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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민족 전투원형부산 수영성(水營城) 25인의 의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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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수영성(水營城) 25인의 의병

시대 : 조선
시기/년도 : 1592년(선조 25)
지역 : 부산 수영구 수영동
관련유적 : 25의용단
상세내용

임진왜란 때 수영성에서 7년간 유격전으로 대항한 25인 의병에 대한 이야기.

1592년 왜군이 부산 앞바다에 나타나자 경상좌수사 박홍(朴泓)은 수영성을 버리고 달아났다. 이에 부산의 수영성을 물론 동래성과 부산진성이 모두 함락되었고, 그 이후 7년 동안 이곳 백성들은 왜군이 주둔하면서 약탈하는 등 온갖 만행을 당하게 되었다.

이때 수영성의 수군과 백성들은 스스로 자신들의 고향을 지키기로 결심하였다. 특히 주동자가 25명이 있었는데, 이들은 “싸우면 이겨서 살 것이요, 싸우지 않으면 망할 것이다. 나의 존망이 경각에 있거늘 어찌 삶을 구하여 산야로 달아날 것인가. 단 한 번의 죽음으로 나라에 보답하리라.” 라며 성문 밖 선서바위에서 의병들과 함께 피로 굳게 맹세하였다. 그들은 힘을 모아 군대를 편성하여 바다와 육지 곳곳에서 왜군과 전투를 벌였다. 그들은 비록 군대의 수나 기력이 왜군에 비해 열세했으나 왜군에 맞서 치열한 분투를 벌였다. 그렇게 그들은 일본군이 후퇴하는 순간까지 스스로 식량을 조달하고, 적을 유인하여 사살하고, 적군을 기습공격하여 군수물자를 탈취하는 등 항전하였다.

1609년(광해군 1) 동래부사 이안눌(李安訥)은 이때의 일들을 수집하여 『정방록』을 만들고, 25인의 집 문에 ‘義勇(의용)’이라는 두 글자를 써 붙였다. 또한 조선 순조 때에는 동래부사 오한원이 이들의 후손들에게 역(役)의 의무를 면제하고 포상하였다. 1853년(철종 4)에는 경상좌수사 장인식이 이들 25인의 사적을 기리는 비를 세워 의용단(義勇壇)이라 칭하고, 봄가을 두 차례 제사를 지냈으며, 최근에는 수영기로회에서 주관하여 제사를 지내고 있다. 이 항전은 민중 스스로 일어나 왜군에게 대항했다는 점에서 더욱 높이 평가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