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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민족 전투원형의병장 곽재우(郭再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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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병장 곽재우(郭再祐)

시대 : 조선
시기/년도 : 1592년(선조 25)
지역 : 경남 의령
관련인물 : 곽재우(郭再祐)
상세내용

의병장 곽재우가 벌인 전투에 얽힌 이야기.

곽재우는 전투에 임할 때마다 항상 용감하고 한 번도 진 적이 없기 때문에 역사에서는 “군사 쓰는데 귀신 같아서 위엄이 세 나라에 떨쳤다.” 라고 기록되어 있다. 또한 항상 붉은 옷을 입고 다녔기 때문에 ‘홍의장군(紅衣將軍)’이라고 불렸다.

곽재우와 의병대는 낙동강과 남강이 합쳐지는 나루에서 왜병과 대적하게 되었다. 곽재우는 군졸들에게 허수아비를 준비시키고 나서 “허수아비를 다 만들었으면 옷을 입혀 놓고 불을 붙여 흔들도록 하여라.” 라고 군졸들에게 명하였다. 왜군들이 보기에는 수백 명의 군사가 강을 가로서 막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것만으로 왜군들의 사기는 움츠러들었고 아무래도 열세한 싸움이 될 것 같아 도망치기에 바빴다. 결국 곽재우는 큰 싸움 없이 위장전술로 왜군을 쫒아내고 전투에서 승리하였다.

또 어느 날에는 곽재우가 병졸들에게 관 겉에 옻칠을 해놓고 벌을 잡아오라고 시켰다. 그리고 나서 병사들이 모아온 벌 수 만 마리를 그 통에 넣어서 길가에 버려 두었다. 왜병들이 그 속에 보물이 있는 지 확인하기 위해서 문짝을 여는 순간, 수백 마리의 벌떼가 터져 나왔다. 당황한 왜적의 군대는 삽시간에 흐트러져 후퇴하고 말았다.

그런 일이 있은 지 며칠 후에 왜졸은 똑같이 옻칠한 관을 발견하였는데, 이번에는 속지 않으리라고 결심하여 그것을 모조리 불 속에 집어던졌다. 이번에는 관 속에 벌 대신 화약이 들어 있어서 크게 폭발하여 일개 부대가 완전히 몰살당했다.

곽재우는 지략을 활용하여 최소한의 희생으로 전투를 승리로 이끌었으며 이로써 더욱 유명해졌다. 전쟁이 끝난 뒤에 조정에서 내리는 벼슬도 사양하고 지리산 속으로 들어갔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