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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민족 전투원형양세봉(梁世奉)

양세봉(梁世奉)

시대 : 근대
생몰년 : 1896(건양 1)~1934
호 : 벽해(碧海)
상세내용

독립군을 지휘했던 장군.

일명 서봉(瑞鳳)·윤봉(允奉). 1919년 3·1운동 직후 평안북도 삭주군 소재 천마산(天摩山)을 근거로 무장항일운동을 전개하고 있던 천마산대 독립군에 입대하여 일제의 통치기관 파괴, 친일파 숙청의 활동을 하였다. 1920년 만주로 건너가 광복군총영(光復軍總營)에서 활동하였으며, 1923년 육군주만참의부(陸軍駐滿參議府)가 결성되자 소대장으로 활발한 국내진입작전을 전개하였으며, 뒤에는 제3중대장으로 승진하였다. 1929년 재만 각 단체가 통합하여 국민부(國民府)를 조직할 때에 참여하였으며, 국민부가 소속 독립군으로 조선혁명군을 편성하자 제1중대장이 되었다. 1931년 신빈현(新賓縣)에서 일본군의 기습을 받아 주요간부 다수가 붙잡히는 신빈사건 이후 조선혁명군을 개편하여 총사령이 되었다.

1932년 일본군이 만주사변을 일으켜 만주를 석권하자, 재만 중국군과의 연합작전을 전개하기로 하고 중국의용군 총사령관 이춘윤(李春潤)과 협의하여 한중연합군을 편성하였다. 이해 3월 한중연합군은 일본군이 점령하고 있는 영릉가성(永陵街城)을 공격하여 탈환하였고, 1933년 흥경(興京)을 공격하여 일본군을 격퇴시켰다. 이와 같이, 중국군과 연합작전을 성공적으로 수행하는 한편, 전투에서 소모되는 혁명군을 보충하기 위하여 조선혁명군 군관학교를 설립하고 교장으로서 직접 군대양성에 주력하였다. 그 뒤 흥경성전투·노구대전투(老溝臺戰鬪)·쾌대모자전투(快大帽子戰鬪)에 참전하여 연전연승을 거두었다. 1934년 9월, 전부터 잘 알고 있던 일본경찰의 밀정인 박창해(朴昌海)의 계략에 빠져 대원 여러 명과 같이 환인현 소황구(小荒溝)에서 일본군에 포위되어 치열한 전투 끝에 전사하였다. 1962년 건국훈장 국민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