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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민족 전투원형황토현(黃土峴)전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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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토현(黃土峴)전투

시대 : 조선
시기 : 1894년(고종 31) 5월 10일~11일
전투지역 : 전북 정읍 황토재
관련유적 : 황토현전적지
상세내용

1894년 5월 전봉준이 이끄는 동학농민군이 전라도 고부 황토재에서 관군에 대승을 거둔 전투.

이 해 4월 28일 전봉준을 위시한 동학농민군은 백산을 출발하여 전주로 진격하였다. 이들의 1차 목표는 전라감영이 있는 전주성 점령이었다. 이 무렵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은 전라감사 김문현(金文鉉)은 동학농민군의 동향을 수시로 조정에 보고하고 감영군 출동을 결정하였다. 이경호를 총지휘관으로 하여 편성한 감영군은 5월 7일 동학농민군의 진격을 막기 위해 금구쪽으로 진출했다.

감영군의 출동소식을 접한 동학농민군 주력부대는 5월 10일 부안을 떠나 고부에 도착하였고, 태인에 남아 있던 농민군 잔여 세력도 고부로 향하여, 도교산(道橋山) 즉 황토현에서 합류하였다.

황토현 일대에 전운이 감돌기 시작한 것은 5월 10일 하오부터였다. 전봉준이 지휘하는 동학농민군은 4,000여명이었고 감영군은 도합 2,000여명이었다. 황토현 아래에 도착한 관군은 이날 밤이 되자 사격을 하면서 공격을 개시하였다. 그러나 동학농민군은 짚으로 가성(假城)을 쌓은 다음 인형을 세워 놓고 잠복하며 일체 응사를 하지 않았다. 사격에 반응이 없자 관군은 일제히 돌격하여 농민군이 쌓은 가성을 무너뜨리며 진격해오자 이때서야 농민군은 관군을 포위하고 일제 사격을 가하면서 공격하니 관군은 순식간에 붕괴되어 분산 도주하였다. 농민군은 계속 추격하여 참살하니 관군은 지휘관 이경호가 전사하는 등 750여명의 인명피해를 입고 무기와 식량을 상실하였다. 관군을 격퇴한 농민군은 그대로 전승의 기세를 몰아 정읍 관아를 습격하여 무기를 빼앗고 다시 고부의 삼거리로 진출하였다.

이 황토현전투는 동학농민군과 정부군이 벌인 첫 접전으로, 전봉준이 이끄는 동학농민군이 관군을 완전히 제압하고 서전을 승리로 장식함으로써 이후 전주성 점령까지 승승장구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