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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민족 전투원형백산(白山)전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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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산(白山)전투

시대 : 조선
시기 : 1894년(고종 31) 5월 8일
전투지역 : 전북 고부군 백산면(현 부안군 백산면)
관련유적 : 백산성지
상세내용

1894년 5월 8일 동학농민군이 전라도 고부 백산에서 관군을 격퇴하고 승전한 전투.

이 해 4월 17일 고부에서 봉기한 동학교도와 농민들은 고창, 부안, 태안 등 각 처에서 봉기한 동학농민군과 합세하여 5월 4일 전북 고부 백산에 집결하였다. 전봉준·손화중·김개남 등이 통솔하는 농민군이 무장 당산에서 기포하여 고부로 전진할 때 농민군 숫자는 4,000명에 이르렀다. 여기에 태인에서 기다리고 있던 최경선(崔景善)이 이끄는 농민군 300명과 마항(말목장터)에서 대기중이던 고부 농민 1,000여명이 합류하면서 농민군의 병력은 5,000명에 달하였다.

농민군이 고부읍을 점령하자 전봉준 등은 관군과의 본격적인 접전을 대비해 농민군의 대오를 정비하고 확대 개편하기 위해 교통의 요지이자 전략적으로 좋은 여건을 갖추고 있는 백산으로 이동했다. 백산은 고부읍 북쪽에 위치한 높이 47.4m의 작은 구릉으로, 북쪽으로는 동진강과 만경강의 두 강역으로 보호되고 있고, 넓은 평야의 한가운데 위치하기 때문에 관측과 방어에 유리한 지역이었다.

또한 당시 백산에는 관곡을 저장하는 창고가 있어 군량 조달에도 용이하였다. 전봉준 등 지도부가 고부에서 백산으로 본진을 옮기자 무장기포의 창의문과 통문을 보고 백산으로 몰려든 농민군들의 행렬이 줄을 이어 이제 그 수가 8,000여명에 이르렀다. 이에 농민군 지도부는 백산에 호남창의대장소(湖南倡義大將所)를 설치함으로써 비로소 지방단위별로 본격적인 농민군이 조직되었다.


한편, 관군은 백산 남쪽의 좁은 접근로와 진두를 봉쇄하여 동학농민군을 고립시키려는 목적으로 백산 동편 4km 떨어진 지점에 300여명의 병력으로 진을 쳤다. 그리고 서쪽 4km 떨어진 곳에는 전라중군 김달관이 거느리는 수천 명의 병력을 매복하였고, 남쪽에는 초관 유영호 휘하의 보부상대 1,000여명이 진을 쳐 백산을 포위하였다.

관군과 보부상에 의해 백산이 포위되자 동학농민군은 기선을 제압하기 위해 기습작전을 결정하였다. 5월 8일 새벽 농민군은 부대를 양분하여 1개 지대는 백산을 우회하여 관군의 측면으로 돌격하고, 주력부대가 이에 호응하여 관군을 협격하였다. 기습을 당한 관군은 지휘관인 영관 이경호 이하 수십 명의 사상자를 내고 패배하여 전주 감영으로 분산 도주하였으며 포위망도 자연히 해체되었다.

농민군은 초전의 여세를 몰아 그대로 부안으로 진격하여 관아를 습격, 식량과 무기를 탈취하고, 다시 고부로 이동하여 도교산(道橋山)에 진을 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