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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모산성

고모산성 이야기
문경고모산성 문경고모산성

문경고모산성은 경북 문경시 마성면 신현리 산 30-3(임) 일대의 고모산(231m)에 위치하고 있다. 고모산은 신현리 북동쪽에 솟아있는 오정산(812m)에서 남서쪽으로 뻗어 내린 산줄기가 영강과 만나는 지점에서 다시 솟은 구릉성 야산에 속한다. 산성의 서쪽 일대가 강안과 접하고 있다. 영강은 낙동강 최상류에 해당되며, 북쪽에서 흘러내리는 조령천과 가은천이 고모산 일대에서 합류하여 남쪽으로 흘러 낙동강에 유입된다.

산성의 동쪽으로 옛길인 영남대로가 지나가고 있는데 영강변을 따라 단애면 중턱을 깎아 조성한 관갑천잔도(串岬遷棧道 일명 토끼비리)가 석현성 진남루 관문과 돌고갯길을 따라 북쪽 충주방향으로 이어지고 있다. 산성 아래로는 신라 고분군이 남동사면 일대에 넓게 분포하고 있다. 성벽은 북쪽 정상부가 있는 봉우리(231m)와 남쪽 봉우리(193m)의 능선을 연결하여 사방으로 성벽을 축조하였으며, 서쪽은 봉우리 사이에 형성되어 있는 계곡의 하단부를 가로질러 연결하고 있다. 계곡부를 포함한 포곡식 형태이며, 지형적으로 배후에 해당하는 북쪽이 높고 남쪽이 평탄대지를 이루는 사모봉형의 산성이다. 이러한 입지조건은 삼국시대 산성이 입지하는 일반적인 조건을 갖추고 있다 하겠다.
산성의 전체 둘레는 1,300m로 동벽 345m, 북벽 300m, 서벽 375m, 남벽 280m의 규모이다. 평면모습은 북서쪽으로 약간 기울어진 평행사변형 모습으로 남북방향을 장축으로 하고 있다.

축조 재료는 전체 구간을 석축하였으며, 대부분의 성벽에서 내외겹축의 성벽이 확인되고 있으나, 일부 구간에서는 지표상으로 내측 성벽이 확인되지 않고 있는 지점이 있다. 그러나 이곳 또한 지하에 내측 성벽이 매몰되어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성내 시설물은 동서남북의 4개소에 문터가 남아 있으며, 남동쪽 회절부와 북동쪽 회절부에 곡성을 축조한 것이 확인된다. 또한 북동쪽 회절부의 곡성은 후대 성벽을 개축하면서 치성으로 고쳐 쌓은 흔적이 확인된다. 지표상으로 1개의 수구가 확인되었으나, 2005년 발굴조사를 통하여 수구가 2개임이 밝혀졌다. 수구지 내측은 넓은 삼각형의 평탄지로 이곳에 연못과 같은 저수시설이 존재할 것으로 추정된다.

문헌속의 고모산성

고모산성 에 대한 문헌기록은 주로 조선시대에 편찬된 지리서에 명칭과 현상에 대하여 간략하게 기록하고 있다. 조선시대에 간행된 각종 지리지에서 고모산성에 대해 언급된 기사들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고려태조가 남쪽으로 쳐 내려와서 이곳에 이르니 길이 없었는데 토끼가 벼랑을 따라 달아나면서 길을 열어주어 갈 수가 있었으므로 토천이라 한다. 그 북쪽의 깎아지른 봉우리에 돌로 쌓은 성터가 있는데 옛날에 지키던 방수처이다”(『新增東國輿地勝覽』)“고모성은 토천의 서쪽 단봉 위에 있으며, 두 골짜기가 중반을 묶은 것 같아서 대천 대로가 그 성하를 경유하는데 둘레가 9백90척이다. 모두 신라 때 방어하던 곳이다”(『大東地志)
“고모성은 현의 남쪽 20리 토천의 서쪽 단봉위에 있으며 양편 골짜기를 묶은 것 같고 중반에는 대천이고 길이 그 아래에 나 있어 좌우의 길이 만나는 곳에 웅거하였으니 돌로 쌓았다. 주위가 990척이다”(『增補文獻備考』)
또한 임진왜란 이후 유성룡이 지은 『懲毖錄』에는 고모산성을 임진왜란에 지키지 못함을 한탄하며 다음과 같이 기술하고 있다.

“…아아 원통하다. 뒤에 들었지만 왜적이 상주에 들어왔으나 그래도 험한 곳을 지나갈 것을 두려워하였다. 문경현의 남쪽 10리쯤 되는 곳에 옛 성인 고모성이 있는데 여기는 좌우도의 경계가 되는 곳으로서 양쪽 산골짝이 묶어놓은 듯하고 가운데 큰 냇물이 흐르고 길이 그 아래로 나 있다. 적병들은 여기 우리군사가 지키고 있을까 두려워하여 사람을 시켜 두세번 살펴보게 하여 지키는 군사가 없다는 것을 알고는 곧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면서 지나갔다고 한다. …”

조선시대에 편찬된 위의 기록에서 볼 때 고모산성의 정확한 축성시기는 알 수 없지만 삼국시대 신라에 의해 축조되었음을 짐작케 하며 지리지가 편찬되던 조선전기에서 임진왜란에 이르기까지 산성이 관방으로서 기능을 상실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성의 둘레에 대해서는 모두 동일하게 990척으로 기록되어 있는데 실제 고모산성의 규모가 둘레 1,300m인 점을 감안하면 오기이거나 허물어진 산성의 남아있는 성벽의 길이만을 계측한 것으로 여겨진다.
다음으로 『朝鮮王朝實錄』의 고모산성과 관련된 기사를 살펴보면

“…조령(鳥嶺)에 신충원(辛忠元)이 설치한 곳 또한 극히 험준하여 두 산이 병립하여 있고 그 사이에 다만 하나의 통로가 있을 뿐인데, 계곡이 굽이굽이 돌고 골짜기가 깊어 요새에 적합합니다. 정경세가 요새를 설치하고자 하는 곳은 바로 고모성(姑母城)인데【곧 면찬천(免竄遷)이다.】 그 형세가 참으로 천연의 험새입니다. 영남의 형세가 몹시 좋으니 국가가 만약 이 유리한 지세를 이용하여 지키면 적을 방어함에 무엇이 어렵겠습니까.… …
성룡이 아뢰기를, “만약 고모산성에 진을 설치하고 웅거하여 지키면 그 형세가 가장 좋을 것입니다. 대개 지난해는 농사가 크게 풍년이 들어서 민간에 아직은 식량 걱정이 없으니, 하늘이 만약 잘 도와 금년에 적이 다시 준동하지 않는다면 조치할 수 있을 것입니다. 다만 군수품이 핍절되었다고 하니 이것이 걱정입니다. 상주 등지도 또한 모두 군량이 없으니 극히 걱정됩니다. 부득이 군병을 모으고 또 군량을 조치한 뒤에야 수비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고모 산성의 역사를 시작하였는가 ” 하니, 성룡이 아뢰기를, “이미 시작하였습니다.…”(『朝鮮王朝實錄』 선조29년 4월 2일)

위의 기사의 내용은 고모산성의 지정학적 중요성을 강조하고 이러한 지형을 이용하여 요새를 설치하여 적을 방어할 것을 건의하고 있으며, 고모산성의 보수와 개축을 시작하였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즉 삼국시대에 축조된 고모산성은 폐기되었다가 임진왜란 이후 개축이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다.
고모산성에 대해서는 일제시대에 간략하게 내용이 언급되어 있다. 『朝鮮寶物古蹟調査資料』에는“고모성이라 칭하며 주위는 12정이고 석축으로 완전하게 남아 있다. 접속하여 도로를 횡단하는 문성이 있는데 길이는 약170간이며 거의 붕괴되었다.” 라 기록되어 있다.

이러한 문헌기록에 보이는 고모산성은 그 축성연대는 확실히 알 수 없으나 삼국시대 신라에 의해 축성된 사실과 그 후 산성으로서의 경영이 멈추었다가 다시 조선시대에 들어 그 지정학적 중요성이 다시 인식되어 산성에 대한 보수와 개축이 이루어지고 있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고모산성내 시설물
고모산성 문지 고모산성 문지

서문지는 진남휴게소 북단에서 산성내로 오르는 소로길이 개설되어 있던 곳으로 성외에서 산성내로 가장 쉽게 진입할 수 있는 지점에 해당된다. 서문지 바깥으로는 국도 및 강안과 인접하고 있다. 성내 형성된 곡부에서 남쪽 능선쪽으로 치우쳐 성문이 개설되어 있으며 문지 주변으로 성문을 보호하기 위한 치 또는 곡성의 구조는 확인되지 않는다. 지형적으로 곡부의 좌우 날개에 해당되는 능선부가 바깥쪽으로 돌출하여 성문을 감싸고 있는 평면 구조를 하고 있어, 별다른 방어시설은 필요 없었던
것으로 파악된다. 성문의 형식은 체성벽을 쌓아올리다가 성벽의 높이가 어느 정도 높아진 다음 성문을 축조하기 위하여 개구부(開口部)를 내고 체성벽과 직교하는 측벽을 축조하는 전형적인 현문(懸門)의 형태이다. 즉 성벽의 외면에서 바라볼 때 개구부는 凹 모습을 하고 있다.
서문터는 개구부를 형성하는 좌우 측벽과 성문을 설치하였던 문구부(門口部)로 이루어져 있으며, 성문 안쪽으로 1, 2차로 나누어지는 성내로 오르는 계단시설이 있다. 성내로 진입하면 내벽에서 이어지는 옹벽 시설이 좌우에 축조되어 있으며, 옹벽 안쪽으로 투석용 석환더미가 내벽에 접하여 쌓여져 있다.
서문지의 규모는 총길이 20m(개구부 10.7m, 성내시설 5.8m, 보축성벽 3.5m), 너비 5m이다. 문지의 주향은 서남향(W-45°-S)이다. 측벽은 남측벽 높이 6~11단 1.6m, 북측벽 7~18단 3.25m가 잔존하고 있는데, 북측벽은 체성벽 내외벽과 축조기법에서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어 후대에 개축되었던 것으로 판단된다. 개구부 바닥에서 성벽 상면 붕괴면까지 높이를 복원하면 북측 7m이다. 성문 바깥쪽의 기초부(보축성벽)까지 높이가 6m이므로 성문은 체성벽의 중단부에 개구부를 개설하였음을 알 수 있다. 바닥시설은 길이 60~80cm 내외의 판상형 석재들을 이용하여 놓았다. 바닥돌 상면에 퇴적된 층은 전체적으로 흑갈색 소토층이 깔려 있었다.

남문지

성내로 진입하는 정비도로가 개설되어 있던 곳이다. 조사결과 남문지와 성내에서 옹벽시설, 투석용 석환무지, 보축성벽이 확인되었다.
남문지는 서문지와 동일한 성벽 중간지점에 개구부를 낸 현문양식이다. 규모는 총길이 16m(개구부 측벽 11m, 보축성벽 너비 2m, 성내 출입시설 3m), 너비 5~5.8m이다. 성문의 주향은 남동향(S-45°-E)이다. 문지 바닥에서 성벽 상면까지의 높이는 동쪽 3.6m, 서쪽 5m이며, 성벽 기저부다짐층(보축성벽)까지는 5.8m이다. 즉 남문지의 축성 시 들어나 있던 성벽의 높이는 9.4m(동쪽 기준)로 성문은 성벽기저부 위로 2/3지점에 개설되어 있는 형태이다. 통로부는 개구부와 문구부로 나누어지는데 성내벽선과 연결되어 서문지와 동일하게 문구부를 조성하면서 축조된 것으로 여겨지는 석축시설이 측면과 접하여 확인되고 있다. 석축은 동쪽 측면이 잘 남아있는 규모는 길이 80cm, 높이 8단 90cm이다. 문구부의 너비는 3.5m로 추정된다. 바닥시설은 세장한 판석형 석재를 사용하였으며, 성문과 동일한 길이 방향으로 놓았다. 성내에서 바깥쪽으로 가면서 거의 수평을 이루나 완만하게 낮아지는데 40cm 고저차이를 보이고 있다.

또한 중앙부가 높고 측벽에 인접한 지점이 10cm 낮아 경사에 따라 자연적으로 측벽에 접한 바닥돌을 따라 배수가 되었던 것을 볼 수 있다.

고모산성 배수로 고모산성 배수로
고모산성 성벽 고모산성 성벽
동문지

동쪽 성벽의 중간부에 위치하고 있다. 산성내로 과수원 및 밭 경작지가 전개되며 이곳을 따라 서쪽으로 내려가면 서문지 일대의 계곡부로 이어진다. 문지 바깥쪽으로는 현재 신현리 마을로 내려가는 소로가 개설되어 있다.
문지의 주향은 동북향(N-70°-E)이다. 규모는 길이 1,100cm, 너비 40cm, 측벽 높이 500cm이다. 북측벽에 하단부에 성벽이 남아있다. 잔존 규모는 높이 6단 130cm, 길이 450cm이다. 사용된 성돌이 면과 모를 다듬지 않은 부정형이 많고 단과 열이 불규칙하여 동벽 체성벽에 비해 축조상태가 정교하지 못하다.

북문지

북쪽 성벽의 남쪽에 치우쳐 위치하고 있다. 산성내에서 가장 높은 봉우리인 정상부(해발 231m)로 현재 치성이 있는 바로 서편에 해당한다. 체성벽 상면에 성벽이 연결되지 않고 단면상 U자형의 함몰부가 있어 문지가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규모가 작고 성벽 상단부에 통로부가 개설되어 있는 점, 성외가 가파른 급경사면을 형성하고 있는 점을 볼 때 현문 형태의 암문이 개설된 것으로 판단된다.
문지의 주향은 북서향으로 N-20°-W이다. 규모는 길이 640cm, 너비 180~280cm, 측벽 높이 150cm이다.

고모산성 성벽1 고모산성 성벽1
고모산성 수구 고모산성 수구
성벽

성벽의 규모는 잔존높이 외벽 17~30단 2.8~4m, 보축성벽 55~62단 7.8m이며, 내벽 20~46단 2.6~4.7m이다. 확인된 성벽 축조시 구지표면(성벽 기초부)과 현재 붕괴된 성벽 상면까지 높이를 복원하면 성벽의 높이는 외벽 15.5m(보축성벽 포함), 내벽 5.3m 이상이며, 너비(겹축성벽 두께)는 15m(보축성벽 너비 5m)에 이른다.
성 외면은 체성벽에 덧붙여 보축성벽을 축조하였는데 체성벽의 1/2을 보강하고 있다. 보축성벽은 단면 삼각형 형태로 기초부에서만 3단까지는 수직으로 쌓아 올린 후 그 위로부터는 성벽으로 기울여가면 면을 맞추어 쌓아올렸다. 전체적으로 단면의 모습은 체성벽에 붙은 삼각형 모양이다. 보축성벽 단면의 기울기는 하단부 63°, 상단부 50°를 나타낸다. 보축성벽의 바깥면은 기초부에서 높이 50cm 내외 점토다짐하여 피복하였으며, 그 위로는 축성시부터 전체 성벽이 노출되어 있었던 것으로 보여진다.
체성벽은 면과 모를 다듬은 석재를 이용하여 한층씩 수평을 이루도록 줄눈쌓기에 의해 엇갈리게 쌓아올렸다. 성돌의 크기는 길이 40~50cm 내외, 두께 10cm, 내의 널판 모양의 납작한 느낌이 나는 판상형으로 길이:두께의 비는 4:1~5:1이다.
내벽은 수로 아래로 계속하여 성벽이 3m 이상 이어지고 있다. 두께 10cm, 길이 40cm 내외의 혈암계열의 석재들을 사용하여 수평을 맞추어 쌓아올렸다.

곡성 및 치성

체성벽에서 방어 상 취약한 부분 또는 중요한 시설물이 위치한 지점에 성벽에서 바깥쪽으로 장방형 또는 반원형 형태로 돌출하여 축조한 구조물을 치성 또는 곡성이라 한다. 고모산성에서는 곡성부로 추정되는 곳이 2개소가 있다. 남동곡성은 체성벽이 남쪽으로 뻗은 능선과 만나 동쪽으로 회절하는 지점으로 남문지에서 북동쪽으로 73m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는데 체성벽에 반원형으로 돌출하여 축조된 곡성과 성벽을 보강하고 있는 보축성벽이 확인되었다. 성벽이 회절하는 지점에 반원형 형태의 곡성부를 축조한 예는 보은 삼년산성이 있다. 북벽과 동벽이 회절하는 곳에 북치성이 축조되어 있다. 북동쪽으로 뻗은 능선에 돌출하였으며, 성밖으로 1단의 경사를 두고 완만한 평탄지가 있으며, 그 아래 수직의 급경사면이 이어지고 있다. 성내에 예비군 참호가 개설되어 있다.
북치성의 규모는 돌출 길이 10m, 너비 9.5m이다. 평면형태가 일반적인 치성처럼 양쪽이 돌출된 것이 아니라 직각으로 회절하는 체성벽의 동쪽부분만을 바깥으로 돌출하여 형태를 하고 있다. 하단부에 곡성이 축조되고 있고 성벽의 축조기법으로 볼 때 후대에 개축한 것으로 판단된다.

수구

수구는 성내의 물을 배수시키는 구조물로 내외 겹축의 체성벽의 중단부를 관통하여 수구를 개설한 형태이다. 입수구 중앙으로 기준으로 할 때 383cm 거리를 두고 양쪽에 각각 동일한 형태와 규모를 가진 수구가 축조되었는데, 바닥석을 기준으로 높이의 차이가 있다.수구부는 성벽을 관통하여 개설된 수구(입수구, 출수구)와 성내에 이와 연결된 수로를 갖추고 있다. 성내벽과 연결되는 수로는 바닥석을 깔고 측벽을 조성한 석축으로 덮개시설은 확인되지 않는다. 구조상 특이한 점으로 수구 1과 수구 2가 동일하게 수로 바닥부가 입수구 바닥부 보다 70cm 아래에 있어 입수구 아래 성 내벽이 자연적으로 수로 바닥부의 차단벽을 이루고 있다는 점이다. 즉 성내 수로를 통과하는 수량이 성벽의 입수구를 통해 배수되기 위해서는 수로바닥에서 높이 70cm 이상의 물이 차야만 차단벽을 넘어 입수구와 연결되지 구조를 하고 있다. 통상 배수구조가 위에서 아래로 흐른다는 점을 감안하면 특이한 형태라 할 수 있다. 수로는 성내로 4~5m 이어지다 연결시설 없이 마무리가 되고 있다. 이러한 수구와 성내 수로가 연결된 구조는 청주 부모산성의 북문지 일대 수구부에서 확인된 바 있다.

연못지

고모산성의 연못과 같은 저수시설은 지표상으로 확인되지 않고 있다. 다만 서쪽 계곡부의 수구 위치하고 있는 성벽 내측으로 삼각형의 넓은 평탄대지가 조성되어 있다. 최근까지 밭으로 경작이 이루어졌던 곳이다. 평탄지의 성벽에서는 당초 지표상으로 1개의 수구가 확인되었으나 발굴조사 결과 높이를 달리하는 또다른 수구가 확인되었으며, 수구에서 내측 평탄지로 이어지는 배수로가 확인되었다. 이러한 양상으로 보아 삼각형의 평탄대지의 하부에 연못과 같은 저수시설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사진으로 보는 고모산성

시 대 : 신라
위 치 : 경상북도 문경시 마성면 신현리

문경 고모산성은 경북 문경시 마성면 신현리 일대의 고모산(231m)에 위치하고 있다. 고모산은 신현리 북동쪽에 솟아있는 오정산(812m)에서 남서쪽으로 뻗어 내린 산줄기가 영강과 만나는 지점에서 다시 솟은 구릉성 야산에 속한다.
성벽은 북쪽 정상부가 있는 봉우리(231m)와 남쪽 봉우리(193m)의 능선을 연결하여 사방으로 성벽을 축조하였으며, 서쪽은 봉우리 사이에 형성되어 있는 계곡의 하단부를 가로질러 연결하고 있다. 계곡부를 포함한 포곡식 형태이며, 지형적으로 배후에 해당하는 북쪽이 높고 남쪽이 평탄대지를 이루는 사모봉형의 산성이다. 이러한 입지조건은 삼국시대 산성이 입지하는 일반적인 조건을 갖추고 있다 하겠다. 산성의 전체 둘레는 1,300m로 동벽 345m, 북벽 300m, 서벽 375m, 남벽 280m의 규모이다. 평면모습은 북서쪽으로 약간 기울어진 평행사변형 모습으로 남북방향을 장축으로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