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홈
  • 문화원형 라이브러리
인쇄 문화원형 스크랩

한민족 전투원형이범석(李範奭)

이범석(李範奭)

시대 : 근대
생몰년 : 1900~1972
호 : 철기(鐵驥)
본관 : 전주
상세내용

북로군정서 연성대장으로 청산리전투에서 김좌진(金佐鎭)과 함께 일본군을 대파한 인물.

1915년 경성고등보통학교 재학 중 여운형의 권고로 중국으로 망명, 이듬해 운남강무당(雲南講武堂)에 입학하여 1919년 기병과를 수석 졸업하고 그 해 10월부터 이시영의 주선으로 통화현 고산자에 있던 신흥무관학교의 고등군사반 교관으로 취임하여 독립군 장교 양성하였다. 1920년 북로군정서의 군사교관으로 부임하여 사관연성소를 창설한 뒤, 600여 명의 생도들을 모집하여 독립군 장교로 교육함으로써 부대의 전투역량을 강화하여갔다.

1920년 청산리전투에서 사관연성소 졸업생을 주축으로 하는 전투 요원으로 제2제대를 편성하여 이범석이 지휘하되, 김좌진이 이끄는 제1제대가 선두에서 길을 열고 제2제대는 후미에서 일본군의 추격에 대비하도록 작전 계획을 수립하였다. 제2제대는 암석과 수목 등의 지형지물을 이용하여 은폐 엄폐된 상태에서 조준사격을 할 수 있었기 때문에 대승을 거둘 수 있었다.

1923년 고려혁명군을 조직하여 기병 사령으로 활약하고 1925년에는 고려혁명군결사대를 조직하여 테러리즘에 의한 독립운동을 추진하기도 하였다. 1934년 중국 육군중앙군관학교 낙양분교에 한인특별반이 설치되자, 학생대장으로 선임되어 독립군 간부 양성에 총력을 기울였는데, 이들은 후일 한국 광복군의 주력이 되었다. 임시정부가 중경에 도착한 직후 1940년 9월 17일 중국 국민정부의 후원 아래 한국광복군이 창설되자 참모장이 되고 해방되자 광복군 중장으로 귀국하였다.

1946년 10월 조선민족청년단을 결성하여 청년운동을 전개하였고 1948년 정부수립과 더불어 초대 국무총리와 국방부장관을 지냈으며 만년에는 정계에 투신하여 정당생활을 하기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