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홈
  • 문화원형 라이브러리
인쇄 문화원형 스크랩

육진(六陣)

시대 : 통일신라
상세내용

신라 문무왕 때의 전략가 설수진(薛秀眞)이 674년 9월 개발한 병법.

672년(문무왕 12) 8월 황해도 서흥지방에서 당나라와 싸워 패한 석문(石門)전투는 전쟁을 주도한 신라 지배층에게 뼈아픈 교훈이 되었다. 일원적 명령체계 확립과 무조건적인 복종 없이는 향후 당과의 대결에서 신라국가의 존립을 보장받을 수 없다는 분위기가 전쟁을 주도했던 신라지배층 사이에 형성되기 시작하면서 새로운 군사기술의 도입이 절실해졌다.

육진병법은 가운데 1개의 원진(圓陣)을 5개의 방진(方陣)이 둘러싸고 있는 육화(六花)의 모습이었을 것인데, 가운데 원진에는 청, 적, 황, 백, 흑색의 깃발, 그리고 북이나 징, 그것을 직접 조작하는 병사들과 육화진(六花陣)의 전체적인 움직임을 통제하는 지휘관이 있었을 것이다. 가운데 원진에서 지휘관의 명령에 따라 각 색깔의 깃발이 오르내리고 북소리와 징의 소리가 울려 퍼졌을 것이며, 방진의 병사들은 북소리를 듣고 전진하고 징의 소리를 들으면 정지했다. 이때 가운데 위치한 원진도 5개의 방진과 함께 움직이는데, 북소리와 깃발의 색깔에 따라 5개 방진 병사들은 진을 원진(圓陣), 곡진(曲陣), 직진(直陣), 예진(銳陣)으로 변화시키는 단체율동을 보여준다.
이때 물론 그 변화의 순서는 지휘관이 결정했을 것이다.

다시 말해 육진병법이란 지휘관의 신호에 따라 병사들이 기계적으로 움직이게 하는 군사기술이다. 각 병사의 신체와 그것에 의해 조작되는 무기가 맞닿은 모든 면에 지휘자의 권력이 스며들어 무기와 신체 양자를 묶어 두었다. 각 병사들이 메카니즘 속에서 신체를 복종하도록 만드는, 복종하면 복종할수록 더욱 유용하게 하는 신체능력에 구속을 확장했던 것이다. 『삼국사기』를 보면 신라 중기 말 3개 주의 태수와 패강진 두상을 역임한 김암은 그의 부임지에서 농민들에게 육진병법(六陣兵法)을 가르쳤다고 한다. 이는 나당전쟁 이후 농민들에 대한 진법훈련이 지속되었다는 것을 암시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