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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민족 전투원형신립(申砬)과 탄금대(彈琴臺)전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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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립(申砬)과 탄금대(彈琴臺)전투

시대 : 조선
시기/년도 : 1592년(선조 25)
지역 : 충북 충주시 칠금동
관련유적 : 탄금대
관련인물 : 신립(申砬)
상세내용

임진왜란 탄금대전투에 얽힌 이야기.

탄금대는 임진왜란 때 신립 장군이 배수진을 치고 싸우다가 전사한 곳으로, 새재(鳥嶺)를 버리고 이 곳에서 싸우다가 패전한 사연에 대해서 전해지는 이야기이다.

신립 장군이 젊은 시절에 사냥하다가 문경새재에 이르게 되었다. 이미 날이 저물어서 어느 기와집에 들어가니 그 집의 딸이 홀로 있었다. 그 처녀는 신립을 보자 “원래 가족과 함께 살았으나 약 1년 전부터 한밤중에 귀신들이 와서 가족들을 잡아가고 이제 소녀만 홀로 남았습니다.” 라고 말하며 살려달라고 애원하였다.
이에 신립은 자신의 담력과 무술을 시험해볼 생각으로 마음을 굳게 먹고, 처녀를 병풍 뒤에 숨어 있게 하고 방안에서 귀신들이 나타날 때를 기다렸다. 밤이 되자 흐릿하나 사람의 형상을 닮은 귀신이 나타났다. 신립은 인간이 아닌 요괴였기에 두려움이 앞섰으나 마음을 다잡고 온 기를 다해 무술을 펼쳐 보였다. 귀신은 신립의 민첩한 몸놀림과 단련된 기공에 질려 달아나고 말았다.
신립과 귀신이 치열하게 서로를 물고 뜯는 사이 처녀는 혼절하여 바닥에 누워 있었다. 신립은 처녀에게 물을 먹이고 사지를 주물러서 겨우 소생시켰다.
이윽고 해가 뜨고 하늘이 밝아왔다. 신립이 작별하려 하니 처녀는 “소녀는 이미 장군에게 맡긴 몸입니다. 저도 장군님을 따라 같이 가겠습니다.” 말하며 그의 소매를 부여잡았다. 그러나 신립은 완강하게 처녀의 애원을 거절하고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그 집을 나왔다.
그 순간이었다. “저를 좀 보소서.” 하는 처녀의 가녀리고도 짧은 외마디 소리가 들려왔다. 신립이 놀라 뒤를 돌아보니, 지붕 위에 선 처녀는 마치 새 한 마리처럼 가볍게 하늘 위로 날아오르는 가 싶더니 곧바로 낙하하였다.

그 뒤 임진왜란이 일어났을 때 선조가 신립을 도순변사에 임명하니, 종사관 김여물과 함께 남북을 잇는 교통·전략상 요충지인 충주를 지키게 되었다. 이때 김여물은 새재의 지세를 이용하여 방어할 것을 건의했으나 신립은 이를 듣지 않고 탄금대에서 배수의 진을 치고 전투를 벌였으나 패배하고 말았다.
이 이유에 대해서, 신립 장군의 꿈에 젊은 시절 새재에서 만났던 처녀가 나타나 “장군은 말 탄 군사로 어찌 산악전을 하려고 합니까? 군졸이 팔천 군사라고 하지만 훈련도 안 된 상태에서 산악전을 하면 저마다 살 곳을 찾아 도망갈 것입니다. 충주 탄금대에 가서 배수진을 친다면 도망갈 길이 없어 저마다 죽을 각오로 싸울 것입니다.” 라는 말을 남겼고, 신립장군이 이를 따랐기 때문이라고 한다.
새재 처녀는 신립이 자신을 데려가지 않은 것에 대해서 원망의 마음을 품고 꿈에 나타나서 그릇된 정보를 가르쳐주었다고 전한다.

왜군의 신무기인 조총에 대해서 잘 몰랐던 신립은, 적은 보병이고 아군은 주로 기병인 점을 감안하여 광할한 벌판에서 전투를 벌이는 것이 유리하다고 판단하였고 또한 제대로 훈련이 안된 군사들의 이탈을 막기 위해 탄금대를 택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조총과 탄금대의 습지는 신립의 기병을 무력하게 만들었으며, 신립은 김여물과 함께 끝까지 싸우다가 자결하였다. 결국 이 탄금대 전투의 패배를 계기로 선조는 서울을 떠나 평안도로 피난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