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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약무기

천자총통
육군박물관 유물 참조 육군박물관 유물 참조

천자총통(天字銃筒)은 조선 후기의 재래식 화포 중에서 구경이 11.76cm 로 가장 크다. 총통의 크기는 얼마든지 크게 만들 수 있지만, 일정 규모 이상이 되면 발사시의 반동 때문에 배에서는 사용할 수 없으며, 성능에 비해서 화약의 소모량이 과다해지게 된다. 조선시대에는 천자총통도 화약을 허비한다는 비난을 자주 들었다. 보물 647호로 지정된 육군박물관 소장 천자총통은 1555년에 제조되었으며, 길이가 131cm, 구경은 12.8cm이다. 현충사에 소장된 천자총통은 1849년에 제작되었으며, 길이가 136cm이다.

지자총통

지자총통(地字銃筒)은 천자총통보다 조금 작은 규모지만, 조선 전기의 장군화통에 비해서는 위력이 훨씬 큰 화포이다. 특히 일종의 산탄인 조란환을 200개 넣고 쏘면 적선 위의 군사들을 몰살시킬 수 있을 정도로 위력이 강했다. 하지만 지자총통도 화약의 소모량이 너무 많아서 크게 환영받지는 못했던 것 같다. 《김해읍지》에 수군의 황자 오호 전선에 지자총 3위가 있다고 한 것으로 보아, 대형 전선에서는 지자포를 사용했던 것으로 보인다.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에 보물 제862호 지자총통이, 동아대학교에 보물 제863호로 지정된 지자총통이 소장되어 있다.

현자총통

선조 33년의 기록에 전투에서 가장 긴요하게 쓰이는 것이 현자총통(玄字銃筒)이라고 했다. 특히 해전에서는 현자총통과 황자총통이 가장 널리 사용되었으며, 조선 후기의 읍지에서도 지방의 수영에 가장 많이 비축된 대형 총통은 현자총통이었다. 국립진주박물관에 소장된 보물 제 1233호 현자총통은 길이가 75.8cm이고 구경은 6.5cm이다. 보물 제885호 로 지정된 해군사관학교 소장 현자총통은 1596년에 제작되었으며, 길이가 79cm, 구경은 7.5cm이다.

승자총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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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자총통(勝字銃筒)은 선조 초기에 경상병사 김지가 만들어서 북방의 야인을 물리칠 때 큰 효과를 봤던 소형 총통이다. 현재 국립중앙박물관 에는 보물 648호로 지정된 만력을묘명승자총통(萬歷乙銘卯銘勝字銃筒)이 소장되어 있는데, 이것이 바로 김지가 만든 최초의 승자총통중하나이다. 승자총통은 종전의 총통에 비해 총열이 길기 때문에 사거리가 길고 명중률도 높았다. 임진왜란 때는 이순신 장군이 해전에서 승자총통으로 왜적을 많이 사살했고, 행주산성의 권율 장군도 승지총통을 주요 화기로 사용했다. 조선시대의 기록에 동조총(銅鳥銃), 동소총(銅小銃), 승자동포(勝字銅砲)라고 기록된 것은 대부분 승자총통을 의미한다. 《화포식언해》에 승자총통으로 가죽깃이 달린 나무 화살을 쏘면 600보가 나간다고 했고, 철환은 15개를 한 번에 발사한다고 했다. 승자총통은 주물로 간편하게 만들 수 있었기 때문에, 조총이 전래된 이후에도 보조적인 화기로 널리 사용되었다.

황자총통

원래의 황자총통(黃字銃筒)은 현자총통과 크기만 다를 뿐 구조상으로는 동일하다.

하지만 임진왜란 이후에 블랑기가 도입되면서 정철을 이용해 서 총통을 거치하는 새로운 기술이 도입되자, 황자총통에도 포신 중간에 정철을 달아서 포가에 얹을 수 있도록 만들고, 총통 후미 에는 자루를 끼울 수 있는 모병을 달았다.

1812년에 제작된 현충사 소장 황자총통은 모병을 제외한 길이가 74.5cm이고, 구경은 4.4cm이다.

블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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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랑(佛狼)은 프랑크FIank라는 단어에서 유래된 말로서, 중국에서 유럽인을 지칭하는 말이다. 서양에서 전해진 신형 화포인 블랑기(佛狼機)는 16세기 초에 중국에 도입되었고, 거의 같은 시기에 조선에도 전해졌다. 종래에는 선조 27년 명군이 평양성을 공격했을 때 조선에서 처음으로 불량기가 시용되었다고 알려졌으나, 1982년에 양천구 목동에서 명종 18년(1563)에 제작된 불량기 자포 세 점(보물 제861호)이 발굴되어, 블랑기의 도입 시기는 명종시대로 당겨지게 되었다.

종전의 재래식 화포는 모포(母砲)에 직접 장약을 하여 발사하기 때문에 연사 속도가 느렸지만, 이 블랑기는 하나의 모포에 여러 개의 자포(子砲)가 딸려 있어서, 미리 장약을 해둔 자포를 이용하여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연사를 할 수 있었으며, 모포를 발사하는 동안에도 다른 자포에 장전을 할 수 있었다.
조선 후기에는 이 블랑기가 대량으로 제작되어 성과 보루에 배치되면서 조선군의 주력 공용 화기로 사용되었다. 고종 31년에 관군이 동학군을 물리치고 전주감영을 되찾았을 때 관군이 노획한 대형화기는 블랑기 24문뿐이었다.
기효신서》에는 블랑기가 1호에서 5호까지 있으며, 1호는 길이가 9척에 달하고, 5호는 길이가 1척에 불과하다고 했다. 하지만 조선에서 주로 제작된 블랑기 4호와 5호는 각각 전체 길이가 98cm와 82cm로, 같은 급의 《기효신서》 블랑기에 비해서 상당히 큰 편이다.

블랑기에는 1문당 5개의 철제 자표E가 딸려 있었으며, 포신은 철(鐵佛狼機)이나 청동(輸佛狼機)으로 제작되었다. 포를 발사할 때는 자포에 미리 장전을 해놓았다가 모포에 삽입하고 잠철(歲鐵)을 자포의 뒤쪽에 박아 고정한 뒤 발사했다. 블랑기에는 족철(足鐵)이라고 하는 뾰족한 철침이 포열의 중간에 달려 있어서, 이를 포가나 포차에 박고 뒤쪽의 나무자루를 손으로 잡고 조준한다. 발사체로는 커다란 연환 하나를 사용하지만, 적이 근접해오면 조란환을 발사하기도 했다.
불량기는 여러 가지 장점을 지닌 신형 총통이었으나, 자포를 단순히 모포 안에 끼워넣고 잠철로 고정하는 구조였기 때문에, 모포와 자포의 결합이 완전하지 못하면 가스가 새고 위력이 떨어지는 문제점이 있었다. 따라서 블랑기를 대형화하는 데는 어느 정도 제약이 있었으며, 이로 인해 조선 후기까지도 천자총통 등 재래식 대형 총통이 계속 사용되었다.

구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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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렬형 포탄인 공심환을 발사하는 약 20cm 길이의 소형 완구의 일종으로 일반 완구와 구분되는 몇가지 특징으로는 무쇠 포탄인 공심환의 경우 포탄 아래 격목이 아예 고정이 되어 있고, 일반 비진천뢰와 달리 화약을 넣는 구멍이 없다. 또한 포탄의 구멍이 원형이며, 구멍을 덮는 개철의 흔적이 없고, 포신은 나무로 만든 통안에 약 45도 각도로 고정되어있다. 구포를 설치한 사각형의 나무통 자체에도 어딘가 고정했던 것으로 보이는 4개의 사각고리가 달려 있다.

조총
전쟁기념관 유물 참조 전쟁기념관 유물 참조

조총은 16세기 초반에 스페인에서 개발된 아퀴버스(arquebus)에서 유래된 소총으로 1550년 경 포르투갈 상인에 의해 일본으로 전래되었고, 조선은 임진왜란 이듬해인 1593년에 처음으로 제작에 성공하였다. 조총은 전체 길이가 135cm 내외이고, 구경은 1.5cm 정도이다.
조총은 길이가 긴 천보총이나 장조총과 구분하여 평총이라고 부르기도 하고, 보병이 휴대하는 총통이라고 하여 행용총이라고도 했다.

삼안총
국립경주박물관 유물 참조 국립경주박물관 유물 참조

삼안총(三眼銃)은 3개의 총열을 하나의 병부(柄部: 손잡이 부분)에 결합시킨 다관식의 화기이며, 일종의 연발식 개념의 총으로 삼혈총으로도 불리운다. 조총의 제조기술이 까다로워 공급이 부족하였기 때문에 제조가 용이한 삼안총을 대량으로 제조하여 조총의 수요를 충당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