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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시마섬(對馬島)정벌(1차)

시대 : 고려
시기 : 1389년(창왕 1) 1월 17일~18일
전투지역 : 일본 쓰시마섬
전쟁상대국 : 일본
상세내용

고려 창왕 1년(1389) 1월 왜구의 본거지인 쓰시마섬을 정벌하면서 벌인 전투.

13세기부터 고려 연안에 출몰한 왜구는 1350년(충정왕 2) 이후 노략질이 더욱 심해졌으며 우왕 때에는 특히 심하여 재위 14년 동안 378회나 왜구의 침입을 받았다. 고려는 일본에 사절을 보내 왜구 침입 금지를 요청하는 한편, 각지에 성을 쌓거나 화약을 개발하는 등 왜구에 대비하였고, 홍산대첩·황산대첩·진포싸움 등에서는 침입한 왜구를 섬멸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이같은 방법으로는 왜구를 근절시킬 수 없다고 판단되자, 1387년 8월 정지(鄭地)가 왜구의 본거지인 쓰시마섬과 이키섬(壹岐島) 정벌을 주장하는 등 논의가 분분하였다. 이러한 가운데 이듬해 여름부터 왜구의 침입이 다시 빈번해지자 고려 조정에서는 마침내 쓰시마섬 정벌을 실행에 옮기게 되었다.

마침내 1389년(창왕1) 2월 경상도원수 박위(朴葳)는 전함 1백 척을 이끌고 쓰시마로 항진하였다. 왜구가 미처 저항할 태세를 갖출 겨를도 없이 신속히 쓰시마에 진출한 고려군은 먼저 해안가에 정박하고 있는 왜구의 전선 3백 척을 소각한 후, 육지에 상륙하였다. 왜구는 고려군과의 정면대결을 회피하고 섬안의 깊숙한 산 속으로 도망하였으므로 고려군은 실제로 왜구를 포획하거나 살상하는 전과를 거두지는 못하였으나, 왜구에게 포로가 되었던 고려인 남녀 1백여명을 구출하여 돌아왔다.

고려군의 쓰시마 정벌을 계기로 오랫동안 고려의 우환이 되었던 왜구의 형세는 지리멸렬상태에 이르렀다. 수십 년간 왜구의 침략을 받았던 고려는 이 정벌을 계기로 왜구에 대한 자신감을 가지게 되었고, 이전의 수세적 입장에서 탈피하여 공세적 입장으로 대왜구전략이 획기적으로 전환하였다. 또한 왜구의 침략에 대응하기 위해 양성된 고려의 수군은 쓰시마섬 정벌을 계기로 그 역량을 확인하는 계기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