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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민족 전투원형황룡촌(黃龍村)전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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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룡촌(黃龍村)전투

시대 : 조선
시기 : 4년(고종 31) 5월 25일
전투지역 : 전남 장성군 황룡면 월평리
상세내용

1894년 5월 동학농민군이 전라도 장성 황룡촌에서 관군과 싸워 승리한 전투.

이 해 5월 23일 함평을 출발한 동학농민군은 장성에 도착하여 본진을 삼봉(三峰) 아래에 설치했다. 한편 동학농민군의 봉기 소식을 접한 정부는 홍계훈을 양호초토사로 임명하였다. 홍계훈은 장위영 병력 800여명을 이끌고 인천에서 해로로 군산에 도착하여 5월 11일 전주성에 입성하였다.

이때 동학농민군이 장성 방면으로 진출하였다는 보고를 받은 홍계훈은 이학승을 대장으로 하는 별동대를 조직하여 300여명의 병력을 주어 장성으로 나아가게 하였다. 별동대는 황룡촌을 건너 월평리로 전진하는 길에 동학농민군과 충돌하여 전투가 벌어졌다. 이때가 5월 25일 오후였다.

엉겁결에 공격을 받아 수십명의 사상자를 낸 농민군은 곧바로 삼봉에 올라가 전투 태세를 갖추었다. 장성지역 황룡강의 지형지세를 환하게 익혀둔 농민군들은 삼봉의 정상에서 학 모양의 진을 치고 관군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이 전투에서 가장 특기할 만한 것은 농민군들이 사용했던 장태이다. 무기는 원래 닭을 키우는 데 쓰이는 닭구장태 만드는 법을 이용해 제작된 것인데, 동학농민군은 이 장태 안에 짚을 넣어서 불을 붙인 뒤 수백 개를 관군쪽으로 굴려 화력을 모두 소모시키고 농민군들이 그 뒤를 따라 접근하여 공격하던 무기이다.

죽음을 무릅쓴 농민군들의 위세와 용기에 눌려 관군은 영광 쪽으로 퇴각하면서 신촌리 뒷산 까치골 능선에서 농민군과 마지막 접전을 벌였다. 그러나 이곳에서 최후의 항전을 벌였던 관군 이학승이 전사했고, 원군조차 없는 상황에서 이미 오합지졸이 되어버린 관군들은 앞다투어 퇴각하여 전투는 농민군의 일방적인 승리로 끝났다. 황룡촌전투는 농민군과 정식 훈련을 받은 정규군인 관군이 최초로 접전을 벌인 곳이었으며, 이 전투에서 동학농민군이 대승을 거둠으로써 북쪽의 전주성까지 이르게 한 원동력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