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홈
  • 문화원형 라이브러리
인쇄 문화원형 스크랩

한민족 전투원형의자왕(義慈王)

의자왕(義慈王)

시대 : 백제
생몰년 : 미상
상세내용

백제의 마지막 왕. 재위 641년~660년.

무왕의 맏아들이다. 태자 때부터 효로써 부모를 섬기고 형제와 우애하여 ‘해동증자’로까지 칭송되었다. 즉위한 뒤에는 관산성에서의 패전 이후 귀족 중심의 정치운영체제에 일대개혁을 단행하였고, 그 결과 귀족세력에 대한 왕권의 통제력이 보다 강화되었다. 대외관계에 있어서는 지금까지 고구려와 중국에 대하여 취해온 양면적인 외교노선을 수정하여 친고구려정책으로 돌아섰다.

이후 의자왕은 신라에 대하여 보다 적극적으로 압력을 가하였는데, 642년에는 친히 군대를 거느리고 신라를 공격하여 미후성 등 40여성을 함락시켰으며, 또 장군 윤충(允忠)으로 하여금 군사 1만명을 거느리고 신라의 대야성(지금의 합천)을 공격하게 하여 성을 함락시키고 성주 품석(品釋)과 그 처자를 죽이는 등 신라를 큰 곤경으로 몰아넣었다. 이에 그치지 않고 고구려와 연합하여 당항성(지금의 화성시 서신면)을 공격하여 신라의 대당교통로를 차단하려고도 하였으며, 645년 당나라가 고구려를 공격할 때 신라군을 동원한 틈을 타서 신라의 서쪽 방면의 7성을 공격하여 빼앗기도 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의욕적인 활동도 만년에 이르러 사치와 방종, 그리고 귀족들의 내부 분열로 결실을 맺지 못하였고, 한편으로는 고구려와 백제의 연합으로 한반도에서 고립에 빠진 신라로 하여금 당나라와의 연합을 형성하게 하였다.

660년 신라와 당나라 연합군은 백제 공격을 개시하여 소정방(蘇定方)이 거느린 당군은 수로로 백강(지금의 금강)을 건너오고, 김유신(金庾信)이 거느린 신라군은 탄현(지금의 대전 동쪽)을 넘어 사비성(지금의 부여)으로 육박해왔다. 계백(階伯)이 거느린 5,000명의 결사대가 이에 대항하였으나 황산벌전투에서 신라군에게 패배하고 금강하구에서 당군을 막던 군사도 패배함에 따라 수도 사비성은 나당연합군에게 포위되었다. 이에 백제군은 다시 군대를 전면 재편성하여 사비성 교외에 최후의 방어선을 구축하였다. 그러나 당의 군대는 김유신의 작전계획에 따라 네 경로에서 사비성을 공격, 포위하였으며, 사세가 다급하여지자 7월 13일 의자왕은 사비성을 버리고 태자와 함께 웅진성(지금의 공주)으로 탈출하였다. 이때 궁녀들은 대왕포의 바위로 달려가 강물에 몸을 던졌다. 그러한 상황에서도 사비성의 저항은 계속되었으나 성내에 잔류했던 백제 지도부 내에 분란이 생겨 나당연합군의 공격을 받아 결국 성은 함락되었다. 7월 18일 의자왕도 마침내 당군에 항복하였고, 그 결과 백제는 개국한 지 678년만에 망하고 말았다. 왕은 태자 효, 왕자 융 및 88명의 문무신과 백성 1만2000여명과 더불어 당나라로 압송되어 갔으며 거기서 병사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