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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해 - 군사조직의 특징

발해의 군사조직은 '新唐書' 渤海傳(신당서 발해전)에 그 내용이 간략하게 언급되어 있다. 즉 “其武員有左右猛賁.熊衛.羆衛, 南左右衛, 北左右衛, 各大將軍一.將軍一.”의 기사가 바로 그것이다. 그런데 이 사료의 해석을 둘러싸고 발해의 군사조직은 좌맹분위(左猛賁衛).우맹분위(右猛賁衛).좌웅위(左熊衛).우웅위(右熊衛).좌비위(左羆衛).우비위(右羆衛).남좌위(南左衛).남우위(南右衛).북좌위(北左衛).북우위(北右衛)로 이루어졌다는10위설과 남좌우위(南左右衛)와 북좌우위(北左右衛)를 각각 하나로 보고 8위제였다고 주장하는 8위설로 견해가 나누어졌다. 이것은 사료를 해석함에 있어서 그 차이가 나타난 것으로, 아직까지는 구체적인 중앙군사조직의 역할과 그 운영원리에 대해서는 뚜렷한 분석이 이루어지지 않았다.

이같은 군사조직은 대체로 당의 16위제를 모방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각 위가 구체적으로 어떠한 역할을 담당하였는지에 대해서는 잘 알 수 없다. 다만 맹분위, 웅위, 비위가 궁성의 숙위를 담당하였고, 남북의 좌우위가 각각 남위금병, 북위금병의 역할을 담당하였으리라고 추측할 수 있을 따름이다.

각 위에는 대장군 1명, 장군 1명씩을 지휘관으로 두었다. 대현석의 치세기에 일본에 사신으로 파견된 이여성이 맹분위 소장으로, 강왕 치세기에 파견된 대창태가 좌웅위 낭장인 것으로 보아 각 위(衛)에는 대장군 1인과 장군 1인을 두는 군사 지휘관을 갖추고 있었다. 이와 더불어 대현석시기에는 일본에 파견된 발해 사신 이흥성(李興晟)이 우맹분위 소장이었고, 강왕시기에 일본에 파견된 대창태(大昌泰)는 좌웅위 낭장(郎將)이었다. 이를 보면 각 위의 장군의 아래에는 다수의 지휘관이 있었던 것이 분명하다.

지방군사제도에 있어서는 촌장인 수령을 지휘관으로 하고 촌락민을 병원(兵員)으로 하는 군사조직이 촌락을 단위로 조직되어 있었을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한편, 당(唐)에서와 마찬가지로 발해에서도 부병제(府兵制)가 실시되었다는 견해가 있는데, 이것은 발해의 문무산관(文武散官) 및 직사관(職事官)의 명칭이 당나라 제도와 거의 유사한 점에 근거를 두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