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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민족 전투원형고종후(高從厚)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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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종후(高從厚)

시대 : 조선
생몰년 : 1554년(명종 9)~1593년(선조 26)
자 : 도충(道冲)
호 : 준봉(隼峰)
시호 : 효열(孝烈)
본관 : 장흥
관련전투 : 진주성(晋州城)전투(2차)
상세내용

조선중기의 문신으로 임진왜란 때 진주성전투에서 복수의병군(復讐義兵軍)을 이끌고 싸운 의병장.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의병장이었던 아버지 경명(敬命)의 뜻에 따라 아우 인후(因厚)와 함께 각지에 흩어진 군졸들을 설득하여 다시 모아 수원에 있는 광주목사 정윤우(丁允佑)에게 인계하고, 돌아오는 길에 태인에서 경명의 의병군과 합류하였다.

왜적이 침입하여 관군이 붕괴되고 의병군마저 흩어져 아버지와 아우가 전사하자, 이듬해 400여명의 의병을 규합, 복수의병군을 조직하였다. 왜적이 대군을 이끌고 진주를 공략한 뒤 호남지방으로 침입하려 하자, 진주성으로 들어가 김해부사 이종인(李宗仁), 창의사 김천일(金千鎰), 충청병사 황진(黃進), 경상병사 최경회(崔慶會) 등과 함께 성을 사수하기로 하였다. 그러나 진주성이 적에게 포위되어 격전이 계속된 지 9일째인 6월 29일 목사 서예원(徐禮元)이 도망치자, 진중은 극도의 혼란에 빠졌다. 이에 북향하여 재배한 뒤 김천일·최경회와 함께 남강에 투신, 순절하였는데, 이들 세 사람을 ‘삼장사(三壯士)’라고 불렀다.

전투에는 패하였으나, 의병장으로서 왜적에게 굴복하지 않고 끝내 순절함으로써 후에 이조판서에 추증되었다. 광주의 포충사(褒忠祠)와 진주의 충민사(忠愍祠)에 제향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