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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주(羅州)전투

시대 : 태봉
시기 : 910년(신라 효공왕 14)
전투지역 : 전남 나주 일대
전쟁상대국 : 후백제
상세내용

910년 후삼국통일전쟁 때 나주 일대에서 궁예 휘하의 왕건 군대가 후백제의 견훤 군대를 대패시킨 전투.

903년 3월에 궁예 휘하 왕건의 수군은 서해로부터 광주 지역의 금성군과 10여개의 군·현을 쟁취하여 지명을 나주로 바꾸고 개선하였는데, 그 이후로 후백제군의 공격을 받아 전선이 불안하였다. 이에 왕건은 스스로 지원하여 한찬해군대장군(韓粲海軍大將軍)으로서 종희(宗希)·김언(金彦) 등 부장과 군사 2천 5백으로 전라도 해안으로 남하하여 나주를 공격하게 되었다.

나주전투는 크게 두 단계로 진행되었다. 첫번째는 왕건의 수군과 후백제 견훤군과의 전투이며, 두번째는 왕건군의 소탕전에 의한 나주일대의 토착호족들과의 일전이었다. 왕건의 수군과 견훤의 수군과의 전투는 덕진포를 중심으로 하여 전개되었는데, 왕건의 수군이 도달하기 전 견훤은 목포에서 덕진포에 이르기까지 전함을 배치하여 두었다. 이때의 형상은 전함들이 머리에서 꼬리를 잇고 수륙종횡으로 밀집하여 그 형세가 위압감을 주기에 충분하였다. 왕건의 수군은 이러한 견훤군의 위용을 보고 전투가 시작되기 전부터 우려의 기색이 확연하였다. 그러자 왕건은 “걱정하지 마라. 전투에서의 승리는 군사의 화합에 있는 것이지 무리가 많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라 하고 마침 불어오는 바람을 이용하여 화공을 가하니 견훤군의 익사자가 태반이었다. 견훤은 작은 배로 도망하였고, 후백제군은 5백여 명이 참획을 당하였다.


두 번째 전투는 압해현의 호족 능창(能昌)과의 전투이다. 왕건의 수군은 덕진포전투에서 승리하자 전함을 수리하고 군량을 준비하여 나주에 주둔하려고 하였다. 그러나 첫번째의 승리로 부장 김언 등이 자만하자 왕건은 이들을 독려하여 광주 서남쪽의 반남현 포구에 이르렀다. 왕건은 여러 섬들로 구성되어 있는 이 일대의 적정을 파악하기 위하여 첩보망을 최대한 확대하였다. 그때 수전을 잘하여 수달이라고 불렸던 압해현의 대호족 능창이 망명한 자들과 함께 갈초도에 있는 여러 중소 호족들과 연계를 맺어 왕건을 공격하려고 하였다. 그러나 첩보망으로부터 정보를 입수한 왕건은 야간 기습작전을 감행하였다. 그날 밤 왕건은 수전에 익숙한 자 십여 명 만을 선발하여 무장시키고 가벼운 배에 태워 갈초도 나루를 기습 공격하였다.

그 결과 왕건의 작전대로 음모를 꾀하던 사람들이 타고 있던 배 한 척을 나포하였는데, 이 배에 능창이 타고 있었다. 왕건은 능창을 잡아 궁예에게 보냈고, 궁예는 능창을 죽였다. 이렇게 하여 두 번에 걸친 나주전투는 왕건의 활약에 힘입어 승리로 끝났고, 궁예의 판도는 서남해안까지 미치게 되었다. 이후 왕건은 이 일대를 자신의 세력권으로 삼아 후삼국통일전쟁에 있어서 하나의 교두보를 마련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