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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과 우리생활

세시기와 활

우리나라는 예로부터 해마다 그때그때 관례로서 행하여지는 전승적 행사가 있는데, 활쏘기가 주축을 이루는 행사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3월
동국세시기에 따르면 3월 한식날에는 서울과 지방의 무사들, 그리고 동네 사람들이 한데 모여서 편을 갈라 활쏘기 대회를 열었다. 활을 쏘는 것으로 승패를 가르고, 그 후 술을 마시며 다 같이 흥겹게 놀았다. 남원에서는 용담 혹은 율림에 모여 술을 마시며 활을 쏘았다.

5월
5월 단오날 전국 각지에서 씨름놀이뿐만 아니라 활쏘기와 말타기가 성행하였다. 이를 위해 초겨울부터 장수들은 활쏘기와 말타기를 연습하였다.

6월
6월 유두때 궁중에서는 황금 쟁반에 떡을 고정시켜놓고 작은 각궁으로 화살을 쏘아서 맞힌 사람이 그 떡을 먹었다. 이 때 사용하는 분단이라는 떡은 매끄러워서 쏘기가 몹시 어려웠다. 이 놀이는 중국에서는 단오날 하던 것인데 우리나라에서는 유두날로 옮겨져 행해졌다. 이 내용은 동국세시기와 열양세시기에서 전하고 있다.

8월
북사와 수서, 구당서에 따르면 우리나라 사람들은 8월 15일 한가위에 궁중에 연회를 열어 풍악을 울리는 가운데 관인들이 활을 쏘았다. 활을 잘 쏜 사람에게는 상으로 말과 베가 주어졌다.

9월
9월에는 도내의 사람들이 모여서 서대에서 활쏘기를 연습하였다. 9월 무인일에는 시종과 관리들이 활을 쏘게 해서 과녁을 맞힌 사람에게 상을 주고 연회도 베풀어 주었다. 이 내용은 삼국사기 백제본기에서 전하고 있다.

12월
동국세시기에 따르면 12월에는 섣달 그믐날 전날부터 대궐 안에서 연종포라는 대포를 쏘았다. 불이 붙은 화살을 쏘고 징과 북을 울리는 것은 일년의 마지막 날 밤에 궁중에서 잡귀를 쫓는다 하여 베풀던 나례의 유풍이다. 이것은 중국에서 제석과 설날에 폭죽을 터뜨려 귀신을 놀라게 하는 중국의 풍습을 모방한 것이다.


원천자료
동국세시기 3월 한식 월내
京外武士及里民 張侯分? 爲射會 以賭勝負飮酒爲樂 秋節亦然

동국세시기 3월 한식 월내
南原俗 州人當春 會于龍潭若栗林 飮酒射侯 以爲禮(見輿地勝覽)

동국세시기 5월 단오
端午日 此?甚盛 京外多爲之 按禮記月令 孟冬之月 乃命將帥 講武習射御角力 今之角戱 卽此而乃兵勢也

동국세시기 6월 유두
天寶遺事 宮中 每端午 造粉團角黍 釘金盤中 以小小角弓 架箭射中粉團者 得食

열양세시기 6월 15일
張?(文潛)詩云 水團?浸砂糖? 天寶遺事云 宮中每到端陽造粉團角黍貯於金盤中 以小角弓 架箭射粉團 中者 得食 盖粉團滑? 難射也(此則乾團不入水者) 據此 則水團 是中國端午日所說而吾東移說於流頭也

북사 권 94 열전 82 신라
八月十五日說樂 令官人射 賞以馬布

수서 권 81 열전 46 신라
至八月十五日說樂 令官人射 賞以馬布

구당서 권 199 열전 149 신라
又重八月十五日 說樂飮宴 賚?臣 射其庭

삼국사기 권 25 백제본기 3 아신왕
九月 集都人 習射於西臺

고려사 권 13 세가 13 예종 6년 己巳
九月 己巳 設重陽宴 王賦詩令從臣和進 戊寅 命侍從官射中的者賜物有差伋賜宴

동국세시기 12월 제석
闕內自除夕前 發大砲 號年終砲 放火箭 嗚?鼓 卽大?驅疫之遺制 又倣除夕元朝爆竹驚鬼之制也

무속과 활

활과 화살은 각 지방에서 신령을 상징하는 형체로 쓰이거나 무의식에 쓰이는 무구로도 사용되었다. 이것들은 무의식을 거행하는데 있어서 보조품 역할을 수행한다. 특히 대전ㆍ충청 지역에서 사용되는 설경(說經)은 무의식의 보조품 역할을 훨씬 넘어 굿에 있어서 핵심적 요소로 사용되었다. 설경은 절대적으로 영험한 힘을 가진 존재들을 위해 쓰이는 무구이기 때문에 그 제작과정에서 정성을 들여 엄숙하게 제작되었다. 이때 사용된 활과 화살, 살풀이 화상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살풀이에서 살을 풀어내기 위해서 활을 쏘았다. 활대를 대나무로 만들고 두꺼운 무명실을 여러 겹으로 꼬아서 양쪽 귀퉁이에 묶어 반달모양으로 휘어지게 하여 서로 연결하였다.

화살
화살을 ‘살대', ‘불화살', ‘수수화살', ‘수수살대' 등으로 불렀다. 살대라 하는 것은 살을 풀 때 사용되는 것이기 때문이고, 불화살이라 하는 것은 화살촉에다 불을 붙여 사용하는 것에서 기인했다. 또한 수수화살이라고 하는 것은 화살촉에다 수수떡을 꽂아 사용했기 때문이다. 총 21개로 화살대를 만들었다. 화살대에는 종이를 잘라서 붙여 둔다. 수수떡은 은행 열매 정도의 크기로 동그랗게 만들어 화살촉에다 꽂아서 부정이나 살을 풀 때 쓰이는 고춧가루 팥고물 왕소금을 섞어서 떡고물 묻히듯 묻혔다. 화살의 길이는 35㎝ 정도 된다. 화살로 살풀이 화상을 쏜다.

살풀이 화상
살풀이 화상은 하얀 한지에다가 사람의 형상을 그리고 상단에 검정 글씨로 天殺, 地殺, 年殺, 月殺, 日殺, 時殺, 劫殺, 災殺이라고 한자로 썼다. 좌측에는 速去千里 一時消滅이라고 내려썼다. 그리고 화상 양쪽을 가느다란 막대기에 붙여서 시루에 꽂았다. 그렇게 하면 가로 약 46㎝, 세로 42㎝ 정도가 된다.

지방에서 활을 사용하여 거행한 무의식은 다음과 같이 진행된다. 시루에 살풀이 화상을 꽂고 법사가 춤고장을 치면 보살이 활을 하나씩 쏘기 시작한다. 화살이 살풀이 화상에 맞아서 떨어지도록 21개의 화살을 모두 쏘았다. 살풀이 화상이 화살을 쏘는 중간에 넘어져도 계속해서 활을 쏜다. 이렇게 21개의 활을 모두 쏘아 화상이 완전히 쓰러지면서 살이 나갔다고 믿었다.
활을 이용한 주술은 궁중의 저주 사건에도 많이 이용되었다. 화상을 그려 걸고 궁녀로 하여금 매일 세 번씩 쏘게 하여서 종이가 모두 해어지면 비단으로 바꾸었다. 그리고 그것을 저주하려고하는 인물의 시체라 가장하여 못가에 묻어 버렸다.


원천자료
한국 민속대관 -제 3권 민간신앙,종교-/ 한국학DB (누리미디어)
참고자료
양종승, 「대전ㆍ충청굿의 說經 연구」, 『민속학연구』6, 국립민속박 물관, 1999, p.178.

지역과 활

우리 민족은 예부터 활을 잘 쏘고 활쏘기를 덕으로 삼았다고 하는데, 그러한 자료는 지역과 관련해서도 남아있다. 『수서(隋書)』와『신증동국여지승람』을 살펴보면 평양부, 무장현, 함흥부, 의주목, 경기도의 광주목, 구성도호부 같은 지역에서는 말 타고 활쏘기 연습을 하는 것에 힘써왔고 활쏘기를 숭상했다고 전해진다.

평양부의 경우 특히 활쏘기를 숭상하였는데, 『수서(隋書)』를 인용하면 다음과 같다. “평양부에서는 거리 옆에 서당을 지어 미혼의 자제들이 한데 모여 경서를 외우고 활쏘기를 연습한다.” 또한 권근(權近)의 기문서에는 “평양은 기자의 옛날 봉지다. 8조의 가르침으로 백성들이 예의를 알았으나 주몽씨 이래로는 말타기와 활쏘기를 익혀 그 풍속이 드디어 변하여 비록 수 · 당의 왕성한 병력으로도 굴복시킬 수 없었으니 그 날래고 굳셈을 상상할 수 있다.” 라고 하여 예부터 평양부에서 활쏘기 문화가 발달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또한 무장현에서는 특히 활을 이용한 사냥과 고기잡이가 성행하였다고 전해진다.


참조자료
『수서(隋書)』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권 36, 茂長 風俗條.
권 48, 咸興 風俗條.
권 53, 義州 風俗條.
권근(權近)의 기문서

통과의례와 활

통과의례는 추이의례(推移儀禮)라고도 한다. 한 개인이 새로운 지위·신분·상태를 통과할 때 행하는 여러 가지 의식이나 의례를 총칭한다. 사람의 일생은 끊임없이 여러 단계나 상태를 통과하는데, 특히 출생·성인(成人)·결혼·죽음 등이 보편적으로 인생에 있어서 중요한 통과의례로 인식한다.

이러한 통과의례에 있어서 ‘활’은 매우 상징적인 의미로 사용되는데, 특히 몽골 등 북방유목민들에게서 잘 나타난다. 몽골의 경우 아이를 낳아서 아들이면 활이 그려진 그림을 주거나 작은 활을 선물하고, 훌륭한 사람이 되라고 등에 화살촉을 붙여 주었다. 결혼 할 때는 장인이 사위에게 ‘화살’을 예물로 준다. 이는 ‘번영’을 틀 풍요로운 가족이 되기를 바라는 의미에서이다.

한국의 경우 아기의 출생이후 첫 생일날 행해지는 ‘돌잡히기’에 ‘활’이 등장한다. ‘돌잡히기’는 아기의 돌상 위에 돈과 활, 화살과 붓, 벼루 먹을 놓고 아이가 첫번째 잡는 것으로 아기의 장래를 점치며 의례이다. 이때 돈은 부귀를, 붓은 학문을, 활은 용맹을 상징한다.

충청남도 연기군, 논산군, 부여군, 아산군 그리고 황해도 옹진군 지역에서는 돌상을 차릴 때 돌상에 활, 화살, 쌀, 돈 , 책, 붓, 실, 떡 등을 놓고 아이가 무엇을 집느냐에 따라서 아이의 장래를 예측하는 산속(産俗)이 지금도 일부 남아있다.


3월
동국세시기에 따르면 3월 한식날에는 서울과 지방의 무사들, 그리고 동네 사람들이 한데 모여서 편을 갈라 활쏘기 대회를 열었다. 활을 쏘는 것으로 승패를 가르고, 그 후 술을 마시며 다 같이 흥겹게 놀았다. 남원에서는 용담 혹은 율림에 모여 술을 마시며 활을 쏘았다.


원천자료
한국민속종합조사보고서(韓國民俗綜合調査報告書) 제25 책 산속편(産俗篇) 하권
참고자료
「몽골의 무속과 민속」, 고려대민족문화연구원, 도서출판 월인, 2001

1. 궁장이_김준근, 프랑스 기메박물관 1. 궁장이_김준근, 프랑스 기메박물관
2. 김후신의 수렵도 2. 김후신의 수렵도
3. 무신도2_군산대학교 박물관 3. 무신도2_군산대학교 박물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