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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터 문화와 예절

사정의 조직

조선시대의 궁술은 무예 이전에 덕을 함양하는 수단이었다. 이에 따라 활을 쏠 때에 독특한 예절문화가 발달하였다. 특히 활쏘기는 임진왜란 이후 민간 사정의 발달로 인해 사정을 중심으로 활쏘기 예절이 발달하였다. 이를 사풍(射風)이라고 하였다.

사풍은 서울 사정의 경우, 각 정에는 사두(射頭), 선생(先生), 행수(行首)가 각각 한 사람씩 있었다. 사두는 문무당상관 중에 지위가 높고 물망이 있으며 활을 쏜 해가 오래되며 덕망과 인품을 갖춘 사람으로 세 사람의 명단을 써 사원의 점수를 많이 얻은 사람 중에서 선정했다. 사두는 사정을 대표하며 사정의 모든 일을 지휘 감독한다. 선생은 무과에 급제한 당하관 중에서 직위가 높고 활을 쏜 해가 오래되며 물망이 높은 사람으로 뽑았다. 선생은 일반 사원이 활을 배울 때 교범이 되며 사풍에 관한 지도와 궁시에 관한 지도를 한다. 행수는 한량 중에 활을 쏜 해가 오래되며 나이가 많고 물망이 있는 사람 중에서 뽑았다. 행수는 한량을 통괄하고 사두의 명을 받아 사정의 모든 일을 처리한다.

사계(射계)
사계는 활을 쏘려고 사정에 든 사원들로 조직한 단체를 말한다. 사계를 조직한 사정에는 계장 있는데, 계장은 장신(군영의 대장), 훈척(국가에 공훈이 있는 고위 대신), 세신 (고위직을 대대로 지낸 집안의 관료) 중에서 선정하였다.

사계가 없는 사정의 경우 자기가 소속된 사정의 의무는 그대로 이행하면서 다른 사정의 사계원도 되었다. 사계가 조직된 사정의 사원은 다른 사정 사원에 입사치 못하며 타 사계에도 들어가지 못했다.


별선
사정에서 임원을 뽑을 때 적당한 사람이 없어 다른 사정의 인물을 요청하는 경우를 별선이라 한다. 요청을 받으면 수락하는 것이 관례였고, 임기를 마치면 다시 자기 사정으로 돌아갔다.


원천자료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동방미디어


참고자료
「한국의 궁도」/ 대한궁도협회/ 1986 / p.89, 93
「한국의 활쏘기」/ 정진명 / 1997 / 학민사 /pp.210-220

입사절차

신입사
한량이 사정에 입사하고자 하는 의사를 행수에게 전하면, 행수가 사두에게 말하여 승낙을 얻은 후에 입사하게 된다. 신입사는 사두가 입사를 허락해 준 것을 사례하는 것이다. 신입사원은 술과 안주를 준비해서 사정의 여러 사원과 인사를 나누고 사두와 선생 앞에 절을 한다. 사두는 신입사원에게 마음을 단정히 할 것을 가르치고 활을 배울 때 선생의 말에 복종할 것, 행수의 매사 지도에 따를 것 등을 설명해준 후에 좋은 한량이 되기 바란다는 내용의 축사를 하였다.

관중례
신입사원이 처음으로 과녁에 화살을 적중시키면 이것을 일중(壹中)이라 해서 선생과 모든 사원의 축하를 받았다. 신입사원은 선생의 가르침으로 일중한 감사의 뜻을 표하기 위하여 일중례(壹中禮)를 열었다. 이후에 이중례, 사중례는 생략하고 삼중례, 오중례는 일중례와 같이 행하였다.

그 중 오중례는 첫몰기라고 하여 다른 예절보다 더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 첫몰기는 사실상 자기 궁체를 갖춰서 활 쏘는 요령을 나름대로 터득해야 나오는 것이기 때문에 특별히 기념하는 것이다. 첫 몰기를 하면 접장이라는 칭호를 받게 된다.

초입사
처음으로 사정에 들어갈 때는 반드시 자신의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입사했던 사정에 들어갔다. 부득이한 이유로 다른 사정에 입사하는 것을 수치로 알았다. 한번 입사한 후에 다른 사정으로 이적하는 것은 여자가 남편을 배신하고 개가하는 것과 같이 여겼다.

편사와 이접
사원의 의무는 본정에 있는데, 본정에 사계가 없어서 타정 사계에 들어간 사원의 경우에는 본정과 사계 모두에 응사할 의무가 있다. 만일 본정과 입계한 사정이 편사에 참여할 때에는 두 정 모두에 의무가 있으므로 어느 사정으로도 응사하지 못했다. 본정의 왕래가 불편하거나 특별한 이유가 생기기 전에는 이접(오늘날의 이적)하는 일이 없었다.


원천자료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동방미디어

취격절차

견책(譴責)
사정에서 누군가 잘못을 저지르면 그보다 높은 위치에 있는 사람이 잘못을 꾸짖고 나무랐다. 문무당상관이 법을 어기면 사두가 견책하고 사두 밑의 사람은 견책하지 못한다. 출신(出身: 문무과, 잡과에 급제하고 아직 벼슬에 나서지 못한 사람)이 법을 어기면 선생이 견책하며, 한량이 법을 어기면 행수가 견책한다.


취격(聚格)
한량이 법을 크게 어기면, 우선 행수가 사두와 선생에게 자기의 책임을 수행치 못함을 사죄한 후, 법을 어긴 한량에게 취격 명령을 한다. 취격이란 법을 어긴 한량을 행수의 지휘 아래 격식을 따라 처벌하던 것을 말하는데, 그 절차는 아래와 같다.



행수가 사정 위에 서서 일반 한량에게,
“한량들! 대 앞으로 들어오소.”
하고 말한다. 이에 한량은 소리 내어 대답하고 한 줄로 사정 아래 벌려 선다. 행수가
“한량.”
하고 큰 소리로 부르면 일반 한량들은 일제히
“예.”
하고 대답한다. 행수가
“한량 아무개를 취격차로 차리고 알리어라.”
하고 명령하면 한량들은 일제히 대답하고 법을 어긴 한량을 검속하여 대령시킨 후 일제히 소리를 높여
“한량 아무개 취격차로 대령하였소.”한다.
검속하는 절차는 다음과 같다. 법을 어긴 한량의 갓과 망건을 벗긴 뒤 시위로 두 팔을 뒤로 돌려 묶고, 전통에다 살을 가득하게 넣어 들은 후 행수의 명령이 내리기만을 기다린다.
행수가
“나입(拿入 :죄인을 법정으로 잡아들임)해라.”
하고 명령하면, 법을 어긴 한량의 상투를 끌어다가 사정 아래 꿇어 앉혀 놓고 일제히,
“잡아 들였소.”
한다. 행수가
“한량아ㅡ”
하고 길게 부르고 한량들은 다 같이 높은 소리로
“예ㅡ”라고 대답한다. 행수가 명령하기를
“좌우 훤화(喧譁 :시끄럽게 떠듦) 금하라.”
하면 한량들은 전과 같이
“예ㅡ”
하고 대답한다. 행수가
“분부 듣거라.”
하고 한량도 이를 반복하여 외친다. 행수는 법을 어긴 한량에게 죄를 들추어 책망하는 명을 내린 후 일반 한량에게
“의법(依法)해라.”
하고 명령한다. 일반 한량은 법을 어긴 한량을 엎어놓고,
“의법하였소.”
라고 말한다. 행수가
“매우 쳐라.”
하면 일반 한량은 좌우로 벌려 서고 그 중 한 사람이 화살을 가득 채운 전통을 가져와서 거행한다.
“매우 때리오.”
라 하며 숫자를 헤아리면서 화살 한 개로 열 대까지 때렸다.
한량들은 그 뒤 행수의 명령을 기다린다. 행수는 죄의 경중을 참작하여 법을 어긴 한량에게 앞으로 조심할 것을 엄숙히 통고한 후에,
“내보내라.”
한다. 일반 한량들은,
“내보내오.”
하고 법을 어긴 한량에게 일제히 달려가서 죄를 지은 한량을 끌어낸 후 속박한 것을 풀어주고 의관을 정제시킨 후 각기 위로한다. 만일 행수가 용서치 않고,
“또 매우 쳐라.”
하면 전과 같이 다시 열대를 더 때린 후에 행수의 명령을 기다린다. 행수가 취격을 거행하려고 할 때 사두가 용서할 뜻을 보이면 행수는 사두의 말을 받들어서 법을 어긴 한량을 불러 세우고,
“소당(所當)은 엄하게 다스릴 것이로되 사두께서 분부가 계셔 용서하니 차후에는 각별히 조심하라.”
하고 엄중히 효유했다.
행수에게 취격 명령을 당한 한량은 사두의 사택으로 가서 법을 어긴 것을 용서해 달라고 빌었다. 그러면 사두는 한량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용서하는 일이 많았다고 한다.


원천자료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동방미디어

참고자료
「한국의 궁도」/ 대한궁도협회/ 1986 / pp.89-90
「한국의 활쏘기」/ 정진명 / 1997 / 학민사 / pp.212-215

활쏘기 예절

정간례
정간례는 활터에 올라와서 사대에 서기 전에 ‘정간(正間)' 앞에 가서 목례를 드리는 것을 말한다. 활터를 여태까지 이끌어온 선배 한량들에 대한 고마움을 기억하고 활을 성실하게 쏘겠다고 다짐하는 것이다.

사정에 와서 초순(初巡)을 쏠 때
사원은 사정에 올 때마다 첫 인사로 “왔습니다.”라고 하고, 먼저 와 있는 사원들은 “오시오.”라고 응답했다. 이것은 계급과 노소에 따라 “왔소.” “오십시오.”등으로 답했다. 활쏘기를 연습하는 사원이 초순을 쏠 때 “활 배웁니다.”하면 사원들은 대답하기를 “많이 맞히시오.”라 하는데 이것 역시 계급과 노소에 따라 “쏴.” 또는 “맞히십시오.”라 하였다. 비단 초순 뿐 아니라 쏘는 중간에 오는 사원이 “활 배웁니다.”하면 본정 사원이나 타정사원을 막론하고 “많이 맞히시오.”라고 하는 것이 사정에서의 예의이다.

계급
활쏘기를 할 때에 질서 유지를 위해서 계급을 정했다. 계급은 첫째로 지위가 높은 사람, 둘째 활을 쏜 해가 오래되고 물망이 있는 사람, 셋째 나이가 많은 사람 순으로 정한다. 보통 활쏘기를 연습할 때에 좌 · 우궁(左 · 右弓)을 막론하고 계급에 따라 차례로 한 줄로 벌려서 계급이 높은 사람이 팔찌동 위에 섰다. (팔찌동 위에 서는 것은 우궁일 경우 우측 편에, 좌궁일 경우 좌측 편에 서는 것을 말한다.) 좌 · 우궁 중 계급이 낮은 사람이 반드시 먼저 쏜다. 계급이 같은 경우에는 팔찌동 위에 서기를 사양하며 다투어 먼저 쏘는 것으로 겸양을 표시했다.

팔찌동
상으로 가자(정삼품 통정대부(通政大夫) 이상의 품계를 올림)한 사람, 또는 왕에게 첩지를 받아 가자한 사람은 실질적인 계급이 없으므로 무과에 합격한 사람의 팔찌동 위에 서지 못한다. 음직이라도 계급이 있게 가자한 사람이면 당하출신 팔찌동 위에서 쏘고, 습사할 때에 한 순(巡)이외 한 · 두 대라도 더 쏘지 못하며 두 순을 연달아 쏘지 못하게 되어 있다.

연전(揀箭)
연전은 활쏘기를 익힐 때에 과녁터에 떨어진 화살을 주워 오는 일을 말한다. 활쏘기를 연습할 때에는 한량들이 돌아가며 연전한다. 만일 행수가 친히 연전하고자 할 때에는 한량 한 사람이 뒤를 쫓아 과녁터까지 가서 살을 같이 주워 행수대신 들고 온다. 당상관이 연전하러 가는 경우에는 한량 한사람이 연전 중간까지 가서 받아오며, 출신(문무과, 잡과에 급제하고 아직 벼슬에 나서지 못한 사람)이 가는 경우에는 사대 아래로 내려가서 받아 올렸다. 과녁터에 오다가 사정에서 활쏘기를 연습하는 것을 본 사원은 다 쏘는 것을 기다려 화살을 주워 사정으로 온다. 이 때 사정에서는 만류하는데 그래도 기어코 연전을 해 가지고 오면 계급을 보아 사원한 사람이 대 아래로 마주 내려가서 받는다.

영접(迎接)
사두가 사정에 올라올 때에는 사원 모두가 의관을 정제하고 대 아래로 내려가서 영접한다. 선생이 사정에 올 경우에는 당하관 이하 일동이 밑으로 내려가 영접하고, 행수가 사정에 오는 때에는 한량 일동이 마루에 내려 영접한다.
활쏘기를 연습할 때 사두가 오는 경우에는 모두 쏘던 것을 중지하고 영접한 후 사두가 자리를 정하면 나머지 화살을 쏜다. 선생이나 행수가 오면 당상은 물론 한량들도 모두 쏘던 것을 중지하고 영접한 후에야 다시 쏜다.

대우(待遇)
사두가 사정에 오르면 자리를 따로 정하고 사원들은 동석하지 못한다. 선생과 행수가 사정에 올라도 각각 따로 자리를 정하고 모든 사원은 한자리에 앉지 못한다. 다른 사정의 사두와 선생이 사정에 오른 때에도 이와 같이 하였다.

살 먹이는 시기
한 띠로 사대에 서서 활을 쏠 때 화살을 언제 뽑아서 시위에 먹이느냐 하는 것은 대개 두 가지이다. 평상시 습사할 때와 예절을 갖추어 쏠 때가 그것이다. 평상시 습사할 때는 일정한 법칙이 없고 옆 사람에게 방해가 되지 않는 선에서 아무 때나 뽑아들고 기다리면 된다. 그런데 편사처럼 예절을 지켜야 하는 때는 앞 사람의 살이 과녁터에 떨어져서 관중 여부가 확인된 뒤에 화살을 뽑는다.

동진동퇴
동진동퇴란 사대에서는 함께 나아가고 함께 물러선다는 뜻이다. 활쏘기는 혼자서 하는 것이긴 하지만 나아가고 물러갈 때는 행동을 함께 한다.
활은 다른 무기와 달라서 살을 시위에 먹이고 당기는 데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무리를 나누어서 한 띠가 쏘고 나면 다음 띠가 나가고, 다시 그 다음 띠가 나가는 방식으로 전쟁을 치루었을 것이기 때문에 동진동퇴가 자연스럽게 예절로 굳은 것이다.

살 놓는 방향
화살을 살놓이에 놓을 때는 촉이 과녁 쪽으로 향하게 놓는다.



원천자료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동방미디어

참고자료
「한국의 궁도」/ 대한궁도협회/ 1986 / pp.89, 91-93
「한국의 활쏘기」/ 정진명 / 1997 / 학민사 /pp.215-224

납궁절차

납궁이란 활을 쏘다가 나이가 들어서 활을 쏘기 어려운 상황이 오면 자신이 쓰던 궁시를 활터에 반납하고 활터에 일체의 발길을 끊는 것이다. 그러나 비록 자신이 나이가 들어서 활을 못 쏘게 되어도 활을 아예 안 쏘겠다는 결심을 굳히기가 어렵기 때문에 차일피일 미루다가 결국은 납궁례를 못하고 이승을 하직하는 경우가 많았다.
납궁례는 강신-세잔-초헌-아헌-종헌-유시(첨잔)-소지-납궁-철상의 절차로 진행된다.

제수 진설
강신 이전에 먼저 제사 음식상을 차린다. 납궁례는 자신이 집궁한 활터에 활을 반납하는 것이지만, 이 모든 것을 굽어보고 보살펴준 것은 하늘과 땅, 그리고 선배 활량들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자리에 모시는 신 또한 천신, 지신, 가신(성주), 관신 이렇게 넷이다. 따라서 제사상은 하늘과 땅과 사람이 함께 하는 삼재를 상징하는 것으로 채운다. 그래서 천과, 지과, 인과를 갖추어야 하므로, 천과는 하늘에서 딴 과일로 대추, 밤, 곶감, 배, 사과가 되고, 지과는 땅에서 거둬 올린 과일로 수박, 귤, 바나나 같은 것이 되고, 인과는 사람이 빚어만든 것이니, 유과가 거기에 해당한다. 그래서 젯상 맨 앞에 조율시리, 사과, 귤, 바나나, 수박, 유과 순으로 놓고, 그 뒷줄에 포, 팥시루떡, 돼지머리, 전 같은 것을 차린다. 원래 고사를 지낼 때는 흰무리를 쓰고 팥을 쓰지 않는다. 귀신은 붉은 색을 싫어하기 때문에 팥을 쓰면 귀신이 내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경건한 제사를 지낼 때는 일부러 팥떡을 놓는데 그것은 잡신이 꼬이지 못하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그리고 그 뒤에 촛불을 켜고 네 신께 올리는 잔 넷을 놓는다. 그리고 그 뒤에 궁시를 놓는다.

강신
납궁을 하는 사원이 향을 피워서 강신 한 신들께 절을 두 차례 올린다. 몸이 수그러질 때 '배에~!'하며 홀부르기가 뒤따르고, 바닥에서 몸이 들릴 때 '음~'하는 소리가 뒤따른다.

세잔
집사가 내려준 술잔에 술을 반잔만 따라서 헹군 다음에 그 술을 다음 잔으로 넘겨 씻고 씻어서 네 잔을 씻는다. 그리고 퇴주그릇에 부은 후 절을 두 번 한다. 이때 고사에 쓰는 술은 맑은 술이 아니라 막걸리를 쓴다.

초헌
초헌은 제사 때에, 첫 번으로 술을 신위에 올리는 것을 말한다. 납궁례를 올리는 사원이 술을 올리고 절을 네 번 한다. 우선 한 번 절을 하고 엎드려 읍을 한 상태에서 행수가 독축을 한다. 독축이 끝나고 홀부르는 소리 따라 나머지 절을 세 번 한다. 절을 네 번 하는 것은 모셔야 할 신이 네 위이기 때문이다.

아헌
아헌은 제사 지낼 때 두 번째로 술잔을 올림이다. 납궁하는 사원이 옆으로 물러서고 온깍지궁사회 교장 조영석이 술을 올리고 절을 두 번 한다.

종헌
종헌은 제사 때 셋째 번으로 잔을 올리는 것이다. 오연이 여무사가 술을 올리고 절을 두 번 한다.

유시(첨잔)
최위수 부사두가 첨잔을 하고 역시 절을 두 번 한다.

소지
신령 앞에서 부정을 없애고 소원을 비는 뜻으로 얇은 종이를 불살라서 공중으로 올린다.

납궁
납궁하는 사원이 젯상에 놓여있던 궁시 일체를 들어서 최위수 부사두에게 건넨다. 납궁 전에 그 주인공이 생애 마지막으로 활을 딱 한 순을 내기도 한다.

철상
철상하기 전에 몰기를 바라는 활량들이 다 같이 절을 올린다.

이러한 납궁례라는 풍속은 활터 이외의 다른 곳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풍속이다. 이와 같은 풍속이 있으려면 적어도 한 세대 이상 되는 전통이 선 분야이어야 하는데, 활터는 워낙 오랜 역사가 살아 숨 쉬는 곳이기 때문에 이런 풍속이 있는 것이다.



참고자료
온깍지궁사회(http://www.onkagzy.com )
온깍지학술-온깍지 답사-향촌 할매의 납궁례(2001년 8월 26일)

1. 서울의 관소사정_황확정백년사 1. 서울의 관소사정_황확정백년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