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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무기 ‘장태’를 이용한 동학농민군

시대 : 조선
시기/년도 : 1894년(고종 31)
지역 : 전북 정읍시 덕천면 하학리
관련유적 : 황토현전투 전적지
관련인물 : 전봉준(全琫準)
관련전투 : 황토현전투(黃土峴戰鬪)
상세내용

동학농민군이 개발하여 사용한 신무기 ‘장태’에 얽힌 이야기.

황토현 전투는 동학농민전쟁 때 농민군이 관군에 맞서 싸워 대승을 거둔 전투이다.
1894년 봄 농민군은 고부군수의 학정에 대항하여 봉기하였다. 농민군은 고부를 점령하고 나서 백산(白山)에 집결하였다. 농민군은 황토현 서쪽에 있는 도교산(道橋山)에 진을 치고, 관군은 황토현에서 주둔하면서 서로 대적하고 있었다. 4월 6일 밤 농민군이 기습공격을 하여 크게 승리하였으며, 이를 계기로 1개월 만에 호남지방을 석권하였다.

전봉준은 조총 등의 신식무기로 무장한 관군에 맞서기 위해 손재주가 좋은 농민을 시켜서 무기를 개발하게 하였다. 이에 한 농민이 장태를 이용한 무기를 만들었는데, 원래 장태란 대나무를 타원형의 큰 항아리 모양으로 엮어 그 안에서 닭과 병아리를 키우는 것이다. 이것을 변형시켜서 장태 안에 볏집을 가득 넣고 그 바깥으로는 칼을 꽂아서 방어용․공격용으로 만든 것이다.

특히 4월 23일 장성 황룡촌전투에서 큰 역할을 했는다. 관군이 진격할 때 산 위에서 진을 치고 있던 농민군은 신무기 ‘장태’를 굴리자 관군이 총과 활을 쏘며 달려오다가 날카로운 칼이 꽂힌 장태에 치명적인 타격을 맞아 단번에 고꾸라졌다. 농민군은 장태를 굴리며 관군을 삼 면에서 포위하면서 내려오니, 관군은 압박되어 후퇴하는 수밖에 없었다. 산 위에 진을 친 농민군과는 반대로 큰 벌판에 주둔한 관군의 지형적인 위치가 적군에게는 불리한 점으로 작용했다. 게다라 신무기 ‘장태’를 이용하여 전투를 승리로 이끌어낸 것이다. 농민군은 후퇴하는 관군을 끝까지 쫒아가서 대부분 섬멸시켰고 이때 대장 이학승도 장렬히 전사하였다.

신무기를 사용하는 관군을 이기기 위한 농민들의 지략이 돋보이는 이야기이며, 지금 이 고갯마루에는 ‘갑오동학혁명기념탑’이 세워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