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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제영의 연혁

2D 그래픽
고지도

 

 

사진
조선수군의 최고 통치관청

통제영이란 충청ㆍ전라ㆍ경상도의 삼도수군을 통할하는 통제사가 있는 본진을 말하는 것으로, 삼도수군통제영을 줄여서 표현한 것이다. 선조 26년(1593) 임진왜란 당시 이순신의 한산진영(현 한산도)이 최초의 통제영이다. 통영시 관내에 통제영을 짓기 시작한 것은 선조 36년(1603) 때의 일이다. 제6대 이경준 통제사가 이곳에 터를 닦고 2년 뒤인 선조 38년(1605)에 세병관(보물 제293호), 백화당, 정해정 등을 세웠다.
이곳은 고종 32년(1895) 각 도의 병영과 수영이 없어질 때까지 300여년간 그대로 유지되었다. 이렇게 통영에 설치된 통제영은 조선 수군의 군사적 요충지로서 번성하면서 역사에 부각되었다.

통제영 설치 이전의 통영

통제영이 설치되기 이전 통영은 고성(固城)에 속한 조그마한 촌락으로 그 문화권에 속해 있었다.

시기 연대 내용
삼 한 시 대   변진(弁辰)의 고자미동국(固資彌凍國)
소가야(小伽倻)의 고자군(古自郡)
삼국시대 신라   고자국
남북국시대 신라 경덕왕 16년(757) 고성군(固城郡)으로 개칭
고 려 성 종 14년(995) 고주(固州)로 개칭하고 고주사사(固州刺史)를 두었다가 후에 현(縣)으로 강등
현 종 9년(1018) 고성현은 거제현(巨濟縣)의 속현(屬縣)이 되었다가 현으로 복구되어 현령(縣令)을 둠
원 종 7년(1266) 고성현을 주(州)로로 승격하여 고주(固州)가 됨
충렬왕 남해현(南海縣)에 합쳐짐
공양왕 2년(1390) 현(縣)으로 환원되어 현령이 파견됨
조 선   임진왜란 때까지 고성현의 연혁에는 변화가 없음
통제영 설치 이후의 통영

고성에 속한 한가한 촌락에 불과하던 통영이 번성하면서 역사의 전면에 부각되기 시작한 것은 조선시대 임진왜란을 겪으면서 창설된 삼도수군통제영이 통영에 설치되면서 부터였다.
통제영은 선조26년(1593)에 이순신을 삼도수군통제사로 삼아 한산도에 처음으로 설치되었으나, 제2대 통제사인 원균 때 한산도 본영이 왜적에 의해 유린되었다. 이후 통제영이 현재의 위치인 두룡포로 옮겨진 것은『증보문헌비고』여지고 20〈삼도수군통제영〉조의 기록으로 보아 선조37년(1604)의 일이었다. ‘통영’이라는 이름은 통제영을 줄인 말로서 두룡포에 설치되면서 비롯된 것이다.
이것이 발단이 되어 통영은 삼도수군을 통제하는 군사적 요충지로서 발달하였다. 광해군10년(1618)에는 거제현에 소속되었던 두룡포가 고성면에 이관되어 춘원면이 되었다. 고종7년(1870)에는 고성현을 고성부로 승격시키고 치소를 통제영 안으로 옮기기도 하였으나, 고종9년(1872)에 치소는 다시 고성으로 복귀되었다.

통제영은 고종32년(1895)에 폐지되었다. 고성군은 진주부 고성군으로 개편되었으며, 광무4년(1900)에는 고성군의 남부에 속한 통영반도 지역을 분할하여 진남군이라는 명칭이 평남 진남포시와 혼돈되는 것을 피하기 위해 진남군을 용남군으로 개명하였으며, 통제영이 위치했던 두룡포는 용남군 용남면에 속한 두룡포리가 되었다. 1914년 3월 군면 통합 때 용남군과 거제군을 합쳐 통영군으로 개편하였다. 1931년 4월에는 지방제도 개편에 따른 제령12호로 통영면이 읍으로 승격되었다. 1953년에 통영군에서 거제도를 분리하여 거제군으로 개편하였다. 1955년 9월 1일에는 법률 제371호에 의해 통영군 통영읍이 시로 승격되면서 이순신의 시호를 따라 충무시로 이름지었다. 최근에는 다시 시군통합에 따른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충무시와 통영군을 합쳐 통영시가 되었다.

통제영 고지도
통제읍내지도
국립 중앙도서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연대미상의 1매로 된 채색된 지도이다. 크기는 108.7㎝×54.9㎝이다. 세병관을 중심으로 서쪽에 백화당 자리에 신장청이 있고 공방, 영노청, 선장청, 영노비청이 있고, 동쪽에 병고, 운주당, 아사, 영리청이 간결하게 배치되어 있다. 세병관 앞에 솟을삼문이 있으며, 그 앞에 망일루가 2층 누각이 아닌 솟을삼문으로 표현되어 시기가 조금 앞선 것으로 추청된다. 국립 중앙도서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연대미상의 1매로 된 채색된 지도이다. 크기는 108.7㎝×54.9㎝이다. 세병관을 중심으로 서쪽에 백화당 자리에 신장청이 있고 공방, 영노청, 선장청, 영노비청이 있고, 동쪽에 병고, 운주당, 아사, 영리청이 간결하게 배치되어 있다. 세병관 앞에 솟을삼문이 있으며, 그 앞에 망일루가 2층 누각이 아닌 솟을삼문으로 표현되어 시기가 조금 앞선 것으로 추청된다.
통제영부근 지도
국립중앙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는 연대미상의 1매로된 채색지도이다. 크기는 176.4㎝×136.5㎝이다. 이 지도에서는 건물 대신에 건물명만 표현되어 통제영의 부분보다는 통여전체 비중을 많이 둔 지도라 할 수가 있다. 국립중앙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는 연대미상의 1매로된 채색지도이다. 크기는 176.4㎝×136.5㎝이다. 이 지도에서는 건물 대신에 건물명만 표현되어 통제영의 부분보다는 통여전체 비중을 많이 둔 지도라 할 수가 있다.
통제영지지도
영조때 편찬된 『여지도서』에 실린 1매로 된 채색지도이다. 통영성을 중심으로 그 주변의 여러 섬을 함께 그렸다. 항구에는 여러 척의 배가 정박되어 있는 모습이 그려져 있으며, ‘강구파수수책’도 묘사되어 있다. 세병관을 비롯한 성 안팍의 건물들은 비교적 간략하게 그려져 있으며,각각의 건물명을 기록하고 있다. 세병관 앞의 망일루가 보이지 않음이 특징이다. 현존하는 통영성 관련 지도 중에서 제작연대가 확실한 것으로는 비교적 이른 시기의 지도이다 영조때 편찬된 『여지도서』에 실린 1매로 된 채색지도이다. 통영성을 중심으로 그 주변의 여러 섬을 함께 그렸다. 항구에는 여러 척의 배가 정박되어 있는 모습이 그려져 있으며, ‘강구파수수책’도 묘사되어 있다. 세병관을 비롯한 성 안팍의 건물들은 비교적 간략하게 그려져 있으며,각각의 건물명을 기록하고 있다. 세병관 앞의 망일루가 보이지 않음이 특징이다. 현존하는 통영성 관련 지도 중에서 제작연대가 확실한 것으로는 비교적 이른 시기의 지도이다
해동지도
규장각에서 소장하고 있는 18세기 중엽 전국 330여개 모든 군현의 지도로서 통영부분만 발췌하였다. 크기는 47.5㎝×30㎝이다. 세병관을 중심으로 한 통제영뿐만 아니라 통제성과 당시의 통영주변을 잘 파악할 수 있는 지도이다. 규장각에서 소장하고 있는 18세기 중엽 전국 330여개 모든 군현의 지도로서 통영부분만 발췌하였다. 크기는 47.5㎝×30㎝이다. 세병관을 중심으로 한 통제영뿐만 아니라 통제성과 당시의 통영주변을 잘 파악할 수 있는 지도이다.
통영도
규장각에서 소장하고 있는 순조∼철종년간(1801∼1863)에 제작된 1매의 채색도이다. 크기는 217㎝×107㎝이나 도폭은 152㎝×93㎝이다. 통영성을 중심으로 한 주변의 모습을 그린 것이다. 통영성을 비롯한 주요건물만 표현되어 있다. 세병관 서쪽에 백화당, 남쪽에 중영과 망일루 동쪽에 운주당, 경무당, 내아가 있으며, 북쪽에 후원인 파취헌, 의두헌, 팔루정 등이 배치되어 있다. 선자방 우물과 군뢰청 우물이 있고 청남루를 지나면 석장승이 있고 망일루가 2층루각으로 그려져 있다. 규장각에서 소장하고 있는 순조∼철종년간(1801∼1863)에 제작된 1매의 채색도이다. 크기는 217㎝×107㎝이나 도폭은 152㎝×93㎝이다. 통영성을 중심으로 한 주변의 모습을 그린 것이다. 통영성을 비롯한 주요건물만 표현되어 있다. 세병관 서쪽에 백화당, 남쪽에 중영과 망일루 동쪽에 운주당, 경무당, 내아가 있으며, 북쪽에 후원인 파취헌, 의두헌, 팔루정 등이 배치되어 있다. 선자방 우물과 군뢰청 우물이 있고 청남루를 지나면 석장승이 있고 망일루가 2층루각으로 그려져 있다.
통영성도
1800년대 중기에 제작된 그림으로 표현기법이 조선시대 후기에 널리 이용된 투시기법에 의해 표현되었다. 세병관이 ㄱ자 평면을 하고 있는 것이 특이하며 백화당, 공방, 망일루, 중영, 사옥청, 병고, 운주당, 경무당, 내아, 후원 등이 사실적으로 표현되어 있어 통제영 복원에 귀중한 사료로 평가되고 있다. 주요건물을 제외한 주변건물은 비교적 간략하게 표현되어 있다. 1800년대 중기에 제작된 그림으로 표현기법이 조선시대 후기에 널리 이용된 투시기법에 의해 표현되었다. 세병관이 ㄱ자 평면을 하고 있는 것이 특이하며 백화당, 공방, 망일루, 중영, 사옥청, 병고, 운주당, 경무당, 내아, 후원 등이 사실적으로 표현되어 있어 통제영 복원에 귀중한 사료로 평가되고 있다. 주요건물을 제외한 주변건물은 비교적 간략하게 표현되어 있다.
통영문지형도
국립 진주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조선시대의 1매로 된 채색지도이고 크기는 150㎝×200㎝이다. 통영성과 통제영 건물들이 그려져 있다. 세병관을 중심으로 서쪽에 백화당, 공방, 중영, 산성청의 건물이 있고 동쪽에 운주당, 경무당, 내아, 좌청, 우청 등이 있다. 계단과 도로들이 잘 표현되어 있고 현존하는 장승이 있다. 특히 현존하는 우물가운데 백화당 뒤편의 선자방 우물과 군뢰청 아래의 우물이 잘 표현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서 조선후기에 그려진 것으로 추정된다. 국립 진주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조선시대의 1매로 된 채색지도이고 크기는 150㎝×200㎝이다. 통영성과 통제영 건물들이 그려져 있다. 세병관을 중심으로 서쪽에 백화당, 공방, 중영, 산성청의 건물이 있고 동쪽에 운주당, 경무당, 내아, 좌청, 우청 등이 있다. 계단과 도로들이 잘 표현되어 있고 현존하는 장승이 있다. 특히 현존하는 우물가운데 백화당 뒤편의 선자방 우물과 군뢰청 아래의 우물이 잘 표현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서 조선후기에 그려진 것으로 추정된다.
고성부지도
고성부를 중심으로 그 일대를 그린 조선후기의 지방지도이다. 고종7년(1870)에 고성이 부로 승격된 것임을 고려할 때 이후 19세기말에 그려진 것으로 추정된다. 고성부를 중심으로 그 주변의 지형과 도로망을 그려 놓았으며, 통영성은 지도 아래쪽 춘원면에 소재한 것으로 그려져 있다. 통영성 안팍에는 중요한 건물들만 비교적 간단히 그려 놓았다. 고성부를 중심으로 그 일대를 그린 조선후기의 지방지도이다. 고종7년(1870)에 고성이 부로 승격된 것임을 고려할 때 이후 19세기말에 그려진 것으로 추정된다. 고성부를 중심으로 그 주변의 지형과 도로망을 그려 놓았으며, 통영성은 지도 아래쪽 춘원면에 소재한 것으로 그려져 있다. 통영성 안팍에는 중요한 건물들만 비교적 간단히 그려 놓았다.
통영지도
국립 진주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1매로 채색된 지도로 크기는 150㎝×200㎝이다. 통영성뿐만 아니라 그 주변 해안과 섬까지도 잘 나타난다. 통제영 일곽동 세병관을 중심으로 서쪽에 백화당, 공방 등이 배치되고 동쪽에 운주당과 경무당, 내아 등이 남쪽에 중영, 좌청, 우청, 아방 등이 있다. 북쪽으로는 파취헌, 육의정 등 후원이 잘 표현되어 통제영 배치를 파악할 수 있는 자료이다. 국립 진주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1매로 채색된 지도로 크기는 150㎝×200㎝이다. 통영성뿐만 아니라 그 주변 해안과 섬까지도 잘 나타난다. 통제영 일곽동 세병관을 중심으로 서쪽에 백화당, 공방 등이 배치되고 동쪽에 운주당과 경무당, 내아 등이 남쪽에 중영, 좌청, 우청, 아방 등이 있다. 북쪽으로는 파취헌, 육의정 등 후원이 잘 표현되어 통제영 배치를 파악할 수 있는 자료이다.
통영지형도
대정 5년(1916)에 조선총독부 육지측량부에 편찬한 1첩으로 된 채색지도이다. 크기는 50.3×139.7㎝로 축척 1/10000 로 그려져 거리까지 계산할 수 있다. 세병관 중심으로 서쪽에 백화당, 공내헌, 십이공방, 잉번청이 남아있고 남쪽에 중영과 내아, 좌청, 중교청, 부관청, 아방건물이 남아있으며 동쪽에 운주당, 경무당, 병고, 영사청, 군뢰청, 영노청, 헐소등 주요 관아건물이 남아있다. 또한 비교적 정확한 건물의 위치 등을 파악할 수 있는 중요한 자료이다. 대정 5년(1916)에 조선총독부 육지측량부에 편찬한 1첩으로 된 채색지도이다. 크기는 50.3×139.7㎝로 축척 1/10000 로 그려져 거리까지 계산할 수 있다. 세병관 중심으로 서쪽에 백화당, 공내헌, 십이공방, 잉번청이 남아있고 남쪽에 중영과 내아, 좌청, 중교청, 부관청, 아방건물이 남아있으며 동쪽에 운주당, 경무당, 병고, 영사청, 군뢰청, 영노청, 헐소등 주요 관아건물이 남아있다. 또한 비교적 정확한 건물의 위치 등을 파악할 수 있는 중요한 자료이다.
통제영전경도
개인(임경혜)이 소장하고 있는 1800년대 말로 추정되는 8폭 병풍이다. 병풍 좌측끝에 “선조이풍무공순싱위전라좌수사시창설통제영지전경도”라고 표기되어 있다. 통제영은 세병관을 중심으로 백화당, 중영, 운주당 등과 부속건물 등이 사실적으로 잘 표현되어 있다. 관아주변에 밀집해 있는 민가들은 형태만 표현하였고, 망일루가 없으며 분명루가 종루로 나타나 있다. 특히 각 관아를 구획해 주는 담장과 협문등까지도 자세히 표현되어 있어 통제영 복원에 결정적인 자료로 평가된다. 개인(임경혜)이 소장하고 있는 1800년대 말로 추정되는 8폭 병풍이다. 병풍 좌측끝에 “선조이풍무공순싱위전라좌수사시창설통제영지전경도”라고 표기되어 있다. 통제영은 세병관을 중심으로 백화당, 중영, 운주당 등과 부속건물 등이 사실적으로 잘 표현되어 있다. 관아주변에 밀집해 있는 민가들은 형태만 표현하였고, 망일루가 없으며 분명루가 종루로 나타나 있다. 특히 각 관아를 구획해 주는 담장과 협문등까지도 자세히 표현되어 있어 통제영 복원에 결정적인 자료로 평가된다.
통영지도
규장각에서 소장하고 있는 고종2년(1865)에 제작된 1첩의 채색도이다. 크기는 115×69.2㎝로 제작년대가 확실한 작품이다. 통제영 경내의 동선격인 도로도 보석으로 표현되어 있으며 석축, 계단, 주요나무, 장승등이 현존위치와 일치하게 그려져 있으며 지형의 고저도 어느정도 판단할 수가 있다. 여기서는 세병관 서쪽에 관아는 없어지고 동편의 루가 분명루로 되어있으며 그 옆에 교련관청이 새롭다. 규장각에서 소장하고 있는 고종2년(1865)에 제작된 1첩의 채색도이다. 크기는 115×69.2㎝로 제작년대가 확실한 작품이다. 통제영 경내의 동선격인 도로도 보석으로 표현되어 있으며 석축, 계단, 주요나무, 장승등이 현존위치와 일치하게 그려져 있으며 지형의 고저도 어느정도 판단할 수가 있다. 여기서는 세병관 서쪽에 관아는 없어지고 동편의 루가 분명루로 되어있으며 그 옆에 교련관청이 새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