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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선정벌(羅禪征伐)

시대 : 조선
시기 : 1차-1654년(효종 5) 5월, 2차~1658년(효종 9) 6월
전투지역 : 송화강·흑룡강 일대
전쟁상대국 : 러시아
상세내용

1654년(효종 5) 5월과 1658년 6월 두 차례 벌어진 조·청 연합군과 러시아군의 전투.

조선의 의사와는 무관하게 동원된 싸움이었으나 러시아의 흑룡강·송화강 진출 기도를 좌절시키고 조선 조총병의 역량을 잘 보여준 전투였다.

(1) 1차 정벌 : 1640년대에 러시아는 시베리아를 가로질러 흑룡강 일대까지 진출하였으며 1650년에는 흑룡강 상류연안을 장악하고 거점을 확보하였다. 러시아의 세력 확장에 위협을 느낀 청은 1652년 4월 3일에 흑룡강 연안 현 하바로프스크 부근에 있는 러시아의 동계야영지를 기습하였으나 동원 병력 1500명 중 700여명이 전사하는 참패를 당하였다.

청군을 격파한 러시아는 흑룡강 일대를 확실히 장악하기 위해 스테파노프가 지휘하는 500여명의 코작크인 부대를 증파하였으며, 청은 러시아의 진출을 저지하기 위해 앙방장경(昻邦章京) 사르프다가 지휘하는 새로운 병력을 투입하는 한편 조총수 100명의 파병을 조선에 요청하였다. 청이 굳이 파병을 요청한 것은 당시 청은 정성공(鄭成公)의 반란(1661-1683)을 진압하기 위해 남방에 군사력을 집중시켜야 했고 자국 조총병의 실력이나 화기의 수준을 신뢰하기 어려웠기 때문이었다.

1664년(효종 5) 2월 청의 파병요청을 받은 조선은 함경북도 우후 변급을 지휘관으로 임명하고 지원자 중에서 선발한 100여명의 조총수 부대를 청에 파견하였다. 변급이 이끄는 조선군 조총수 부대는 이 해 3월에 청에 입국하여 청군과 합류하였다. 750명의 조·청 연합군은 선박에 분승하여 러시아군을 수색하면서 진군하였으며 역시 선박을 이용하여 흑룡강을 거쳐 송화강으로 진출한 러시아군과 4월 28일에 조우하였다.


조·청연합군은 중화기가 없고 소형선박에 분승한 상태에서 전투를 벌이는 것이 불리하다고 판단하여 강 연안에 상륙하여 방패를 세우고 강 중에 있는 러시아 함선을 소총과 활로 공격하였다. 공방전 끝에 러시아측은 많은 부상자를 내고 5월 2일 퇴각하였다. 조·청연합군은 후퇴하는 러시아군을 100리 정도 추격하였고 다음날도 90여리를 추격하면서 계속 러시아군을 공격하여 격파하였다. 5월 5일 계속되는 조·청 연합군의 공세를 견디지 못한 러시아군은 흑룡강 부근의 근거지로 도주하였다. 조·청 연합군은 5월 7일에 강중에 토성진지를 구축하고 5월 16일에 철수하였으며 6월 18일에 영고탑에 개선하였다. 변급 휘하의 조선인 부대는 6월 21일에 복귀하였다.

(2) 2차 정벌 : 조선군 조총수의 지원을 받아 러시아 세력의 송화강 유역 진출을 저지한 청은 러시아세력을 완전히 몰아내기 위하여 1655년에 흑룡강 부근에 있는 쿠마르스크 요새를 공격하였으나 진지를 고수한 러시아군에게 참패하고 말았다. 러시아군은 1657년에도 송화강 내륙 깊숙이 진출하여 청군과 교전하였다. 이에 청은 대규모 반격작전을 준비하고 조선에 재차 원병을 요청하였다.

조선이 파견한 병력은 함경북도 병마우후 신류가 이끄는 함경북도의 조총수 200여명과 화병(火兵) 등 지원 병력을 포함하여 265명이었다. 청은 육군 1500명, 수군 600명을 동원하였으며, 그 가운데 전문 조총수는 100명이었다. 조선군은 5월 1일에 출발, 5월 9일 영고탑에 입성하여 청군진영에 합류하였다. 6월 2일에 청군 잔여부대가 도착하자 조·청 연합군은 6월 5일 전선에 분승하여 출발하였다.


조·청 연합군이 6월 10일 흑룡강 어구에 진입하였을 때 러시아 선단과 조우하여 교전이 시작되었다. 청군 함선들이 러시아군 선단에 돌진하자 러시아군은 10여리를 후퇴하여 강가에 배를 모아 포진하였다. 조·청 연합군이 접근하여 포사격을 가하자 러시아군도 응수하여 상호 치열한 포격전이 벌어졌는데 연합군 선박들은 사격과 기동을 병행하면서 돌격하여 함포사격은 물론 승선한 병력들이 모두 조총사격을 가하고 화살을 쏘아댔다. 연합군의 화력을 당하지 못한 러시아 병사들은 배안에 숨거나 배를 버리고 강가의 숲으로 도망하였다. 이 전투에서 조선군은 러시아인들의 선박을 그대로 불사르려 하였으나 청군 지휘관이 전리품을 챙기기 위하여 소각을 금하였다. 그러나 러시아군이 배에서 응전하거나 강가에서 청군 선박을 향해 집중사격을 가하여 많은 사상자가 발생하고 말았다. 이에 방침을 바꾸어 러시아 전선을 소각하도록 하였는데 11척 가운데 7척을 불태웠으나 날이 어두워져 전투는 소강상태로 접어들고 말았고 포위되어 있던 러시아군은 야음을 틈타 1척의 배에 탑승하여 도주하고 말았다.

이 전투에서 조선군은 7명 전사, 14명 중상, 경상 11명의 피해를 입었고 청군은 110명이 전사하고 200여명이 부상당하였다. 조·청연합군은 러시아군을 격퇴한 후에도 계속 주둔하면서 무력 시위를 하였고 상황이 정돈된 후 귀환하였다. 조선군은 8월 27일 개선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