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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제영의 변천

오랜 역사를 통해 이루어진 통제영의 성곽과 건물들은 고정된 모습이 아니라 시기에 따라 많은 변화를 거쳤다. 따라서 실제 복원을 할 경우 그 시기를 정하는 것에도 많은 어려움이 따른다. 하지만 디지털콘텐츠를 활용할 경우 원하는 시기를 쉽게 설정할 수 있고 또한 변천의 양상까지 다룰 수 있어서, 역사·건축 교육용 영상뿐만 아니라 각 병영·수영·읍성 등의 전시관에서 영상으로 활용할 수 있다.
최초의 통제영은 임진왜란 당시 이순신 장군에 의해 한산진(현 한산도, 1593∼1603)에 설치되었으나 제2대 통제사 원균이 칠천량 해전에서 참패하여 진영의 본거지인 한산진은 소실되었다. 이후 선조 36년(1603) 제6대 이경준 통제사가 통제영을 두룡포(현재의 통영)에 터를 닦고 설치하여 고종 32년(1895) 각 도의 병영과 수영이 없어질 때까지 292년간 조선수군의 본거지로서 유지되었다. 이러한 통제영의 변천을 형성기, 성장기, 유지기, 폐영기를 거쳐 현재모습까지 구분하여 살펴본다.

형성기(1603~1638)

형성기는 통제영을 두룡포로 이전하는 선조 36년(1603)을 전후한 시기이다. 전란이후 피폐해진 각 지역의 복구로 통제영의 체제정비도 기본적인 체계만을 우선 마련하였고, 다수의 외창을 조영하여 재정적 토대를 구축하였다. 제6대 이경준 통제사로부터 선조말기에 이르는 기간에는 겨우 통제사의 거처와 객사인 세병관, 백화당 등과 기본적인 병고·군창·공고·영고 등의 각종 창고들만이 마련되었다. 광해군대에 이르러서야 영리청과 내아, 사공청 등 일부 통제영의 하부구조가 이루어졌다. 그리고 각종 화포류를 담당하는 포수청과 주사화포청 등이 조영되어 가장 기본적인 물적구조을 갖추었다. 한편 이시기에는 통제영 직할의 우후영의 모습도 가장 기본적인 반구정과 군관청이 본영내에 마련되고, 거제와 접한 요충지인 견내량에는 우후가 풍화기에 나아가 지키는 방영이 인조 8년에 그 모습을 갖추었다.

성장기(1638~1720)

성장기에 이르러 통제영 건설은 삼도수군을 관할하는 위용에 걸맞게 건물들이 계속적으로 조성되었고 성곽을 지어 완전히 정착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병자호란이 끝난 후인 인조 18년 서리청, 인조 28년 교련당, 운주당, 호소각 등 본영의 주요 기구들이 마련되었고, 효종대 등패청과 파취헌, 현종 9년 고마창이 마련되었다. 현종 14년 군뢰청, 삼랑창 등 많은 공해가 조영되었고, 숙종 1년 우후영에 집사청, 화포청, 사공청, 우후군뢰청 등 대대적으로 보충되었고, 숙종 3년에는 수항루가 세워졌다.
통영성은 숙종 4년을 전후한 시기에 통제사 윤천뢰에 의해 본격적으로 건립이 추진되었다. 성문과 누각을 짓고, 숙종 20년에 동·서·북쪽에 망루의 구실을 하는 포루를 세웠다. 그리고 숙종대에 선군직청, 어변군관좌우청, 영노청 등 통제영의 각종 관청이 정비·설립되었다. 사실상 통제영 건설이 마무리되는 시기라 할 수 있다.

유지기(1720~1895)

유지기는 경종대에서 고종 32년까지로, 통제영이 가장 번성하였던 시기이기도 하다. 이 시기에는 일부 통제영의 부족한 부분을 보완하고, 낡은 건물들을 보수하거나 개건하였다. 특히 주목되는 것은 영조 16년 그 동안 방치되었던 한산도 제승당을 중건하고, 보역창, 섬향고, 평무고 등 주로 통제영의 내창등이 다수 건립되었다.
통제영은 크게 통제사가 제반 의전을 치루던 객사인 세병관 영역과 내방하는 손님을 맞이하는 통제사 접견실인 백화당 영역, 통제사 참모장들이 업무를 보며 기거하는 중영 및 내아 영역, 통제사가 업무를 보는 운주당 영역으로 크게 구분질 수가 있다.
백화당 영역 서쪽으로는 통제영 시대의 각종 수공업품들을 생산하였던 십이공방이 자리하고, 그 하단에는 각관의 색리들이 수직하던 잉번청을 비롯한 교방, 노인청, 등패청, 군기청 등의 건물이 배치되어 있다. 중영은 일제시대까지 군청 건물로 사용되었으며 내아는 중영을 중심으로 서측에 배치되었다. 망일루를 지나면 서측에는 산성청이 동측으로는 좌청이 자리하고 있다. 보석을 따라 분명루를 통과하면 영노청, 군뢰청, 영리청이 남향으로 배치하고 그 뒤로 운주당 영역에 접어들게 된다.
삼문을 지나면 집무실인 운주당과 경무당, 후원으로 득한당, 파취헌, 육의정, 의두헌이 있으며, 경무당 옆 신성문을 통과하며 내아가 있다. 이렇듯 통제영은 각 전각들이 각기 다른 방향으로 배치되어 있으면서도 정리된 모습을 하고 있었다.

폐영기(1895~1945)

폐영이후 통제영의 모습은 1916년 조선 총독부에서 발간한 ‘통영지도’에서 자세히 살펴볼 수 있다. 이것은 축적이 1/10,000 지도로서 건축물, 석축, 도로, 고목나무 등이 모두 표현되고 있다. 당시 세병관은 통영면 대화정에 위치하고 있으며 세병관을 중심으로 서측으로 백화당, 남측으로 중영, 동측으로 운주당이 배치되어 있다.
이 지도에서 표현된 석측과 도로는 현재와도 유사한 점이 많으며 특히 세병관 앞 석축과 진입계단은 현재와 동일하다. 먼저 백화당 주변배치를 보면 백화당 뒤 석축과 공내헌, 십이공방 등이 배치되어 있고 그 건물들이 당시에는 소학교로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세병관 서측 아래에 고목나무가 있으며 그 밑에 있는 구조물이 잉번청 위치와 일치하고 있으며 중영아래 표현된 석축은 현재에도 있다. 중영 좌측으로부터 구조물은 응수헌과 반구정으로 추측된다.
세병관 동측을 보면 운주당을 비롯하여 병고, 경무당이 있고, 운주당 전면에 영리청, 영노청, 군뢰청이 배치되어 있음을 알 수 있으며 영리청 건물은 현재 사찰(법륜사)로 사용하고 있으며, 면사무소 건물로 사용된 아방, 부관청 등이 배치되어 있다.

현재모습(1945~현재)

지금의 통제영 모습은 일제강점기 일본의 의도적인 훼철과 해방이후 근대화에 따른 주택건립, 선창의 매립으로 인해 빠르게 훼손되었다. 불행 중 다행으로 객사인 세병관이 현존하여 현재 이를 중심으로 망일루, 지과문 등이 복원되었다. 또한 선창에 있었던 수항루를 망일루 옆에 복원하였고, 두룡포기사비를 이건하여 망일루 뒤편에 두었다. 더불어 최근에 운주당, 경무당, 내아 등이 복원되었다.
통영시에서는 통제영 복원사업을 5단계로 추진하고 있다. 제1단계는 세병관 주변의 망일루, 지과문, 주변 협문 등을 옛 모습대로 복원, 제2단계는 지원·지청자리에 운주당을 중심으로 경무당, 병고 및 삼문, 내아 등의 관아건물과 부속채를 복원, 제3단계는 통영초등학교 일대에 백화당을 비롯하여 공내헌 십이공방 선자방 등을 복원, 제4단계는 통영세무서 일대로 중영을 비롯하여 중영내아 산성청 등을 복원, 제5단계는 기타 외곽지역을 복원할 예정이다. 현재까지는 제2단계가 완료되었고 제3단계가 진행중이다.

통제영의 형성과 변천 (1593~1895)
형성기
(1603~1638)
1601   반구정
1603 6대 이경준 세명관(개축), 백화당(개축), 정해루
1604   포수청(개축), 주사화포청(개축), 사부청, 군관청, 병고, 공고,
영선고(개축), 호례고, 보민창, 육화약고(개축), 천자고(개축)
1605 7대 이운룡 충렬사, (묘정비)
1609   영리청
1611 10대 우치적 망일루(개축), 포량창
1617 15대 정기룡 아사
1629   사공청
성장기
(1638~1720)
1640   진무청
1644 34대 이완 운주당, 호소각, 선성문, 지구관청
1646 35대 김응해 지과문
1648   등패청
1652 37대 황헌 파취헌(1652~1654)
1656 40대 유혁연 얼무정
1657 41대 정목익 (이순신 장군의 비)
1667 48대 이지형 세병관 중수
1668   고마창(개축)
1670 51대 김시경 충렬사의 동재와 서재
1673   군뢰청
1675   집사청, 포수청(개축), 화포청(개축), 사공청(개축)
1677 57대 윤천뢰 통영성, 수항루, 청남루, 대변정
1679 59대 전동흘
생사당, 부관청
1680 60대 민섬 (충렬사 사적비), 선고직청, 사부청(개축)
1680   사령청
1682 61대 원상 원문루, 산화약고
1684   진무청, 군뢰청(개축2)
1685 63대 김세익 세병관 중수, 중별향창
1686   별무사청, 병신고
1687   치고수청, 기죽전(箕竹田)을 일궜다.
1688   잉번청(개축), 통인청, 산화포청
1689   대변좌청
1690   수령수청
1693 69대 목림기 동서북의 세 포루
1694 70대 최숙 무사청(개축), 경충재
1695   세병관 뒤에 놓을 팔족자(八簇子)를 만듦
1697   영노청, 기생청
1699   동루상고
1700   훈장관청
1701   어구에 석인을 세워 동남방의 허세를 막음
1704 79대 이창조
산군기고
1706   이장청
1707 82대 우중주 산성청
1710 84대 조이중
선현창(개축), 송덕비(어민들의 생활을 윤택하게 한 공로)를 세움
1711 85대 김중원
선현창
1718 92대 김중기
숭무당
유지기
(1720~1895)
1725 98대 이재항 양학당
1729   의생청
1730   부서기청
1731 102대 정수송 진휼청
1739 107대 조경 제승당 중수, (이순신유허비), 삼질고, 석빙고
1742   원문성, 공진루
1743   군화기청
1744   망일암
1748   망일루의 편액을 쓰고 각자해 걸었음
1749   수로고
1751   생사당을 지어 제향
1752   호수청, 보민고
1753   좌우파수, 동서수책, 나뢰고
1755   선기패관청, 수청포수청, 서루상고, 수항루 확장중수
1757   저향창, 착량항의 길을 새로 닦았다(1757-1759).
1760   착량항의 다리 가설
1765   보민고 제도를 만듦
1769 127대 이국현 망일루 재건, 담장, 홍예문, 선군기고
1775 132대 조완 백화당 재건
1778   취고수청(개축)
1779 136대 서유대 세병관 중수, 응수헌
1783 138대 이한창 숭무당,수항루
1785 139대 이방일 원문성 재건, 만하정, 열무정 재건, 망일암, 좌변내장
1786   만하정, 송림방화사건으로 파직, 기삽석통을 세움
1788   섬향둔 설치
1789 144대 신응주 생사당
1790   섬향고
1791 145대 이윤경 마부청(개축), 분명루, 좌우석주
1794 147대 이득제 분료정(이전)
1796 148대 윤득규 선장청(이전)
1803   별기대청
1804 152대 료효원 원문성 수축, 의두헌
1806 153대 이 당 분료정 이건 및 육의정으로 개명
1808   물시장 개설
1810 155대 오재광 착량항 길, 망일루 중수
1812 156대 조 계 착량항 다리 새로 가설
1813 157대 서영보 세병관 중수 및 단청
1825 164대 이석구 천척루, 분료정 재건
1830 167대 이항권 충렬사의 동재와 서재,
1835 170대 임성고 선창의 우제를 쌓음
1836   우변내장
1839 172대 이승권 충렬사의 강한루와 영모문
1861   경충재라는 현판도 썼다.
1871 193대 채동건 세병관 중수
1877 198대 이규석 제승당유허비 새로 정비
1886 203대 이규안 역대 통제사의 선정비를 한곳에 모으고 비각을 지음
폐영기
(1895~1945)
    세병관, 지과문
    백화당, 공내헌, 십이공방
    중영, 잉번청, 응수헌, 반구정
    운주당, 병고, 경무당, 영리청, 영노청, 군뢰청, 아방, 부관청
현재모습
(1945~현재)
    세병관, 지과문,
    망일루, 수항루
    운주당, 경무당, 내아

ㆍ참고문헌
문화재청, 『세병관 실측조사보고서』, 20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