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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민족 전투원형정주성(定州城)전투(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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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주성(定州城)전투(2)

시대 : 조선
시기 : 1811년(순조 11) 12월 30일~1812년 4월 19일
전투지역 : 평북 정주군 정주성
관련유적 : 정주성
상세내용

1811년(순조 11) 12월 30일에서 1812년 4월 19일까지 홍경래가 지휘하는 반군과 관군이 정주성에서 벌인 전투.

이 해 12월 29일 박천 송림전투에서 패전한 반군의 주력은 정주성으로 철수하여 농성전에 돌입하였으며 귀성지역의 반군 역시 관군에게 밀려 정주성으로 후퇴하였다. 반군은 기병 초기에 내응세력의 도움으로 평안도 청천강 일대를 손쉽게 석권하였으나 이제 정주성을 제외한 모든 지역을 상실한 것이다.

관군은 처음 이곳에 집결한 반군의 전력을 가볍게 보고 쉽게 함락시킬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하였다. 정주성 포위를 마친 관군은 대규모 병력을 동원하여 1812년 1월 5일부터 19일까지 세 차례 정주성을 공격하였다. 그러나 반군은 세 차례 모두 관군이 성벽 부근에 도달할 때까지 사격통제를 잘 유지하다가 일제 사격을 가하여 관군의 전열을 무너뜨리고 많은 피해를 입혔다.

2월 19일 조정에서는 한 달 이상 정주성을 함락시키지 못한 책임을 물어 평안병사와 순무중군을 교체하는 문책인사를 단행하였다. 이 날도 격렬한 전투가 벌어져 반군이 남문을 통한 출성공격을 감행하였는데 반군의 기습을 받은 관군은 총수와 사수를 동원하여 이를 막도록 하였으며 수세에서 공세로 전환하였다. 그러나 반군이 성벽에 의지하여 사격을 가하였으므로 관군은 피해를 줄이기 위해 후퇴하였다.

3월 들어 반군은 여러 차례 출성공격을 감행하여 관군과 일진일퇴를 거듭하며 공방전을 벌였으나 서로 피해만 볼 뿐 어느 쪽도 결정적인 승리는 거두지 못하였다. 그러나 4월이 되자 관군은 성을 완전히 함몰시키기 위한 작전을 전개하였다.


4월 3일 새벽에 관군은 일제공격을 개시하였다. 동북쪽 성벽 공격을 맡은 군사들은 바퀴달린 방패를 앞세워 반군의 공격을 막으면서 흙을 쌓아 성벽을 넘으려 하였고, 소서문 쪽으로는 큰 솥에 끓는 기름을 가득 실은 수레를 끌고 가서 문루를 태워버리려 하였다. 그러나 반군의 집중 사격 때문에 접근이 어려웠고 기름을 실은 수레 역시 성밖의 참호를 넘지 못하고 고착되어 불살라버리고 말았다.

반군의 입장에서는 또 한 차례의 공성전을 이겨낸 것이었지만 실은 이 작전은 북장대 밑의 굴토작업을 위장하기 위한 관군의 양동작전이었다. 이때 관군은 광부들을 동원하여 굴을 파기 시작하여 15일 만에 성 아래 도달하였으며 4월 18일에 굴토작업을 끝낸 관군은 화약 1,710근을 성 밑에 쌓고 이튿날 새벽 점화하였다.

4월 19일 대규모의 폭발로 북장대가 완전히 파괴되고 성벽도 10여 간이나 깨어져 평지가 되었으며 이 부근에 매복하였던 반군은 모두 압사당하였다. 성이 무너지자 대기하고 있던 관군이 입성하여 반군을 몰아붙였고 반군은 서남쪽으로 밀려났는데 날이 밝자 관군은 성에 사다리를 걸고 진입하여 성을 점령하였다.

정주성 전투는 굴토와 성벽 폭파라는 새로운 전법이 구사된 대표적인 전투였으며 이 전투로 홍경래의 난은 완전히 종식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