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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민족 전투원형이인영(李麟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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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인영(李麟榮)

시대 : 조선
생몰년 : 1867년(고종 4)~1909년
상세내용

한말 13도 창의총대장으로 서울진공작전을 지휘한 의병장.

1895년 을미사변이 일어나자 유인석(柳麟錫)·이강년(李康秊) 등과 함께 의병을 일으켜 활약하면서 제천전투에도 참여했으나 별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경북 문경으로 이주하여 은둔생활을 하기도 하였다.

1907년 고종이 강제 퇴위되고 군대가 해산되자 의병 활동을 재기하여, 원주에서 의병을 일으킨 이은찬(李殷瓚)이 해산 군인 80명을 포함한 500명의 의병을 모집한 뒤 그를 찾아와 총대장이 되어 줄 것을 요청하자 원주로 출진 관동창의대장(關東倡義大將)에 오른 뒤 사방으로 격문을 보내 의병을 모집하였다. 한편, 서울의 각국 영사관에 서한을 보내고 한국의 정식 군대로서의 발족을 선언하고, 평안도와 함경도를 제외한 각 도에 격문을 보내 경기도 양주로 모일 것을 촉구했는데, 11월에 격문에 호응한 각 도의 의병장들이 속속 양주로 모여들었다. 이에 이인영은 허위(許蔿)·이강년 등이 이끄는 각지 의병과 연합군을 조직, 13도 창의총대장으로서 1만여명의 병력을 지휘하여 서울로 진격하였다. 도중에 38회의 전투를 치르고, 선발대 300명을 이끌고 동대문 밖 30리 지점에 이르렀다가 일본의 저항에 밀려 퇴각, 여주지방에서 패하였다. 그 후 시영(時榮)이라는 가명으로 충북 황간에 숨어 지내다가 일본헌병에게 잡혀 경성감옥에서 사형당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