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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도성(玄菟城)전투

시대 : 고구려
시기 : 121년(태조왕 69)
전투지역 : 현도성
전쟁상대국 : 부여
상세내용

고구려 태조왕 69년(121) 고구려가 중국 후한의 지원을 받는 부여와 현도성에서 싸운 전투.

고구려는 기원전 75년과 105년 두 차례에 걸쳐 현도군을 공격하여 압록강 중류와 동가강 유역을 장악한 후에도 현도군에 대한 공세를 늦추지 않았다. 이후 한이 1세기 말경부터 정치적 갈등으로 혼란에 빠지게 되자 고구려는 이를 한의 세력을 배제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로 삼으려 하였다. 118년 고구려군이 현도성과 낙랑군 소속의 화려성을 공격하자, 한의 유주자사 풍환과 그 휘하의 현도 태수 요광, 요동 태수 채풍이 지휘하는 한군이 121년 봄에 고구려를 침공하였다. 이에 고구려 태조왕은 자신의 동생인 수성에게 군사 2천을 주어 출동하여 반격케 하였다.

수성은 적진에 사자를 보내어 거짓 항복을 표시하여 적을 방심시킨 후 적의 퇴로를 차단하고 주력부대로 현도·요동의 두 성으로 진격하여 성을 소각하였다. 여기서 수성이 이끈 고구려군은 후한병 2천여 명을 참살하였다. 이어 고구려군은 선비병 8천명을 동원하여 요동의 요수현을 공격하여 요동 태수 채풍 등이 이끄는 한군과 신창에서 격전을 벌였다. 이 전투에서 그곳의 태수인 채풍을 비롯한 100여명의 주요 지휘관을 살해하였다. 12월에는 마한·예맥의 군사 1만여 기를 출동시켜 현도성을 포위 공격하였다. 그러자 인접국인 부여는 위협을 느껴 한과 연합하여 왕자인 위구태 지휘 아래 2만여 명의 병력으로 고구려에 반격을 가하였다. 이 전투에서 태조왕이 이끄는 고구려군은 현도성의 한군과 후방으로부터 접근하는 부여군의 협공을 받고 포위망을 빠져 나오려고 분전하였으나 5백 명의 사상자를 내고 물러갔다.

이듬해 고구려군은 마한·예맥군과 다시 요동지방을 공격하였으나 이번에도 후한·부여연합군의 강력한 반격으로 전선은 교착상태에 빠져 회군하였다. 결국 고구려와 후한은 125년에 국교를 재개하기에 이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