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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민족 전투원형이청천(李靑天)

이청천(李靑天)

시대 : 근대
생몰년 : 1888년(고종 25)~1957
호 : 백산(白山)
상세내용

1933년 한중연합군의 총참모장으로 대전자령(大甸子嶺) 전투에서 대승을 거둔 독립군 사령관.

조선 말기 무관학교에 입교하여 2학년 때 정부유학생으로 일본의 동경육군중앙유년학교(東京陸軍中央幼年學校)에 들어갔다. 1913년 일본사관학교 제26기생으로 졸업하고 중위가 되면서 1919년 만주로 망명하여 신흥무관학교(新興武官學校)에서 독립군 간부를 양성하였다. 1920년 대한민국 임시정부 산하 서로군정서(西路軍政署)의 간부가 되었고, 1921년 자유시참변(自由市慘變) 후에 고려혁명군을 조직한 데 이어 대한통군부(大韓統軍部)를 조직하여 이끌었다. 그 뒤 대한통군부를 개편하여 정의부를 조직하여 군사위원장 겸 사령장이 되었고, 1925년에는 남·북만주의 두 단체를 통합하여 국민부를 만들었다. 김좌진이 저격당한 뒤, 1930년 7월 한국독립당(韓國獨立黨) 창당에 참여하여 군사위원장이 되었으며, 별도로 한국독립군을 만들어 총사령관이 되었다.

1933년 항일지하운동을 지휘하면서 한중연합군의 총참모장이 되어 새로운 근거지를 찾던 중 대전자(大甸子)에 주둔하고 있던 일본군을 기습하여 4시간의 격전 끝에 대승하였다. 연합군은 일본군의 군복 3,000벌, 군수품 200여 마차, 대포 3문, 박격포 10문, 소총 1,500정, 담요 300장 등 막대한 전리품을 노획하였다. 그런데 전리품을 독립군과 중국군이 분배하는 과정에서 불화가 생겨, 연합은 곧 깨지고 말았다. 1940년 임시정부가 광복군 총사령부를 창설하자 사령관이 되어 1945년 환국할 때까지 항일투쟁을 계속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