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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과 우리역사

활은 인류의 역사에서 가장 오랜 사냥도구이며 무기이다. 선사시대부터 사용된 활은 인간이 먼 거리에서 사냥할 때 가장 효율적인 수단이었다. 이후 활은 전쟁 무기로 크게 발달하다가 총포가 등장하는 근대 이후에는 레저 스포츠의 수단으로 활용되고 있다.

활은 길이에 따라 장궁과 단궁으로, 재료에 따라 단순궁ㆍ강화궁ㆍ합성궁으로 나뉜다. 장궁은 긴 활로 2m이상이며 단궁은 짧아 2m이하로 우리나라, 중국, 몽골 등 동북아시아의 민족들이 주로 사용하였다. 단순궁은 나무ㆍ대나무 등으로 만든 간단한 활이며, 강화궁은 활의 몸체에 나무를 대고 등나무 줄기로 감아 탄력을 강하게 한 활이다. 합성궁은 강화궁과 비슷하나 활의 몸체에 동물의 뼈와 힘줄을 붙여서 만든다. 시위를 걸었을 때 궁(弓)자 모양이 되며 위력이 커 말을 타고 활을 쏘는 기마민족의 무기로 사용되었다. 현존하는 우리의 각궁은 합성궁의 특징을 가진 우수한 활이다.


우리 민족은 전통적으로 활을 중시하였으며 화약무기가 출현하기 이전까지 가장 중요한 전투무기였다. 중국은 옛부터 우리민족을 ‘동쪽에 활을 잘 쏘는 민족'이라 하여 동이족이라 불렀다. 우리 민족을 활과 연관시킬 만큼 활은 우리민족의 생활의 방편이자 생존의 수단이었다.

우리나라의 활은 구석기말기부터 나타나 신석기시대에는 어디에서나 확인된다. 활의 형태는 남아있지 않지만 단순궁으로 추정된다. 다만, 활 흑요석으로 만든 화살촉이 다량으로 남아 있어 활의 사용을 짐작할 수 있다. 청동기 시대의 활은 이전보다 전투용 무기로 활용되었다. 이 시기 화살촉은 신석기 시대 수렵용보다 크고 무거워 활의 강도도 높았을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원거리사격이 보다 쉬운 기술력도 축적되었다고 짐작한다.

우리나라 활이 크게 발전한 것은 삼국시대였다. 이때 비로소 각궁이 등장하며 특히 고구려가 사용한 맥궁(貊弓)이 바로 그것이다. 백제도 각궁을 사용한 것이 문헌으로 확인되며 신라도 금관총에서 발견된 유물 중에 활고자가 출토되어 각궁의 사용을 확인 할 수 있다. 고려시대에는 오늘날 우리가 이용하는 물소 뿔을 이용한 흑각궁(黑角弓)이 확인된다.


조선왕조는 유교사회로써 활쏘기는 덕과 예를 함양하는 수단으로 크게 장려되었다. 문신이라도 육예(六藝)교육에서 보듯 활쏘기는 말타기와 함께 중요한 과목의 하나였다. 특히 활쏘기의 사회교화적 기능을 높이 평가하여 국가적 차원에서 이를 장려하고 의례화하여 시행절차와 방법을 제도적으로 정비하였는데, 바로 대사례, 향사례가 그것이다. 대사례는 왕이 성균관에서 제향한 후 활을 쏘던 예로서 군신, 상하간의 명분을 밝히고 통치질서의 확립을 도모하고자 한 것이며, 지방은 향사례를 행하여 지방사족간에 친목도모와 함께 유교덕목인 ‘장유의 서'를 밝히는 수단으로 시행하였다. 한편 무인선발을 위한 과거시험인 무과가 정식으로 시행되며 활쏘기는 전문적인 무인을 키우는데 가장 필수적인 시험과목이 되었다. 이런 이유로 활쏘기는 조선시대 신분고하를 막론하고 가장 성행하던 무예이자 심신단련의 수단으로 발달하였다.



원천자료 : 국조오례의서례, 무과총요

참고자료 : 이중화, 조선의 궁술, 조선궁술연구회, 1929


국방군사연구소, 한국무기발달사, 1994

심승구, 한국 궁술의 역사와 그 특성, 1997.
김일환, 궁시장-무형문화재47호, 화산문화,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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