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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민족 전투원형죽산(竹山)전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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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산(竹山)전투

시대 : 조선
시기 : 1728년(영조 4) 3월 23일~24일
전투지역 : 경기도 안성시 죽산면
상세내용

1728년(영조 4) 3월 23일과 24일에 정부군과 이인좌의 반군이 경기도 안성 죽산에서 벌인 전투.

이 해 3월 15일 청주에서 기병한 이인좌의 반군은 내응세력의 도움으로 손쉽게 청주병영을 장악하고 진천·안성을 거쳐 서울로 진공하려 하였다. 반란 소식을 접한 조정에서는 병조판서 오명항을 도순무사 반군을 진압케 하였다.

이인좌의 반군은 3월 21일 청주를 출발하여 북방으로 진군하면서 죽산을 공략할 계획을 세웠다. 반군의 일부 병력은 앞서 거지와 장사치 차림으로 변복하고 안성에 집결하였으며 이인좌는 주력을 이끌고 죽산을 향하여 출발하였다. 그러나 반군의 동향은 관군에게 모두 탐지되고 있었다.

3월 22일에 관군이 안성에 도착하여 진을 치자 이 날 밤 반군은 야습을 가하였다. 청량산 부근에 집결하여 죽산의 병력이 합세하기를 기다리고 있던 반군은 관군의 군막이 세워지자 안성의 지방군으로 착각하고 전력 탐색을 위해 소규모 부대를 동원하여 사격전을 전개한 것이었다. 그러나 관군은 무모한 출격을 삼가고 접근하는 반군에게만 대응사격을 하였다. 반군은 관군이 신기전을 여러 차례 발사하자 이들이 지방군이 아니라 서울에서 출동한 경군임을 알고 전의를 상실하였다.

이튿날 새벽 관군은 안성 동쪽 가지곡(嘉志谷)으로 접근하여 반군의 동태를 관찰하였다.

가지곡은 삼면이 청량산 줄기로 둘러싸여 있고 서쪽 전면은 개활지였다. 관군의 공세를 눈치챈 반군은 먼저 청량산으로 올라가 유리한 지형을 차지하였으며 형세가 불리해진 관군은 공격을 주저하게 되었다. 그러나 기보병 50여명의 선봉대가 골짜기 안으로 돌격해 들어가 미처 산으로 피하지 못한 반군의 지휘부를 공격하니 산 위의 반군은 사기가 떨어져 산꼭대기로 후퇴하였다. 이에 승세를 탄 관군의 주력이 총공격을 시작하였고 포위된 반군은 전의를 잃고 남쪽으로 도주하였으나 안성군수 민제만이 이끄는 관군에게 차단당하였다. 이 전투에서 관군은 반군 100여명을 참하였으며 반군은 완전히 와해되고 말았다.

3월 24일 새벽 전날 가지곡전투에서 반군의 주력을 격파한 관군은 하루를 야영한 후 죽산으로 진격하여 안성과 죽산의 경계가 되는 장항령(獐項嶺; 노루목)을 우선 점거하였다.

관군이 장항령을 장악하였을 때 동쪽 언덕 아래에는 반군의 마병들이 진출하여 경계중이었다. 관군은 이들이 미처 전열을 갖추기 전에 그대로 돌격하여 격퇴시키고, 그대로 죽산으로 돌입하여 반군을 공격하였다. 반군은 대부분 피살되거나 포로가 되었는데 주모자 이인좌와 주동자급의 인물들은 진이 궤멸될 때 도주하였으나 촌민들에게 모두 사로잡혔다.

이로써 청주에서 기병하여 신속히 서울로 진격하려던 이인좌 반군의 기도는 죽산전투로 완전히 실패하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