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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미성(關彌城)전투

시대 : 고구려
시기 : 391년(광개토왕 1) 10월
전투지역 : 경기도 파주시 교하면
전쟁상대국 : 백제
관련유적 : 오두산성
상세내용

391년 10월 경기도 파주 교하면 지역에서 고구려군이 백제의 관미성을 함락시킨 전투.

이 당시 백제는 북진정책을 실시하여 고구려 남쪽 변경에 대한 침입을 두 차례나 자행하였다. 즉, 389년(고구려 고국양왕 6년) 가을 9월에 백제가 고구려 남쪽지방을 약탈했고, 그 이듬해인 390년 백제 장군 진가모(眞嘉謨)가 고구려 도압성(都押城)을 공격하여 함락시키고 남녀 200여명을 사로잡아 돌아가기도 하였다. 이에 고구려는 백제의 약탈에 대한 근본적인 예방책으로 백제군의 전진기지인 관미성을 함락시켜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으며, 이 계획은 광개토대왕이 즉위하자 즉시 실행되었다. 관미성은 지금 오두산성으로 불리며, 통일전망대가 그 자리에 서 있다. 이곳은 절벽으로 둘러싸인 천연의 요새일 뿐만 아니라, 임진강과 한강이 합류하는 지점에 위치하여 서해안 방면에서 들어오는 모든 선박을 관측할 수 있다. 따라서 관미성을 장악하는 측은 한강과 임진강의 수로를 통제할 수 있는 입지를 가지게 된다.

광개토대왕은 391년 7월에 남진하여 백제의 10개 성을 함락시키고, 그 해 9월 거란에 대한 정벌을 완료한 후 관미성 공격에 들어갔다. 북쪽과 남쪽에 적국이 있는 고구려로서는 결전에 앞서 정비작업이 필요했던 것이다. 10월에 접어들어 광개토대왕은 함대를 이끌고 남진하여 교동도를 지나 지금의 강화도 북안으로 접근했다. 여기서 광개토왕은 밀물 시간을 기다렸다가 밀물이 오자 관미성을 향해 쳐들어가 7개 부대로 나뉘어 관미성을 포위했다. 그 중에는 상륙하여 육지 쪽에 있는 성문을 공격한 부대도 있었는데, 그것은 허를 찌르는 급습이었다. 이후 20일 동안 치열한 전투가 전개되었고 결국 관미성은 함락되어 고구려의 수중에 들어가게 되었다.

관미성은 백제로서는 북변 최고의 요해지 이상의 의미를 가지는 곳이다. 백제는 경기도 이남지방에서 수취한 생산물을 한강수로를 통해 한성에 집결시켰는데, 고구려군의 관미성 장악은 백제의 세금 수취에 막대한 차질을 주어 이로 말미암아 고구려는 백제의 목줄을 쥐게 된 형국이 되었다. 그것은 백제 진사왕에게는 폐부를 찌르는 아픔이었고, 관미성 함락 1개월 후 진사왕이 사망한 것은 결코 이와 무관하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