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홈
  • 문화원형 라이브러리
인쇄 문화원형 스크랩

발해 대제국 건설 - 대제국건설의 서장

1장, 대제국 건설의 서장/ 1절, 대제국건설의 초석을 놓다

2부
대제국 건설
발해, 대제국 건설의 장


1장. 대제국 건설의 서장


1절. 대제국건설의 초석을 놓다

고구려.말갈 유민들을 이끌고 강제 이주지였던 영주로부터 요하를 건너 동으로, 동으로 끊임없는 행군을 거듭한다. 당나라 토벌군의 추격을 완전히 뿌리치고 새로운 역사를 열어나가려는 염원은 피와 땀으로 가득 찬 2천리 대장정으로 이어져 마침내 동모산에 새 역사의 뿌리를 내림으로써 고구려를 잇는 찬란한 대제국의 싹을 틔워 내고야 말았다.
698년.
대조영은 목단강 상류인 돈화를 중심으로 스스로 나라를 세움으로써 고구려.부여를 계승하는 한편, 발해 건국의 또 하나의 주체인 말갈을 포함하는 대제국 건설의 기틀을 마련했다.
대조영이 정착한 목단강 상류는 본래 말갈 7부족의 하나인 백산(白山)말갈이 터전을 일구고 있던 지역이었다. 백산 말갈인들은 대체로 지금의 연길, 훈춘을 중심으로 한 광대한 지역에 분포하고 있었다.
대조영이 2천리 대장정 끝에 이곳 목단강 상류의 백산 말갈지역에 터를 잡은 것은 그가 이끌던 주축 세력의 하나였으며 걸사비우로부터 인계받았던 말갈인들이 모두 이 백산 말갈 출신이었기 때문이다. 백산 말갈의 대추장이었던 걸사비우의 맏아들로 대조영에게는 손아래 처남인 고연수(高延秀)는 대조영에게 고씨 성을 하사받았으며 발해 건국의 중심 역할을 해낸 장수 가운데 하나였다.
고연수는 동모산 정착 이후 여전히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주변의 백산 말갈의 중소 부족들을 빠른 속도로 발해에 흡수시키는 데 많은 공을 세웠다. 그는 강인한 흡인력을 가지고 백산 말갈의 각 부족들을 발해로 흡수했을 뿐 아니라 대조영과 새로운 제국 발해에 충성심을 갖도록 함으로써 발해의 주축을 이루는 신민으로 만들어 놓았다.
목단강 유역의 백산 말갈지역과 함께 초기 발해의 주축을 이루었던 지역은 대조영 가문의 뿌리였던 속말 말갈지역이다.
속말 말갈은 말갈 7부족 가운데 가장 남쪽에 분포하고 있었는데, 장백산의 북쪽이며 송화강에 기반하고 있는 지역이다. 대체로 지금의 길림시를 중심으로 한 송화강 중류의 광대한 지역에 퍼져 있었다.
이미 오래 전부터 대조영의 가문이 이 속말 말갈에 지배력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영주로부터 동모산으로 옮겨와 새로운 제국 발해를 세운 뒤 가장 먼저 국가의 주축으로 삼았던 것이다.
이로써 발해의 건국 초기에 국가의 기틀은 속말.백산 말갈을 주축으로 이루어졌으며 이들에 대한 기존의 지배력을 바탕으로 견고한 국가체제를 형성해 나갈 수 있게 되었다. 또한 이후 주변의 여러 말갈족을 흡수.통합을 통해 과거 고구려가 이루었던 동북아시아의 대제국을 건설하는 초석이 마련되었던 것이다.
발해가 대제국을 건설해나가는 과정은 인접한 여러 강대국과의 경쟁.협력을 통한 영토확장의 과정으로 이어진다. 이 시기 말갈의 각 부족을 흡수해서 동북아시아의 패권을 차지하려고 했던 강대국은 발해를 포함해서 당나라, 돌궐, 흑수말갈 등을 꼽을 수 있다. 이들 국가는 적절한 견제와 전쟁을 통해 자신의 세력권을 넓혀 나갔고 대조영이 발해를 건국하면서 더욱 치열한 경쟁이 이루어지게 되었다.

1장, 대제국 건설의 서장/ 2절, 초원의 영웅 묵철가한과의 동맹

2부. 대제국 건설 - 발해, 대제국 건설의 장

1장. 대제국 건설의 서장


2절. 초원의 영웅 묵철가한(黙綴可汗)과의 동맹

발해의 건국을 전후해서 발해의 서북쪽, 중국 북방의 초원지대에 강력한 힘을 가진 국가가 탄생했다. 이 지역에는 돌궐한국(突厥汗國)이 건설되었으나 그 뒤 서돌궐과 동동궐로 분열되었었다.
이때 등장한 초원의 영웅이 바로 묵철가한이었다. 묵철가한은 동돌궐 골돌록(骨咄綠)의 아우로 병약한 골돌록이 10년 만에 병사하자 그 뒤를 이었다.(691년) 그는 9척 장신의 호걸로 용맹과 지략을 겸비한 장수였기 때문에 여러 돌궐 장수들과 백성들로부터 강고한 신뢰와 지지를 받기 시작했다.
묵철가한은 발해 태동의 불씨가 되었던 영주에서의 이진충의 봉기를 돌궐 부흥의 기회로 삼았다. 이진충과 손만영이 영주에서 봉기를 하자 묵철가한은 군대를 이끌고 이들을 토벌할 수 있도록 당에 요청하였고, 측천무후는 이를 허락하였다.
묵철가한의 출병은 단순히 당에 대한 호감이나 충성심의 발로가 아니었다. 지략이 뛰어난 묵철가한은 거란 출신의 이진충과 손만영에 대한 토벌을 빌미로 그들의 발원지였던 거란을 흡수하려는 속내를 가지고 있었다.
그리하여 용맹스러운 돌궐군대를 이끌고 거란을 격파함으로써 당나라의 우환거리를 제거함과 동시에 거란의 대부분을 흡수하여 강대한 세력을 형성하게 되었다. 묵철가한은 이 승리를 빌미로 당나라의 측천무후에게 당당하게 승리의 보수를 요구했다. 그 결과 거란세력의 흡수뿐만 아니라 하곡(河曲) 6주의 항호(降戶) 수천 호, 곡식 종자 4만석, 잡채(雜彩) 5만단, 농기구 3천점, 철 4만근을 승리의 부산물로 얻을 수 있었다. 묵철가한은 이 전쟁의 승리를 통해 강대한 세력을 형성할 수 있었으며 대제국 당나라에 대해서도 언제든 당당할 수 있는 자신감을 얻게 되었다.
그리하여 698년 10만 기병을 직접 이끌고 당나라 변경의 각 주둔군을 공격하여 세력을 넓혀갔으며 규주(嬀州), 단주(檀州), 울주(蔚州), 정주(定州), 조주(趙州), 상주(相州) 등을 공략하기도 하였다.
당나라에 대한 묵철가한의 공격은 단순히 그의 호전적 성품으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다. 돌궐뿐만이 아니라 발해, 흑수말갈 등 당나라에 인접해 있던 국가들은 당시 중원을 제패하고 대제국 당나라의 지배력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이야말로 그들 국가의 독립과 세력 확장의 출발점이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해관계는 돌궐의 묵철가한과 비슷한 시기에 새로운 나라를 일으키고 세력 확장을 도모했던 발해의 대조영과도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었다.
북부 초원의 묵철가한이 강맹한 군대를 바탕으로 당나라를 견제하면서 세력을 확장하고 있었던 시기 그 동남쪽에 자리를 잡고 막 국가의 기틀을 마련하고 있던 대조영은 집요한 당나라의 견제를 뿌리치고 세력 확장을 통해 더욱 강고한 국가를 만드는 데 총력을 기울이고 있었다.
대조영은 개국의 일등 공신이자 처남인 고연수를 초원의 영웅 묵철가한에게 보내 동맹의 의사를 타진했다. 이미 2천리 대장정을 통해 당나라 대군의 추격을 뿌리치고 새로운 국가를 열었던 대조영의 영웅적 풍모에 대해 익히 알고 있던 묵철가한은 대조영의 동맹 제의를 흔쾌히 받아들였다. 그리하여 형제의 의로써 동맹을 맺고 당나라에 대한 견고한 견제선을 형성할 수 있게 되었다.

1장, 대제국 건설의 서장/ 3절, 대당 화친과 영토 확장

2부. 대제국 건설 - 발해, 대제국 건설의 장

1장. 대제국 건설의 서장


3절. 대당 화친과 영토 확장

698년, 새로운 나라를 건국한 대조영은 안으로는 속말.백산 말갈을 통합하여 국가의 기초를 세우는 한편, 날로 확장해 가는 돌궐의 묵철가한에게 처남 고연수를 보내 형제의 관계를 맺어 당나라를 견제하며 서서히 국가체제를 정비해 나갔다.
수년에 걸친 내치를 통해 이제 국가의 기틀이 공고해졌다고 판단되자 당나라에 대한 본격적인 외교관계를 맺어나가기 시작한다.
화해의 손길은 당나라에서 먼저 보냈다. 당나라는 국가의 기틀을 마련한 발해를 더 이상 모른 체 할 수 없어 사신을 보내 국가로써 인정했다. 대조영은 이에 화답하여 둘째 아들인 대문예(大文藝)를 당나라 수도 장안에 보내 입시(入侍)하도록 하였다.(705년)
대조영은 당나라와 국가 대 국가로 관계를 맺고 화친함으로써 이제 본격적인 영토 확장에 들어갔다.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는 정세 속에서 동북아시아 일대에 분포되어 있던 말갈의 제 부족을 흡수.통합하여 강대한 세력을 이루는 것만이 강고한 국가체제를 이루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과거 고구려의 영향권 하에 있었던 말갈의 여러 부족들은 고대제국 고구려가 멸망함에 따라 거란, 돌궐, 흑수말갈 등의 강력한 국가의 세력 확장의 대상이 되어 왔었다.
이미 속말.백산말갈을 흡수한 대조영은 우선 주변에 있는 말갈 부족부터 하나씩 함락시켜 나갔다.
대조영은 우선 북쪽에 있는 백돌(白咄)말갈 지역에 대한 통합부터 추진했다. 백돌말갈은 발해의 북쪽에 있는 지역으로 대체로 지금의 길림을 중심으로 한 송화강 중류의 광대한 지역에 분포하고 있었으며 지금의 길림성 서란현(舒蘭縣)과 흑룡강성 오상(五常) 일대에 해당한다. 이 때 백돌말갈 지역에는 커다란 세력 없이 중소 부족들이 산재해 있었다.
대조영은 동생 대야발(大野勃)과 처남 고연수에게 각각 군사 1만씩을 주어 두 길로 백돌말갈 지역을 정벌하게 하였다. 이미 대조영과 그의 발해군대의 위맹함이 이 지역 말갈부족들에게 널리 알려져 있었기 때문에 이들 정벌군은 별 저항 없이 여러 부족들을 흡수해 갈 수 있었다. 이들이 진군하는 동안 백돌말갈의 각 추장들은 대조영에게 공물을 바치며 충성을 맹세했고 이로써 자연스럽게 발해의 신민으로 편입되어 갔다.
대조영은 각 부족 추장들의 충성 맹세를 받고 그들의 권한을 유지하도록 하는 한편 각 부족의 용맹한 병사와 장수들을 차출하여 발해군에 편입시켜 군사력을 확충시켜 나갔다.
백돌말갈에 대한 흡수.통합은 순조로워서 불과 1년 만에 완전히 백돌말갈 지역을 발해의 일부로 편입시킬 수 있었다. 백돌말갈을 완전히 복속시킨 발해군은 다시 돌아오지 않고 내처 안거골(安車骨)말갈로 향했다.
안거골말갈은 백돌말갈의 동북쪽에 위치해 있으며 지금의 흑룡강성 영안(寧安)을 중심으로 한 목단강 유역에 분포해 있었다. 안거골말갈은 당시 강대한 세력을 형성하고 있었던 흑수말갈과 접하고 있는 지역이어서 몇몇 부족은 발해보다는 흑수말갈 쪽에 편입되기를 희망하기도 했다.
안거골말갈 남쪽 지역의 여러 부족을 통합해 가던 발해군은 북진하던 중 대추장 아율빈(阿律賓)이 이끄는 부족의 저항을 맞닥뜨리게 되었다. 대추장 아율빈은 1천 5백의 부족 병사를 이끌고 발해군을 공격했으나 발해의 고연수 군대에 패하여 사로잡히게 되었다. 고연수는 아율빈과 그의 둘째 아들을 발해로 압송하고 아율빈의 큰 아들로 하여금 발해의 왕 대조영에게 충성하도록 맹세시킨 후 그의 아버지 아율빈을 대신해서 부족을 다스리게 하였다.
안거골말갈의 가장 큰 부족의 대추장이었던 아율빈의 패배와 발해로의 압송에 대한 소문이 다른 안거골말갈 부족들에게 퍼진 뒤 발해군에게 저항하는 부족은 없었다. 그리하여 안거골말갈 지역에 대한 흡수.통합이 순조롭게 완성될 수 있었다. 발해군은 안거골말갈에 대한 복속이 완전히 이루어진 뒤 오랜 원정을 끝내고 개선하였다.
이로써 동모산에서 시작된 발해는 속말.백산.백돌.안거골말갈을 흡수하여 동북아시아의 무시할 수 없는 대세력을 형성하게 되었고 이렇게 통합된 세력을 기반으로 동북아시아를 아우르는 대제국을 이룰 수 있는 기틀을 마련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