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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민족 전투원형김창시(金昌始)

김창시(金昌始)

시대 : 조선
생몰년 : ? ~ 1812년(순조 12)
본관 : 곽산
상세내용

조선 후기 일어난 홍경래(洪景來) 난의 지도자 중 한 사람.

당시 서북인들에 대한 차별로 벼슬길이 막히자 홍경래·우군칙(禹君則) 등과 함께 10여년간 반란을 모의하였다. 부호이기도 했던 진사 김창시는 모의 과정에서 군량 준비와 운산 촉대봉(燭臺峰) 광산의 광산 노동자가 봉기군의 중심이 되도록 연락하는 일을 담당하였다. 1811년 12월 난이 일어나자 북진군을 영솔한 부원수 김사용(金士用)의 모사(謀士)가 되어 봉기의 이유와 정당성을 주장하는 격문을 지었다. 김사용과 함께 북진군을 이끌고 가산을 점령한 뒤 파죽지세로 남하하여 곽산·정주·선천·태천·용천 등 청천강 이북의 10여개 지역을 점령하였다. 그러나 점령 이후 농민군의 조직화에 실패하면서 전열을 수습한 관군과 창의군의 공격을 받고 곽산으로 후퇴하였다. 그 뒤 함종부사 윤욱렬(尹郁烈)이 이끄는 관군에게 밀려 쫓겨 다니다가, 1812년 철산에서 공을 세우려고 반군을 배신한 농민 조문형(趙文亨)에게 살해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