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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민족 전투원형광개토왕(廣開土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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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개토왕(廣開土王)

시대 : 고구려
생몰년 : 374년(소수림왕 4)~412년(광개토왕 22)
관련전투 : 관미성(關彌城)전투
상세내용

고구려의 제19대 왕으로 대외 정복활동을 벌여 영토를 최대로 확장한 임금.

재위 391~412년. 본명은 담덕(談德). 재위기간 동안 영락(永樂)이라는 연호를 사용했으므로 영락대왕이라 일컬어졌으며, 사후의 시호는 국강상광개토경평안호태왕이다. 고국양왕의 아들로 386년(고국양왕 3) 태자로 책봉되었다가 부왕의 사후 즉위하여 20여년간 재위하였다.

재위기간 동안 고구려의 영토와 세력권을 크게 확장시켰는데, 먼저 예성강을 경계로 그동안 일진일퇴를 거듭해온 백제에 대해서는 즉위 초부터 적극적인 공세를 취하여 392년 7월, 왕이 직접 4만여의 군대를 지휘하여 백제의 북쪽 변방을 공격, 석현성(石峴城 : 개풍군 배면 청석동)을 비롯한 10개 성을 빼앗았다. 또 10월에는 난공불락의 요새임을 자랑하는 관미성(강화 교동도)을 20여일만에 함락시켜 임진강 일대를 장악하였다. 다음해인 393년 8월부터는 백제의 반격이 시작되었는데, 백제 아신왕은 진무장군에게 1만여의 정병을 주어 빼앗긴 여러 성들을 탈환토록 했다. 그러나 고구려는 백제의 보급로를 차단하고 선제공격을 퍼부어 백제군을 격파하였다. 백제는 394년 7월 다시 고구려를 공격하여 수곡성(지금의 신계)에서 전투를 벌이게 되었는데, 이번에는 광개토왕이 정병 5천을 거느리고 이를 격퇴하였다. 그러나 백제가 이에 굴복하지 않고 세력 만회를 위해 왜를 내세워 399년에는 고구려와 연결되어 있는 신라를 공격했고 404년에는 고구려가 장악하고 있는 대방의 고지를 침공해왔지만, 이 또한 5만 병력을 파견하여 신라에서 몰아냄은 물론 가야지역까지 추격했으며, 대방고지에 침입한 왜구도 궤멸시켰고, 나아가서 407년에는 백제를 공격하여 막대한 전리품을 노획하고 6성을 쳐부수어 백제를 응징하였다.


또, 신라에 대해서는 친선관계를 맺고 인질을 보내게 했으며, 400년에는 왜구의 침입으로 위기에 처한 신라를 구원함으로써 영향력을 더욱 강화하였다.

이러한 남방으로의 세력 확장과 함께 서방으로의 진출을 꾀하기도 했는데, 당시 고구려의 서쪽에 있던 후연을 공격하여 상당한 전과를 올리고 요동성(지금의 요양)을 비롯한 요하 이동지역을 차지하였다.

이렇듯 정력적인 정복사업의 결과, 재위기간 중 64성과 1,400촌락을 공파하였으며, 고구려의 영역을 크게 팽창시켜 서로는 요하, 북으로는 개원~영안, 동으로는 혼춘, 남으로는 임진강유역에 이르게 했다. 그러나 412년 39세라는 아까운 나이로 세상을 떠나자, 414년 능에 옮겨 묻고 생전의 훈적을 기록한 능비를 건립하였다. 능과 능비는 지금도 중국 길림성 집안현에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