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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창(古昌)전투

시대 : 고려
시기 : 930년(태조 13) 1월
전투지역 : 경북 안동시 와룡면
전쟁상대국 : 후백제
상세내용

930년 정월 경상북도 고창(현 안동) 병산 일대에서 고려군이 후백제군을 대패시킨 전투.

이 무렵 후삼국통일을 목적으로 한 고려와 후백제간의 무력충돌은 정도를 더해 갔다. 925년에 인질을 교환하여 맺어진 외교관계로 일시적으로 소강상태를 유지하였으나, 인질들이 죽은 뒤로는 무력충돌이 심화되었다. 927년의 공산전투(대구 팔공산)에서 고려군은 신숭겸(申崇謙)과 김락(金樂)이 전사하고 왕건은 호위 없이 도주하는 참패를 당하여 열세에 처하게 되었다. 이후 고려는 설욕을 할 기회를 기다리고 있었다.
당시 이 안동 일대는 고려군이 남진을 하여 신라에 이르는 중요한 교통로로서 후백제군과 자주 전투를 벌인 곳이다. 이 무렵 경상도 일대로 향한 견훤의 군사행동은 전보다 활발해졌다. 927년의 공산전투에서 승리하여 중요한 요충을 확보한 뒤 929년에 의성·순흥·영주지역을 침범하고, 문경과 고창군도 포위하였다. 이러한 후백제의 경상북도 진출에 따라 고려는 이에 대응하는 군사행동을 전개하게 되었다. 마침내 929년 12월 왕건이 친히 군사를 이끌고 고창을 구하기 위하여 출전하여 후백제군과 930년 정월 서로 대치하였다. 이때 고려군은 병산(甁山)에 주둔하였고, 견훤이 지휘하는 후백제군은 석산(石山)에 진을 치고 해가 질 때까지 치열한 전투를 벌였다. 마침내 고려군이 점차 승기를 잡아 후백제군의 필사적인 저항을 꺾고 대승을 거두었다. 패퇴한 견훤은 군사를 돌려 순주(順州)를 공격하여 민가를 약탈한 뒤 돌아갔다.

이 전투에서 후백제의 시랑 김악(金渥)이 생포되고 전사가 8천여 명에 이르렀다. 이 전투의 승리로 안동·울산·청송·강릉에 이르기까지 11여 성이 고려에 귀부하였고, 후백제와의 관계에서 열세를 극복하고 후삼국을 통일할 수 있는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