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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민족 전투원형권응수(權應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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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응수(權應銖)

시대 : 조선
생몰년 : 1546년(명종 1)~1608년(선조 41)
자 : 중평(仲平)
호 : 백운재(白雲齋)
시호 : 충의(忠毅)
본관 : 안동
상세내용

조선 중기의 무신으로 임진왜란 때 영천성전투에서 왜군을 격퇴한 의병장.

1583년(선조 16) 별시무과에 급제, 수의부위권지를 거쳐 훈련원부봉사를 지내다 그 뒤 경상좌수사 박홍(朴泓)의 막하에서 활동하였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고향에 돌아가 의병을 모집하여 궐기하였으며, 7월에 각 고을의 의병장을 규합하여 의병대장이 되어 공을 세우고 경상좌도병마절도사 우후가 되었다. 그 뒤 경상좌도병마절도사·경상좌도방어사·경상도병마좌별장·충청도방어사·경상좌도방어사를 지내면서 왜군에 대항하였다.

임진왜란 당시 경상도 일원에서는 6월에 이르러 의병이 일어났는데, 경상우도 초유사 김성일은 권응수로 하여금 영천지역의 의병을 총지휘하게 하였다. 권응수는 영천·하양·신녕 등지의 의병을 통합하여 7월 22일 창의정용군을 조직하고 안강에 본영을 두고 있던 좌병사 박진(朴晋)으로부터 무기를 지원받아 영천성 공격 계획을 세웠다. 26일 권응수는 3,500명의 의병을 거느리고 영천성으로 진출한 후 먼저 결사대 500여명을 선발하여 자신의 동생 권응평으로 하여금 이들을 이끌고 성으로 진격하도록 하였다. 그동안 권응수는 병력을 동원하여 나뭇가지들을 성 둘레에 쌓아놓고 불을 질렀다. 불길은 강한 바람을 타고 성 안으로 번져 창고와 건물에 불이 붙고 이어 화약고에 불길이 닿게 되었다. 삽시간에 화약고가 폭발하자 많은 왜군들이 죽어갔고, 성문을 빠져 나오려던 왜군들은 모조리 권응수 의병들에게 사살되었다. 이 전투에서 승리함으로써 의병의 사기는 크게 올랐고, 왜적은 경주로 후퇴하였다.

1597년 왜군이 다시 칩입해 오자 권응수는 왕명으로 명나라의 부총병 해생을 따라 함경·강원의 병을 거느렸으며, 명나라 양호와 마귀를 따라 울산전투에 참가하였다. 왜란이 끝난 후 1599년 밀양부사를 겸하고, 다음해 의흥위부사직, 1603년 충무위호군에 올라 선무공신 2등으로 책록되고 화산군에 봉해졌다. 이어 도총부도총관이 된 뒤 1606년 경상도방어사, 1608년 남영장을 겸하였다. 좌찬성에 추증되고, 신녕의 경덕사에 제향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