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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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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점과 수조

수군은 수영에서 다양한 군사훈련을 받았는데 대표적인 것이 군점과 수조이다. 군점이란 각 수군진영 및 읍진의 군선·군사·집물 등을 포함한 제반 군사를 점검하는 군사점고이고, 수조는 바다 또는 강에서 병선의 진퇴와 대오를 갖추어 성진하며 적을 맞아 전투하는 법을 훈련하는 수전조련을 각각 칭한다.
특히 임진왜란 이후 수군을 군사훈련에 익숙하게 하고 경계근무, 수색작전 등에 동원하기 위한 대책이 일정하게 세워졌다. 수조는 1년에 봄, 가을 두차례에 걸쳐 수영에 모여서 하고 거진 이하 단위들에서도 일정한 규정에 따라 훈련하게 되어 있었다. 수조때의 결진(진을 치는 것)과 조련 등에 대한 자세한 기록은 『병학지남』과 『병학통』에 실려있고, 당시 수조 광경을 그린 각종 『수조도』가 있다.

수조는 삼도수군을 통합지휘하는 통제사의 가장 대표적인 군무의 하나로서 군의 임무를 점검하고 전투력 향상과 유사시를 대비한 것이었다. 통제영의 군점수조는 춘조와 추조로 매년 2회 실시하였는데, 춘조는 통제사 관하의 각영이 참여하는 합조였고 추조는 각도 수사가 주관하는 도수조로 행하여졌다.
통영합조시 삼도수군의 수많은 장졸들은 물론 무려 수백척의 전선이 통영 앞바다에 총집결하여 통제사가 직접 군사를 점검하고, 강구 앞바다에서 학익진을 펴는 등 해상훈련을 할 때면 대포소리가 하늘을 진동하고 거북배를 비롯한 대소 전선들이 오색찬란한 깃발을 나부끼며 항진하는 등 조선후기 관방 최대규모의 군영의식이었다.
한편 통제영 군점수조때에는 통영성의 방비훈련인 성조를 함께 거행했으며, 군사들의 전투능력 평가와 이를 심사하여 포상과 죄를 내리는 사공죄를 시행하였다. 그리고 시사를 열어 군사들의 사기진작과 연무를 장려하고 인재를 뽑았으며, 객사 세병관 또는 선상에서 군사들에게 음식을 나누어주는 호궤를 베풀어 위로하였다.
조선후기 수조 시행실태를 보면 추조는 비교적 충실하게 실시된 반면, 합조는 수시로 정지되는 경우가 많았다. 이는 유행병, 한발과 농사 사정, 해상의 일기불순과 군역부담의 과다, 재정 악화로 대규모의 선단과 다수의 군병이 동원되기에는 무리가 따른 것으로 보인다.
삼남 합조의 규모를 밝혀주는 『수조홀기』와 『삼도주사분군도』에 따르면 군선이 각기 195척, 192척 그리고 해상전투원과 그 대기원, 가왜군, 산성군, 친군을 포함한 동원 군액이 6,627, 6,399명에 달하는 대규모이고, 이 무렵 삼도 각 영의 군선 보유수와 비교하여 80%내외가 참여하고 있다. 그러므로 수조와 관련된 제법규는 엄격하여 관하 수사이하 제진장, 수령의 임무는 엄히 통제 되었다.

승전무

승전무는 삼도수군통제영에서 전승되어 온 북춤·칼춤 등으로 군영에서 추던 춤이다. 통제영 산하의 교방청(敎坊廳)에서 기녀가 추었는데 궁중 무용의 품격을 지니고 있다. 승전무는 임진란때에는 이순신의 전승과 인품을 기리고 장졸들의 사기를 북돋우거나 노고를 위로하기 위하여 추어졌으며, 전쟁이 끝난 후에는 승전을 축하할 때와 통제영의 각종 의식이나 충무공의 춘추제향과 탄신일에 제승당(制勝堂) 의례에 헌무된 의식무로서, 1592년(선조 25)부터 1896년(고종 33)까지 계속되었다. 영문이 폐지된 일제 때에도 제승당 의례에서 연행되었고 지금도 제승당 의례에서 북춤의 연행은 계속되고 있으며, 1968년 북춤이 1987년 칼춤이 문화재로 지정되어 지금의 승전무로 완성되었다.
승전무는 북춤과 칼춤으로 나뉜다. 북춤은 고려조 충렬왕 때부터 조선조 말엽까지 이어져 온 궁중무고형(宮中舞鼓形)이며, 칼춤은 신라시대때 부터 가면을 쓰고 양손에 칼을 쥐고 추던 춤으로서 조선조 후기에 기녀무로 변형되어 오다가 임진란 당시 북춤과 함께 추게 되었다. 북춤은 지방관아의 연향에서도 추었는데 그 모습이 김홍도의 ‘평양감사좌기도’에도 남아 있다. 지방관아의 북춤은 통영과 진주의 관아에서 추던 것이 전승되고 있다.

승전무는 중앙에 북을 놓고 원무(元舞) 4명이 사방색(四方色)인 청·홍·흑·백의 쾌자(快子)를 입고 북을 울리며 창을 부르고 춤을 추면서 돌고, 협무(挾舞) 12명이 바깥을 에워싸고 돌면서 창을 부른다. 북을 쳐서 신호를 하는데, 한 번 울리면 집합, 두 번 울리면 진격·전투, 세 번 울리면 퇴진(退陣)·정전(停戰)을 뜻하여 옛 병법을 따랐다. 모였다 흩어졌다 하면서 추는 전아하고 호쾌한 춤이다. 창은 『정읍사(井邑詞)』의 잔영인 듯한데, ‘달아 높이 고이 돋을사/어기야 어가 어기여차/우리 우리 충무장군 덕택이요/낙지자(樂之者) 오늘이야’이며 마디마다 ‘지화자 지화자 지화자 지화자’의 후렴이 따라 붙는다. 반주음악은 <영산회상> 가운데 삼현도드리와 타령을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