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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민족 전투원형독산성(禿山城)과 세마대(洗馬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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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산성(禿山城)과 세마대(洗馬臺)

시대 : 조선
시기/년도 : 1593년(선조 26)
지역 : 경기 오산시 세마동
관련유적 : 독산성, 세마대지
관련인물 : 권율(權慄)
상세내용

독산성 세마대지에 얽힌 이야기.

독산성은 백제시대에 쌓았다고 전해지며, 도성의 문호와 관련하여 전략상 중요한 요충지이다. 그래서 독산성은 백제부터 통일신라, 고려, 조선에 이르기까지 계속 이용되었다. 또한 독산성은 1593년 7월에 전라도관찰사 겸 순변사였던 권율 장군이 근왕병 2만 명을 이끌고 북상하다가 이 성에 주둔하면서 왜군을 물리친 곳으로도 유명하다. 8월 11일부터 14일까지 군사와 백성이 협동하여 불과 4일 만에 수축하였다고 알려진다.

권율 장군은 명나라 군사들과 함께 서울을 수복하기 위해서 1593년 2만여 명의 군사들과 함께 이 성에 주둔하였다. 이 성은 전략적인 요충지이기는 하지만 물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것이 큰 단점으로 대군을 장시간 주둔시키는 것이 어려운 실정이었다. 이곳까지 진격한 가토 기요마사는 독산성 일대가 벌거숭이산임을 보고 물이 부족한 지역임을 알아차렸다. 그는 그래서 부하로 하여금 물 한 지게를 산 위로 올려 보내어 성 안의 군사들을 조롱하도록 했다. 이에 맞선 권율 장군은 물이 풍부한 것처럼 보이게 하기 위해서 꾀를 내었다. 즉 성 안 서장대에 장막을 치고 잔치를 열고, 군사들로 하여금 백마를 성 위로 데리고 올라가서 흰 쌀을 말에 끼얹어 목욕시키는 시늉을 하도록 한 것이다. 잔치를 벌이는 모습에는 곡식과 물의 풍요함은 물부족에 대한 염려 따위는 전혀 필요없는 것으로 보였다. 게다가 사람이 쓸 물도 부족한 판에 말의 등에 물 한 동이를 연거푸 퍼붓는 것이었다.
왜군이 보기에 이 성 안에는 물이 차고 넘치는 것과 다름 없었다. 결국 이를 본 왜군은 잔치를 벌이고 산꼭대기에서 물로 말을 씻길 정도로 물이 풍부하다고 오해하고 장기간 싸우더라도 승산이 없다고 판단하여 퇴각하였다고 한다.

이때부터 독산성의 서장대를 세마대라고 부르게 되었으며, 권율 장군은 이곳에서의 승리로 서쪽으로 향하던 왜군의 진로를 막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