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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성(平壤城)전투(신라)

시대 : 고구려
시기 : 668년(보장왕 27) 9월
전투지역 : 평양
전쟁상대국 : 신라, 당나라
관련유적 : 평양성
상세내용

668년 9월 나당연합군이 평양성을 함락하여 고구려를 멸망시킨 전투

665년 고구려의 집정자 연개소문(淵蓋蘇文)이 죽자 그의 독재정치의 후유증으로 집권층 내부에서 심각한 정권쟁탈전이 전개된다. 장남 남생은 동생인 남건과 남산의 내분이 그것이다. 이 같은 고구려 내부의 약점이 노출되자 당은 이적으로 하여금 고구려를 침략케 하였고, 김인문이 이끄는 신라군 또한 북진해왔다.

668년 7월 말 당의 선발대가 먼저 평양성 외곽에 도착했고, 신라군도 평양 근교의 사천벌판에서 고구려군을 대파하고 평양성에 다다랐다. 나당연합군은 그 후 1달간 평양성을 포위하고 항복을 요구하였다. 당시 고구려 보장왕은 저항을 포기한 상태로 남산과 수령 98명 등을 보내 이적에게 항복 의사를 표했으나 남건은 이에 반대하여 평양성의 문을 굳게 닫고 항거했다. 이로써 9월 평양성전투가 시작되었다.

나당연합군은 평양성이 바라다보이는 사수(蛇水)에 집결했다. 성이 포위된 상태에서 급박해진 남건이 한 번의 결전으로 승부를 결판내기 위해 성문을 열고 고구려군을 내보냈다. 그러나 기병의 규모가 약세에 있던 고구려군이 밀리기 시작했다. 이때 신라군이 사수의 다리 아래로 내려가 물을 건너 진격하여 적에게 심각한 타격을 주었다. 고구려군의 군영은 의외로 쉽게 무너졌고, 패잔병들이 성문 안으로 몰려들어갔고, 평양성 안에 있던 사람들의 사기가 크게 떨어졌다.

9월 21일 나당연합군이 평양을 에워쌌고 신라군의 공격은 계속 이어졌다. 5일 동안 맹렬한 공격을 받는 가운데 고구려 저항군 수뇌부에서 변절자가 나왔다. 저항군의 최고지휘자인 남건의 심복인 승려 신성이 평양성의 성문을 열었던 것이다. 신라군 기병 500이 먼저 평양성 안으로 들어와 길을 열어놓자. 당군이 한꺼번에 몰려들어 평양성을 함락시켰다.

고구려는 이로써 멸망하였고, 당은 보장왕과 남건을 사로잡아 돌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