 산발적인 공격이 계속 실패하고 일본군의 출혈이 계속되자 일본군은 직접 대규모 병력을 파견하여 홍주성을 공격하기로 결정하였다.

이에 조선주차군 사령관은 서울에 주둔중인 보병 제60연대의 제1대대장 다나카 소좌를 지대장으로 하는 2개 중대의 지대를 편성하여 27일 홍주로 급파하였다. 5월 29일 홍주성 동쪽 천변리에 도착한 일본군은 홍주성 서쪽 홍주-결성간의 도로를 봉쇄하여 퇴로를 차단하고 북문과 동문으로 성을 공격하여 성 안의 의병을 포위, 섬멸하는 계획을 세웠다. 일본군은 이러한 계획 아래 성의 남문과 서문에 기관총 사격을 수차례 실시하여 의병의 주력을 성의 남서쪽으로 집중시킨 다음, 5월 31일 새벽 성에 대한 총공격을 시작하였다. 우세한 화력을 앞세워 동문과 북문으로 일본군이 밀려들자 의병들은 대로를 차단하고 시가전을 전개하였으나 사상자가 급증하였으므로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날이 새기 전에 성을 탈출할 수밖에 없었다. 성 안으로 돌입한 다나카 지대는 헌병과 경찰이 성문을 감시하는 가운데 성 안을 수색하여 의병을 색출하였다.

이 전투로 일본군은 10여명이 사살된 반면, 의병은 82명의 전사자를 내고 145명이 포로가 되는 손실을 입었으나, 신돌석, 정용기 부대의 의병활동과 더불어 3대 전투의병의 하나로 손꼽히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