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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민족 전투원형정인홍 (鄭仁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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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인홍 (鄭仁弘)

시대 : 조선
생몰년 : 1535년(중종 30)~1623년(인조 1)
자 : 덕원(德遠)
호 : 내암(來菴)
본관 : 서산
상세내용

조선 중기 임진왜란 때 의병을 일으켜 왜군에 대항한 학자.

할아버지는 정언우이고, 아버지는 정건이다. 1573년(선조 6) 학행으로 천거되어 6품직에 오르고, 1589년 정여립(鄭汝立) 옥사를 계기로 동인이 남북으로 분립될 때 북인에 가담하여 영수가 되었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합천에서 의병을 일으켜 군사를 모으고 관군 5천을 더 지원받아 2만여의 군사를 이끌고 성주성에 머물던 왜군을 공격하기로 계획을 세웠다. 8월 21일, 정인홍은 의병장 김면과 함께 성주성에 접근하여 포위를 시작하였다. 그러나 의병의 병력이 수만에 달한다는 정보를 입수한 왜군은 이웃 개령의 왜군부대에게 병력 증원을 요청하였고, 이들은 의병이 성주성을 완전 포위하기도 전에 성주성에 도착하여 의병의 측후방을 공격하였다. 이로써 의병은 조직적인 전투를 제대로 하지도 못하고 후퇴하고 말았으나 왜군의 영남지역에서의 전투 수행계획에 큰 타격을 주었다. 10월에 정인홍은 영남의병장의 호를 받고 이듬해 의병 3,000명을 모아 성주·합천·고령·함안 등지를 방어하였다.

1602년 대사헌에 승진, 동지중추부사·공조참판 등을 역임하였으며, 유성룡이 임진왜란 때 화의를 주장하였다는 죄를 들어 탄핵하여 파직하게 한 다음 북인정권을 수립하였다. 이후 북인이 소북·대북으로 분열되자 이산해·이이첨과 함께 대북을 영도하였으며, 선조의 계비 인목대비에게서 영창대군이 출생하자 광해군을 적극 지지하였다.

1608년 광해군이 즉위하자 대사헌에 기용되어 소북일당을 추방하고 대북정권을 수립한 후 1612년(광해군 4) 우의정이 되고, 1613년 이이첨과 함께 계축옥사를 일으켜 영창대군을 제거하고 서령부원군에 봉하여졌으며, 1618년 인목대비 유폐사건에 가담하여 영의정에 올랐다. 그러나 1623년 인조반정으로 참형되고 가산이 몰수당하였으며, 끝내 신원되지 못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