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홈
  • 문화원형 라이브러리
인쇄 문화원형 스크랩

아차산성(阿且山城)에서 죽은 온달(溫達)장군

시대 : 고구려
시기/년도 : 590년(영양왕 1)
지역 : 서울 광장동, 구의동
관련유적 : 아차산성
관련인물 : 온달(溫達)
상세내용

고구려 온달장군의 활약에 얽힌 이야기.

『삼국사기』 열전 온달조에 전한다. 온달은 집안이 몹시 가난하여 걸식으로 눈 먼 어머니를 공양하고 생활을 연명해나갔는데, 생긴 모습이 이상하여 성 안에서는 ‘바보 온달’로 유명하였다. 그래서 평원왕은 딸 평강공주가 울 때마다 “자꾸 울면 바보 온달에게 시집보내련다!”라고 겁을 주어 달래곤 했다.

공주 나이 16세가 되자 왕은 명문 가문인 고씨 집안과 혼례를 치르려고 하였다. 그러자 공주는 “왕은 식언(食言)이 없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아버님께서 말씀하신 온달이 제 짝이옵니다.” 라며 고집을 꺾지 않았다. 평원왕이 공주의 뜻을 허락할 리 없었고, 결국 공주는 궁에서 쫓겨나오게 되어 스스로 온달의 집으로 찾아갔다. 온달과 그 어미는 차마 신분과 처지가 판이한 공주를 아내로 맞을 수 없다고 했지만 결국 공주의 정성에 감복하여 둘은 혼례를 올렸다.

어느 날 평강공주는 온달에게 “낭군님, 장에 가시면 가장 허름한 말을 사오세요. 절대로 통통한 말은 사지 마시고 허름한 말로 한 필 사오도록 하세요.” 라는 청을 하였다. 평강공주는 온달이 사온 허름한 말을 잘 먹이고 훈련시키는 한편, 온달에게도 공부와 무예를 닦도록 지도하였다. 온달은 평강공주의 도움으로 뛰어난 무예와 지략을 가지게 되었다.

고구려에서는 매년 3월 3일 군신 및 5부의 병사들이 낙랑벌에서 사냥대회가 열고 그 노획물로 천신(天神)과 산천신(山川神)에게 제사하는 국가적인 대제전을 열었다. 이 소식을 접한 평강공주는 온달에게 그동안 정성을 기울여 키운 준마를 내어주며 참가하라고 권유한다. 온달은 이 사냥대회에서 남다른 활약을 보여 왕의 감탄을 받았다.

그 뒤 북주 무제(武帝)가 요동에 침입했을 때 고구려군의 선봉으로 나서서 북주군 격퇴에 큰 공을 세웠다. 그 일을 계기로 온달은 비로소 평원왕에게 사위로서 인정받고, 대형(大兄)이라는 관위를 받음으로써 점차 고구려 지배세력 내에서 두각을 드러내었다. 590년 영양왕이 즉위하여 신라에게 빼앗긴 죽령 이북의 한강 유역을 탈환하고자 하니, 온달이 스스로 자원하여 참전하였다. 온달은 아차산성까지 밀고 내려가 전투를 벌이던 화살에 맞아서 수도로 돌아오던 중 전사하였다. 그의 시체를 넣은 관을 운반하려 했지만 전혀 움직이지 않았다. 장성 몇몇이 들려고 해도 꿈적도 하지 않는 것이다. 그 소식을 들은 평강공주는 “내가 가야겠구나.” 라며 달려가서 관을 어루만지며 “자, 이제 모든 것이 끝났으니 돌아갑시다. 억울한 마음을 푸소서.”라고 간곡히 말하니, 비로소 관이 움직였다고 한다.

아차산성은 『삼국사기』에 기록된 백제시대의 유명한 아단성으로 비정되고 있으며, 이곳에서는 백제의 수도 한산이 고구려에 함락되었을 때 개로왕이 이 성 아래에서 피살된 일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