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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민족 전투원형동천왕(東川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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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천왕(東川王)

시대 : 고구려
생몰년 : 209년(산상왕 13)~248년(동천왕 22)
관련전투 : 서안평(西安坪)전투
상세내용

고구려 제11대 왕. 재위 227~248년.

산상왕의 아들로 동양왕(東襄王)이라고도 한다. 236년(동천왕 10)에 오나라 손권이 사신 호위를 보내어 화친을 청하자 왕은 호위의 머리를 베어 위나라로 보냈다. 242년에는 위와 낙랑·대방과의 육상을 차단하기 위하여 요동지역의 군사적 요충지인 서안평을 공격하였다. 당시 이 지역은 위가 지배권을 강화해 갔으므로 양국의 충돌은 불가피하였다. 이에 위는 244년 가을 유주자사 관구검(毌丘儉)으로 하여금 1만여명의 군사로 고구려를 공격케 하였다. 관구검의 군사는 현도에서 동북진하여 훈하 상류지역으로 진출하였는데, 이때 동천왕은 고구려군 정예 보병과 기병 2만여명을 출동시켜 비류수 상류지역에서 저지하도록 하였다. 양군은 비류수 상류에서 치열한 공방전을 전개하였고, 고구려의 동천왕은 위군을 격파하고 3천여 명을 살해하는 전과를 올렸다. 그리고 그는 “위의 대군이 도리어 우리의 소군만 같지 못하다. 관구검은 위의 명장이나 오늘날 그의 목숨은 우리 손 안에 있다.” 하고, 철기병 5천을 거느리고 나아가 쳤으나 관구검이 군사를 네 모퉁이에 배치하는 방진에 걸려 기병 1천여명만을 거느리고 압록원으로 돌아왔다. 246년 다시 위나라 장수 관구검이 환도성에 쳐들어 오자 당해내지 못하고 왕은 남옥저로 피신하였다. 후에 장군 유유의 계획으로 국토를 회복하였으나 환도성이 파괴되었으므로 247년 서울을 동황성으로 옮기고 248년에는 신라와 화친하면서 안정을 꾀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