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홈
  • 문화원형 라이브러리
인쇄 문화원형 스크랩

의례의 활쏘기

1. 북새선은도길주과시 1. 북새선은도길주과시
가례의식

<절차의식>
1) 2일 전 병조는 각 관원에게 그 직책을 맡긴다. 1일 전에 전설사는 장전을 설치하고 악차를 장전 뒤에, 액정서는 어좌를 장전 안 남쪽으로 설치한다.

2) 훈련원은 기마무예와 도보무예의 장비를 설치한다.
- 원후는 거리가 240보로 청색 바탕에 높이와 나비가 1장8척이고, 정곡은 6척으로 흰색 가죽으로 만들어 돼지 머리를 그린다. 멀리 쏜 화살과 복판에 맞힌 것, 후에 미친 것을 합격으로 한다.
- 중후는 거리가 180보로 청색 바탕에 높이와 나비가 1장4척이고, 정곡은 4척6촌이며 돼지머리를 그리는데 복판에 맞은 것을 합격으로 한다.
- 근후는 거리가 80보로 흰색 바탕에 높이와 나비가 4척 6촌이고. 모두 돼지 머리를 그리는데 <화살이> 복판에 맞힌 것을 합격으로 한다.
- 적은 좌우 각각 5개씩인데, 홍색과 백색이 서로 사이로 배치한다. 직경이 1척2촌이며, 좌우로 서로 떨어지기가 5보이다. 매 적마다 각각 35보이다. 왼쪽잡이 경우 왼쪽 제 1홍색 적을 쏘고, 이어 오른쪽 제 2백색 적, 왼쪽 제 3홍색 적, 오른쪽 제4홍색 적, 왼쪽 제 5홍색 적을 쏜다. 활을 가득 당기지 못한 것과 말을 빨리 달리지 못한 것과 채찍을 버린 것은 맞혔더라도 불합격이다.
- 기창의 추인은 셋을 나누어 좌우 5보로 세우고, 추인의 거리는 25보이다. 말을 움직인 뒤에 좌우로 창을 휘두르는데, 왼쪽 제 1추인을 맞히고, 오른쪽 제 2추인을 맞히고, 왼쪽 제 3추인을 맞히고, 좌우로 배창하는 자세를 취한다. 자세를 잃거나 말을 빨리 달리지 못한 것, 채찍을 버린 것은 맞혔더라도 불합격이다.
- 격구의 문은 거리가 3보이고, 출발지점에서 공문까지 240보이고, 말을 세운 곳에서 구를 둔 곳에 나가 배지로써 공을 움직이고, 도돌방울로 돌린다. 공이 오목한 곳에 들어가면 배지를 쓴다. 격구에는 반드시 공을 따라가 멈추기 전에 친다. 3회를 마치고 말을 달려 공을 쳐서 움직인다. 처음에는 함부로 치지 않고, 막대기를 가로로 쥐고 말귀와 나란히 되게 한 후에 쳐서 공문으로 보낸다. 말을 돌려 되돌아오는데, 그 말 달리는 것과 장(仗)을 쥐는 자세가 처음과 같다.


3) 시험 당일에 훈련원은 거인에게 모이도록 한다.
- 초엄에 병조는 모든 군사를 법가노부를 홍예문 밖에 세운다. 의정부・육조의 당상관 및 사헌부・사간원은 시복 차림으로 조방에 모인다.
- 2엄이 울리면 모든 군사는 각각 그 부대를 독려하여 들어와 전정에 늘어서고, 사복시정은 연을 근정전문 밖에, 여를 사정전 합문 밖에 놓는다. 모든 호위 관원 및 사금은 각 기구와 복식을 갖추고 사정전 합문 밖에 기다린다. 좌통례가 합문 밖에 나아가 중엄을 청한다.
- 3엄이 울리고 종소리가 그치면 내외의 문을 열어젖힌다. 좌통례가 꿇어 앉아 외판을 계주하고, 전하는 익선관에 곤룡포를 갖추고 여를 타고 나서는데 산선과 시위는 평상 의식과 같이 한다. 근정전문 밖에 이르러 전하는 여에서 내려 연을 탄다. 전하가 시험장에이르러 연에서 내려 어좌에 오른다.

4) 시종 관원은 모두 막차로 나아가고, 관원 및 거인은 들어와 단 아래로 나아가되 자리를 달리하고 겹줄로 북쪽을 향하여 4번 절한다.

5) 2품 이상은 서쪽 계단으로 단에 올라 엎드리고, 3품 이하는 단 아래에서 각각 그 맡은 바 일에 충실한다.

6) 거인은 화살 세 개를 쏘되, 두 사람이 짝이 되어 기다린다.

7) 훈련원은 북을 쳐 세 번 울린다. 거인이 들어와 장사위로 나아간다. 엎드렸다가 차례로 일어나서 사위로 가 북쪽을 향하여 부복하고 일어나 남쪽을 향한다.
- 먼저 원후를 쏘고 장사위로 돌아간다.
- 다음은 중후를 쏜다. - 다음은 근후를 쏘되, 모두 평상 의례와 같다.
- 다음은 기사를 하고, 다음은 기창을, 다음은 격구를 하고 이를 마치면 모두 물러난다.

8) 병조는 등급을 가리어 계주하고, 거가는 궁으로 돌아가는데 올 때의 의식과 같다.


용어해석
1) 장전(帳殿) : 임시로 설치한 왕의 않는 자리. 구름차일(遮日)을 치고 휘장(揮帳)으로 사방을 둘러막고 바닥을 높이고 별문석(別紋席)·채화(菜花)석 따위 자리를 펴고, 가운데에 좌석을 꾸임

2) 악차(幄次) : 왕의 거둥 때에 막(幕)을 둘러 친 임시 쉬는 곳

3) 기보격구(騎步擊毬) : 기격구(騎擊毬)와 보격구(步擊毬)의 합하여 칭함. 기격구는 말을 타고 격구(擊毬)하는 것이고, 보격구는 말 타지 아니하고 하는 격구

4) 장사위(將射位) : 활 쏘는 사람이 나가서 서는 자리. 사단(射壇)에서 쏠 때에는 서쪽 뜰 옆에 동쪽을 향하여 설치함

5) 법가(法家) : 왕의 거둥 때에 타는 수례의 한 가지. 노부에 대가(大駕)·법가·소가(小駕)의 세 가지가 있어 장위(仗衛)의 성대(盛大)·간략(簡略)으로 부분함

6) 시복(時服) : 관원의 예복(禮服)으 l한가지. 단령(團領)에 흉배(胸背)가 없고 빛이 붉음

7) 원후(遠侯) : 무과(武科)의 보사(步射)에 쓰이는 과녁[侯]의 하나. 사단(射壇)에서 2백 40보(步)거리에, 푸른 베로써 높이와 넓이가 1장(丈) 8척(尺)이 되게 하고, 그 가운데에 시후(豕侯)를 붙여 정곡(正鵠)을 만들어 세우는 것

8) 중후(中侯) : 무과(武科)의 보사(步射)에 쓰는 과녁의 하나. 사단에서 1백 80보(步)의 거리에 세우는 것

9) 근후(近侯) : 무과(武科)의 보사(步射)에 쓰는 과녁의 하나. 사단에서 80보(步)의 거리에 세우는 것


원문

원천자료
국조오례의, 세종실록오례의, 경국대전 2차참고자료 : 심승구, 조선전기 무과전시의 연구,1998


武科殿試儀 (世宗實錄 卷131, 五禮)

前二日, 兵曹宣攝內外, 各供其職。 前一日, 忠扈衛設帳殿於射壇南向; 幄次於帳殿之後, 掖庭署設御座於帳殿內南向; 訓鍊觀張步射之侯; 【遠侯距壇二百四十步, 以靑色布爲質, 崇廣丈八尺三分。 其廣而鵠居一, 鵠方六尺, 白漆皮方制之, 棲於侯中, ?以豕首。 侯左右相距五十步, 竪旗爲標。 侯後五十步, 左右相距七十步, 竪旗爲標。 取遠至者中者。 及者。 中侯距壇一百八十步, 亦以靑色布爲質, 崇廣丈四尺, 鵠方四尺六寸有奇。 近侯去壇八十步, 以白漆皮爲質, 崇廣四尺六寸, 皆?以豕首, 取中者。】 設騎射之的; 【左右各五, 紅白相間, 的徑尺二寸, 左右相距五步, 每的相距各三十五步。 左執弓者馳馬, 初射左第一紅的, 次橫馳射右第二紅的, 次橫馳射左第三紅的, 次橫馳射右第四紅的, 次橫馳射左第五紅的。 右執弓者馳馬, 初射右第一白的, 次橫馳射左第二白的, 次橫馳射右第三白的, 次橫馳射左弟第四白的, 次橫馳射右第五白的。 其不能制馬, 左執弓而右射的, 右執弓而左射的中者, 亦取之。 弓不滿者、馬不疾者, 雖中不取。】 立騎槍之標, 【以芻人三分, 立左右斜對。 其左右相距五步, 每芻人相距二十五步, 動馬後作左右揮槍勢, 疾趨至左第一芻人, 變作觸勢, 以中其面。 又橫馳至第二芻人, 變作觸勢, 以中其面。 又橫馳至第三芻人, 變作觸勢, 以中其面, 卽變作左右背槍之勢, 失勢者、馬不疾者、棄鞭者, 雖中不取。】 作擊毬之門; 【毬門相距三步, 自立旗處至毬門相距二百四十步, 自立馬處至旗下置毬處相距三十餘步。 擧人右手執杖, 杖端向內, 飜載馬項上半出左, 趨馬進置毬處, 以排之動毬, 以持皮回之, 毬若入凹則亦用排之。 凡擊毬須及毬行未止而擊之, 馬首俱快, 備勢三回畢, 乃馳馬擊行毬。 行毬之初, 不縱擊, 執杖橫直與馬耳齊, 然後擧手縱擊出毬門, 回馬還到初立處, 其馳馬與杖勢如初。】 設將射位於東西階前, 相向北上; 射位於階下近西, 橫布南向。 其日, 訓鍊觀先戒擧人, 集於壇所; 兵曹勒諸衛, 陳法駕鹵簿; 判司僕陳輿及御馬仗馬, 竝於弘禮門外, 分立如常。 議政府六曹堂上官及臺諫官, 依時刻俱集光化門外; 諸護衛之官及司禁, 各具器服, 詣思政殿閤外伺候。 判司僕進輦於勤政門外南向, 判通禮俯伏?啓外辦, 殿下具翼善冠袞龍袍, 乘輿以出, ?扇侍衛如常儀。 至勤政門外, 殿下降輿乘輦, 侍衛導從如常。 殿下至壇所, 降輦陞座, ?扇侍衛如常儀。 侍從群官皆就次。 兵曹訓鍊觀官及擧人入就壇下, 異位重行, 北向四拜訖, 二品以上, 由西偏階升壇, 在西東向北上俯伏; 三品以下在壇下, 【若兵曹參議訓鍊觀副提調, 升壇西南隅, 北向東上。】 各供其事。 擧人皆出持弓矢, 【矢用三 。】 兩人爲?以俟。 訓鍊觀槌鼓三聲, 擧人入就將射位俯伏, 以次而興, 就射位北向俯伏興, 南向先射遠侯, 射畢北向俯伏興, 還將射位。 衆?畢射, 次射中侯, 次射近侯, 皆如上儀。 次騎射, 次騎槍, 次擊毬訖, 皆退, 兵曹分等第以啓。車駕還宮, 侍衛導從如來儀。

군례의식 (대사례)

대사례<절차/의식>

대사례<절차/의식>
1) 3일 전에 병조가 관리에게 임무를 맡긴다. 1일 전에는 전설사가 장전을 설치하고, 악차를 장전의 뒤에 설치한다.

2) 액정서는 어좌를 장전의 안에, 임금이 활쏘는 자리를 장전의 앞에 설치한다.

3) 장악원은 연주단의 자리를 사단 남쪽에 설치한다.

4) 웅후는 90보 거리에 펴고, 핍은 웅후의 동과 서쪽의 10보 지점에, 북 하나는 사단 아래 동쪽에, 복 5개는 사단 아래 설치한다.

5) 시사자의 활쏘는 자리는 서쪽 계단 앞에 설치한다. 시사자인 성균관 대사성 이상의 활 쏘는 자리는 사단 위에, 3품 이하의 활 쏘는 위는 사단 아래에 설치한다.

6) 거가가 궁에서 나와 단소에 이르러 악차로 들어간다.

7) 종친 및 문무ㆍ 백관은 모두 상복 차림으로 통과 서쪽의 문 밖으로 나아간다. 시사자도 상복을 입고 서쪽문 밖 백관의 앞에 선다.

8) 모든 의식의 준비를 마치면 전하는 활을 쏠 준비를 한다. 상호군 2인은 어궁시를 가로 받들고 선다.

9) 결과 습을 받든 사람의 앞에 설치하고, 어결과 어습함을 그 위에 놓는다.

10) 북 잡은 사람이 북을 쳐 세 번 울리면 획자는 북으로 응수하고, 후를 진 사람은 핍으로 간다.

11) 상호군 한사람이 결과 습함을 받들고, 한 사람은 활을 받들고, 한 사람은 살을 받들고 나아가 어좌 동쪽에 선다.

12) ‘결과 습을 끼도록' 왕께 아뢴다.

13) 좌통례가 ‘어좌에서 내려오기'를 계청한다.

14) 전하가 내려오면 풍악이 울리고, 전하가 활 쏘는 위로 오른다.

15) 활 받든 사람이 꿇어 앉아 어전에 올린다.

16) 살 받든 사람이 제1의 살을 올린다

17) 살을 쏘면 풍악이 울린다. 상호군은 앞에 꿇어앉아 살의 행방을 아뢴다.

18) 적중한 것을 ‘획', 아래로 처진 것을 ‘유', 위로 솟은 것을 ‘양', 왼 쪽을 ‘좌방'이라하고 오른 쪽을 ‘우방' 이라한다.

19) 제2의 살을 올린다. 상호군이 살의 행방을 아뢴다.

20) 제3의 살을 올린다. 상호군은 살의 행방을 아뢴다.

21) 제4의 살을 올린다. 상호군은 살의 행방을 아뢴다.

22) 임금의 활쏘기가 끝나면 풍악은 그친다. 웅후를 거두고 미후를 설치한다.

23) 상호군이 꿇어 앉아 활을 받아 물러나 돌아가면 풍악이 울린다.

24) 전하는 어좌로 오르면 풍악이 그친다.

25) 상호군이 결과 습을 받아 올리고 물러난다.

26) 취시관이 임금의 살을 나아가면 상호군은 이어 받들기를 처음과 같이 한다.

27) 시사자가 짝을 지어 올라가 활 쏘는 자리로 나아간다.

28) 먼저 대신이, 다음은 종친과 의빈이, 다음은 문신, 무신이 짝을 지어 들어가 설 때 서로 읍한다. 적중시킨 사람에게는 땅에 엎드리는 일을 제하여 준다. 활쏘기를 마치면 또 서로 읍한다.

29) 풍악이 울리면 살을 쏜다. 제1발이 적중하면 획자는 북을 치고, 적중하지 않으면 징을 친다. 군사가 6색기를 가지고 표적을 맞히면 붉은 기, 상변은 누런 기, 하변은 검은 기. 좌우는 모두 바위의 빛, 바르면 채색기로 응답한다.

30) 여러 짝들이 차례로 활쏘기를 한다. 활쏘기를 마치면 풍악은 그친다.

31) 맞힌 사람의 성명 및 맞힌 수를 적어 왕께 아뢴다.

32) 맞힌 사람에게는 상을, 맞히지 못한 사람에게는 벌을 요청한다.

33) 군시기의 관원이 차례로 상물을 준다.

34) 맞히지 못한 사람은 꿇어앉아 치를 들고 서서 마신다.

35) 사옹원 관원이 북쪽을 향하여 꿇어앉아 빈치에 술을 따라 놓으면 맞히지 못한 사람은 차례로 이어서 마시는데 모두 처음과 같이 한다.

36) 벌주의식을 마치면 모든 신하는 4번 절을 한다.

37) 전하가 어좌에서 내려와 환궁을 한다.

용어해석
1) 웅후(熊侯) : 곰 가죽으로 장식한 과녁

2) 핍(乏) : 가죽으로 만든 화살 막이

3) 복(복) : 화살꽂이

4) 치(치) : 쇠뿔로 만든 술잔. 벌주(罰酒)를 마시게 할 때 사용됨

5) 풍(豊) : 술 장을 받치는 대. 잔대

6) 승시(乘矢) : 네 대 한 벌의 화살. 승은 4를 뜻함

7) 결(決) : 활 쏠 때 시위 잡아당기는 엄지손가락의 아랫마디에 끼는 것. 뿔로 대통 모양으로 만들었음

8) 습(拾) : 활을 쏠 때 활을 쥐는 쪽의 팔소매를 걷어매는 띠. 팔찌.

9) 부(부) : 활의 한 가운데의 손으로 쥐는 부분. 줌통.

10) 소(簫) : 활의 두 머리. 곧 시위를 메게 된 부분. 활고자.

11) 미후(미侯) : 사슴 가죽으로 장식한 과녁.



원문
원천자료

원천자료 : 국조오례의, 세종실록오례의
2차 참고자료 : 심승구, 조선의 궁술과 그 특성, 동북아스포츠사학회논문집, 1997


武科殿試儀 (世宗實錄 卷131, 五禮)

前二日, 兵曹宣攝內外, 各供其職。 前一日, 忠扈衛設帳殿於射壇南向; 幄次於帳殿之後, 掖庭署設御座於帳殿內南向; 訓鍊觀張步射之侯; 【遠侯距壇二百四十步, 以靑色布爲質, 崇廣丈八尺三分。 其廣而鵠居一, 鵠方六尺, 白漆皮方制之, 棲於侯中, ?以豕首。 侯左右相距五十步, 竪旗爲標。 侯後五十步, 左右相距七十步, 竪旗爲標。 取遠至者中者。 及者。 中侯距壇一百八十步, 亦以靑色布爲質, 崇廣丈四尺, 鵠方四尺六寸有奇。 近侯去壇八十步, 以白漆皮爲質, 崇廣四尺六寸, 皆?以豕首, 取中者。】 設騎射之的; 【左右各五, 紅白相間, 的徑尺二寸, 左右相距五步, 每的相距各三十五步。 左執弓者馳馬, 初射左第一紅的, 次橫馳射右第二紅的, 次橫馳射左第三紅的, 次橫馳射右第四紅的, 次橫馳射左第五紅的。 右執弓者馳馬, 初射右第一白的, 次橫馳射左第二白的, 次橫馳射右第三白的, 次橫馳射左弟第四白的, 次橫馳射右第五白的。 其不能制馬, 左執弓而右射的, 右執弓而左射的中者, 亦取之。 弓不滿者、馬不疾者, 雖中不取。】 立騎槍之標, 【以芻人三分, 立左右斜對。 其左右相距五步, 每芻人相距二十五步, 動馬後作左右揮槍勢, 疾趨至左第一芻人, 變作觸勢, 以中其面。 又橫馳至第二芻人, 變作觸勢, 以中其面。 又橫馳至第三芻人, 變作觸勢, 以中其面, 卽變作左右背槍之勢, 失勢者、馬不疾者、棄鞭者, 雖中不取。】 作擊毬之門; 【毬門相距三步, 自立旗處至毬門相距二百四十步, 自立馬處至旗下置毬處相距三十餘步。 擧人右手執杖, 杖端向內, 飜載馬項上半出左, 趨馬進置毬處, 以排之動毬, 以持皮回之, 毬若入凹則亦用排之。 凡擊毬須及毬行未止而擊之, 馬首俱快, 備勢三回畢, 乃馳馬擊行毬。 行毬之初, 不縱擊, 執杖橫直與馬耳齊, 然後擧手縱擊出毬門, 回馬還到初立處, 其馳馬與杖勢如初。】 設將射位於東西階前, 相向北上; 射位於階下近西, 橫布南向。 其日, 訓鍊觀先戒擧人, 集於壇所; 兵曹勒諸衛, 陳法駕鹵簿; 判司僕陳輿及御馬仗馬, 竝於弘禮門外, 分立如常。 議政府六曹堂上官及臺諫官, 依時刻俱集光化門外; 諸護衛之官及司禁, 各具器服, 詣思政殿閤外伺候。 判司僕進輦於勤政門外南向, 判通禮俯伏?啓外辦, 殿下具翼善冠袞龍袍, 乘輿以出, ?扇侍衛如常儀。 至勤政門外, 殿下降輿乘輦, 侍衛導從如常。 殿下至壇所, 降輦陞座, ?扇侍衛如常儀。 侍從群官皆就次。 兵曹訓鍊觀官及擧人入就壇下, 異位重行, 北向四拜訖, 二品以上, 由西偏階升壇, 在西東向北上俯伏; 三品以下在壇下, 【若兵曹參議訓鍊觀副提調, 升壇西南隅, 北向東上。】 各供其事。 擧人皆出持弓矢, 【矢用三 。】 兩人爲?以俟。 訓鍊觀槌鼓三聲, 擧人入就將射位俯伏, 以次而興, 就射位北向俯伏興, 南向先射遠侯, 射畢北向俯伏興, 還將射位。 衆?畢射, 次射中侯, 次射近侯, 皆如上儀。 次騎射, 次騎槍, 次擊毬訖, 皆退, 兵曹分等第以啓。 車駕還宮, 侍衛導從如來儀。

군례의식 (관사의)

관사의<절차/의식>

1) 3일 전에 병조(兵曹)에서 내외관(內外官)에게 선섭(宣攝)하여 각각 그 직책을 다하게 한다.

2) 1일 전에 전설사(典設司)에서 장전(帳殿)을 사단(射壇)에 남향하여 설치하고, 악차 장전(帳殿) 뒤에 설치한다. 액정서(掖庭署)에서 어좌(御座)를 장전(帳殿) 안에 남향하여 설치한다.

3) 장악원(掌樂院)에서 헌현(軒懸)을 사단(射壇)의 남쪽에 진열하고, 등가(登歌)를 사단(射壇) 위 남쪽 가까이에 진열하되 중앙을 넓게 벌려놓는다. [화살길을 피하려는 것이다].

4) 협률랑(協律郞)의 휘(麾)드는 위(位)를 사단(射壇) 위 서쪽 가까이에 동향하여 설치한다. 협률랑(協律朗)의 자리 2개를 설치하되,1개는 등가(登歌)의 서북쪽에 설치하고, 1개는 사단(射壇)의 위에 설치하며, 전악(典樂)의 자리를 사단(射壇)아래 설치하되 모두 서쪽 가까이에 동향하게 한다.

5) 훈련원(訓練院)에서 미후(미侯)를 사단(射壇)의 90보(步)거리에 설치하고 후(侯)는 청색(靑色)포로써 바탕을 만들고 높이와 나비를 1장(丈) 8척(尺)으로 하며, 그 나비를 세 등분(等分)하여 정곡(正鵠)이 그 1등분을 차지하며, 정곡(正鵠)은 사방을 6 척(尺)인데, 흰 색을 칠한 가죽으로써 모지게 이를 만들어 후(侯)의 복판에 붙이고 순록(미)의 머리를 그린다. 화살막이를 후(候)의 동서 각 10보에 설치한다. 화살가림 [乏]은 후(侯)의 옆에서 화살을 피하는 물건이니, 가죽으로써 이를 만든다. 높이와 넓이가 7척(尺)이고, 형상은 병풍(屛風)과 같다. 고(鼓) 1개는 동쪽편 화살가림에 있고, 쇠(金) 1개는 서쪽편 화살가림에 있다. 북 1개는 사단(射壇)아래 조금 동쪽에 설치하고, 화살꽂이 5개를 사단(射壇)아래 조금 서쪽에 설치한다. 화살그릇[복]은 길이가 3척(尺)이고, 나비가 7촌(寸)이고, 두께가 1촌(寸) 반이다. 머리는 용이고, 몸뚱이는 뱀인데, 화살을 쌓아둔다. 장사위(將射位)는 동계(東階)와 서계(西階) 앞에 설치하는데 겹줄로 마주보게 하고 북쪽을 상위(上位)로 한다. 좌우의 사사(司射)하는 위(位)를 장사위(將射位)앞에 설치하는데, 동서에서 서로 향하게 한다.

6) 그날 사자(射者)는 궁시(弓矢)를 가지고 서문(西門) 밖에서 기다리고, 상물(賞物)을 사단(射壇) 아래 조금 동쪽에 진열하고, 벌준의 탁자를 사단(射壇) 아래 조금 서쪽에 북향하여 설치한다. 점(점)을 설치하고 술잔[풍]을 얹으며, 잔대를 탁자의 서쪽에 놓는다. 풍(풍)은 벌주(罰酒)잔을 바치는 것인데 형상은 두(豆)와 같으며, 크고 낮다. 화살 줍는 사람의 자리를 화살을 줍는 관원이다. 위(位)를 동서의 화살막이[乏]에 서로 향하게 설치한다.

7) 전의(典儀)가 집사관(執事官)과 종친·문무백관의 배위(拜位)를 설치하되, 모두 사단에서 활 쏘는 의식의 위(位)와 같이한다.

8) 전하(殿下)가 익선관(翼善冠)을 쓰고 곤룡포(袞龍袍)를 입고 궁(宮)에서 나와서 사단(射壇)에 이르러 악차(幄次)로 들어간다. 장위(仗衛)를 사단(射壇)의 동서에 배열하는데, 모두 사단에서 활 쏘는 의식과 같이 한다.

9) 종친과 문무백관들은 모두 상복(常服)차림으로 동문(東門)과 서문(西門) 밖으로 나아간다. 전악(典樂)이 공인(工人)을 거느리고 들어와 위(位)에 나아가고, 협률랑(協律郞)이 들어와서 휘(麾) 드는 위(位)에 나아가고, 집사관(執事官)이 먼저 위에 나아간다. 인의(引儀)가 3품 이하를 나누고 인도하여 들어와 배위(拜位)에 나아간다.

10) 좌통례(左通禮)가 부복하고 꿇어앉아서 외판(外辦)을 아뢰고, 전하가 나가려 하면 의장(儀仗)이 움직이고 고취(鼓吹)가 진작(振作)한다. 사단(射壇)에 오르려 하면 협률랑(協律郞)이 꿇어앉아 부복하고 휘(麾)를 들고 일어나고, 공인(工人)이 축(축)을 두드리면 헌가(軒架)에서 풍악을 연주하고, 고취(鼓吹)는 그친다. 전하가 어좌(御座)에 오르고, 산선(산扇)과 시위는 평상 의식과 같이 한다. 무릇 군사들은 모두 무기와 제복을 갖춘다.

11) 협률랑(協律郞)이 꿇어앉아 휘(麾)를 숙이고 부복하였다가 일어나고, 공인(工人)이 어(어)를 그으면, 풍악이 그친다.

12) 여러 호위하는 어좌(御座)뒤에 늘어서고, 승지(承旨)가 서쪽 편계(偏階)를 거쳐 사단(射壇)에 올라가서 서남쪽 모퉁이에서 북향하고, 동쪽을 상위(上位)로 하여 부복하고. 사관(史官)은 그 뒤에 자리한다. 다음에 사금(司禁)이 사단(射壇) 아래에 동서로 나뉘어 서는데 평상과 같이한다. [군사들은 모두 기복(器服)을 갖춘다].

13) 인의(引儀)가 2품 이상을 나누어 인도하여 들어와서 배위(拜位)에 나아간다. 전의(典儀)가 “사배(四拜)”하고 말하면, 찬의(贊儀)가 “국궁(鞠躬) 사배(四拜) 흥(興) 평신(平身)”을 창(唱)하고[찬의(贊儀)의 찬창(贊唱)은 모두 전의(典儀)의 말을 받아서한다.] 종친과 문무백관들이 몸을 굽히면 풍악이 연주되고, 네 번 절하고 일어나서 몸을 바로하면 풍악이 그친다.

14) 인의(引儀)가 종친과 문무백관을 나누어 인도하여 위(位)에 나아가서 의식(儀式)을 진행하기를 정조와 동지 모임의 의식[正至會儀]과 같이 한다[상수례 (上壽禮) 만은 없다].

15) 술이 세 순배 돌면, 좌통례(左通禮)가 서쪽 편계(偏階)로 올라가서 어좌(御座) 앞에 나아가 부복하고 꿇어앉아 ‘종친과 백관에게 활쏘기를 명할 것'을 계청하고서 부복하였다가 일어나 내려와 위(位)로 돌아간다. 인의(引儀)가 종친 이하를 나누어 인도하여 모두 내려가서 [이에 앞서 사단(射壇)에 오른 사람이 내려가려고 하면, 사단(射壇)아래에 있던 사람이 먼저 위(位)로 나아간다. 승지(承旨)는 사단위에서 동향하고 북쪽을 상위(上位)로 하여 부복한다].위로 돌아간다.

16) 찬의(贊儀)가 “국궁(鞠躬) 사배(四拜) 흥(興) 평신(平身)”을 창(唱)하면 종친과 문무백관들이 몸을 굽히는데 풍악이 연주되고, 네 번 절하고 일어나 몸을 바로하면 풍악이 그친다.

17) 인의(引儀)가 나누어 인도하여 중문(中門) 밖으로 나가면, 화살 줍는 사람 1인이 정(旌)을 가지고 후(侯)를 짊어지고 북향하여 선다. 종친과 문무백관이 활을 쥐고 네 개가 한 묶음을 된 화살[乘至]을 등에 꽂고 들어와서 將射位에 나아간다.

18) 병조판서가 서쪽 편계(偏階)로 올라가서 어좌(御座) 앞에 나아가 부복하고 꿇어앉아 ‘화살 줍는 사람에게 후(侯)에 가도록' 명하기를 아뢰고는 부복하였다가 일어나 내려가 위(位)로 돌아간다.

19) 북을 잡은 사람이 훈련관판관(訓練觀判官)이다. 북을 세 번 치면, 화살 줍는 사람이 북소리에 응하여 가고, 후(侯)를 진 사람이 돌아와 화살막이[乏]에 이른다.

20) 좌우 사사(司射)가 동쪽 편계(偏階)와 서쪽 편계(偏階)로 나누어 올라가 활 쏘는 좌석에 나아가서, 북향하여 부복하였다가 일어나서 남향하여 선다. 좌사사(左司射)가 1발을 쏘면 우사사(右司射)가 1발을 쏘아 번갈아 화살을 쏜다. 이를 마치면, 모두 북향하여 부복하였다가 일어나 내려와 위(位)로 돌아간다.

21) 종친 이하가 짝을 지어 동쪽 편계(偏階)와 서쪽 편계(偏階)로 나뉘어 올라가서 활 쏘는 좌석에 나아가서 북향하여 부복하였다가 일어나서 남향하여 선다. 헌가(軒駕)가 풍악 1절[성안지악(誠案之樂)] 을 연주한 후 화살을 쏜다.

22) 제 1발이 제 2절과 서로 응하여 5절까지 이르면[화살이 적중(的中)하면 화살 줍는 사람이 북을 치고. 맞지 않으면 금(金)을 친다.]풍악이 그친다.

23) 활 쏘는 사람이 북향하여 부복하였다가 일어나서 내려가 장사위(將射位)로 돌아간다.

24) 화살 거두는 사람이 훈련관참군(訓練觀參軍)이다. 거두는 사람이 맞힌 화살을 거둬 화살꽂이[풍]에 꽂는다.

25) 여러 사람들이 짝을 지어 차례대로 활쏘기를 마치면, 활을 위(位)에 놓고 모두 사단(射壇) 아래로 나아가 동서로 나뉘어 겹줄로 복향한다.

26) 병조판서가 맞힌 사람의 성명과 맞힌 숫자를 써서 서쪽 편계(偏階)로 올라가서 어좌(御座) 앞에 나아가 부복하고 꿇어앉아 활쏘기를 마친 것을 아뢴다. 맞힌 사람에게 상을 주고, 맞히지 못한 사람에게 벌을 줄 것을 청하고, 부복하였다가 일어나 내려와서 위(位)로 돌아와서는 정랑(正郞)에게 맞힌 사람의 성명을 창(唱)하여 동계(東階) 아래에 서향하여 서게 하고, 맞히지 못한 사람은 서계(西階) 아래에 동향하게 서게 하는 데, 모두 북쪽을 상위(上位)로 한다.

27) 찬의(贊儀)가 “국궁(鞠躬)사배(四拜)흥(興)평신(平身)”을 창(唱)하면, 활 쏜 사람이 몸을 굽히고 풍악이 연주되며, 네 번 절하고 일어나 몸을 바로 하면 풍악이 그친다. 군기사(軍器寺)의 관원이 동계(東階) 아래로 나아가서 차례대로 상물(賞物)을 주고, 상을 받는 사람은 북향하고 꿇어앉아 상을 받고는 부복하였다가 일어나 서향한 위(位)로 돌아간다[내린 물건이 많은 경우에는 위(位)에 두 되 모시는 사람이 들어와 중문(中門) 밖으로 가지고 나가서 준다].

28) 사옹원(司饔院)의 관원이 벌준의 서쪽에 나아가서 동향하여 술잔[풍]에 술을 따라 북향하여 꿇어앉아 잔대에 놓고 물러가 잔대의 남쪽 조금 서쪽으로 가서 선다.

29) 화살을 맞히지 못한 사람은 잔대 남쪽에 나아가서 북향하여 꿇어앉아 술잔을 들어서서 마시고, 술잔을 비우고 꿇어 앉아 잔대 아래에 놓고 동향한 위(位)로 돌아간다.
사옹원(司饔院)의 관원이 북향하고 꿇어앉아 빈 잔에 술을 따라 놓으면, 화살을 맞히지 못한 사람이 차례대로 계속해서 술을 마시는데, 모두 처음과 같이 한다.

30) 이를 마치면, 인의(引儀)가 종친과 문무백관을 나누어 인도하여 모두 북향한 위(位)로 돌아간다.
31) 찬의(贊儀)가 “국궁(鞠躬) 사배(四拜) 흥(興) 평신(平身)”을 창(唱)하면, 위(位)에 있는 사람이 몸을 굽히고 풍악이 연주되며, 네 번 절하고 일어나서 몸을 바로하면 풍악이 그친다.

32) 좌통례(左通禮)가 서쪽 편계(偏階)로 올라 어좌(御座) 앞에 나아가서 부복하고 꿇어앉아 “예필(禮畢)”을 아뢰고서, 부복하였다가 휘(麾)를 들고 일어나고, 공인(工人)이 축(축)을 두드리면, 풍악이 연주되고, 전하가 어좌(御座)에서 내려와 사단(射壇)에서 내려가려고 하면 고취(鼓吹)가 진작(振作)한다. 협률랑이 휘(麾)를 숙이고 부복하였다가 일어나고, 공인(工人)이 어(어)를 그으면 풍악[융안지악(隆案之樂)]이 그치고, 전하가 악차(幄次)로 돌아오면 고취(鼓吹)가 그친다.
인의(引儀)가 종친 및 문무백관을 나누어 인도하여 나간다. 환궁(還宮)은 올 때의 의식과 같아야 한다.


원천자료
국조오례의, 세종실록오례의, 국조속오례의

군례의식 (강무의)

강무의 <절차/의식>

1) 기일(期日) 전 7일에 병조(兵曹)에서 여러 백성을 불러서 사냥하는 법에 따르게 한다. 병조에서 사냥하는 들판을 표시(表示)한다. 그날 날이 밝기 전에 기(旗)를 사냥하는 곳의 뒤 근교(近郊)에 세우는데 땅의 적당한 데 따르게 한다. 여러 장수들이 각각 군사들을 거느리고 기(旗) 아래 집합해서 떠들지 못하게 한다. 날이 밝으려 할 때 기(旗)를 누인 뒤에 오는 사람은 벌을 준다. 병조(兵曹)에서 사냥하는 영[令]을 나누어 알려서 사냥터를 에워싸게 한다.

2) 그 양익(兩翼)의 장수가 모두 기를 세우고 에워싸는데, 그 앞은 틔워 놓는다. 어가(御駕)가 나오고 차(次)에 들어감은 평상과 같이 한다. 사냥하는 곳에 이르려 할 때, 어가(御駕)는 북을 울리며 사냥터로 들어간다. 유사(有司)가 북을 어가(御駕) 앞에 벌여 놓는다. 동남쪽에 있는 사람은 서쪽을 향하고, 서남쪽에 있는 사람은 동쪽을 향하여 모두 말을 탄다.
여러 장수들이 모두 북을 울리면서 사냥터로 나아가면 이어 몰이하는 기병(騎兵)을 설치한다. 임금이 말을 타고 남쪽을 향하면, 유사(有司)가 뒤에 따르고, 대군(大君)이하의 관원이 모두 말을 타고 활과 화살을 가지고 어가(御駕)의 앞뒤에 벌여 선다.

3) 무릇 짐승을 쏠 적에는 왼쪽 표에서【음은 표이니, 어깨 뒤와 넓적다리 앞의 살이다.】 쏘아서 오른쪽 우(?)로【우는 우(牛)와 구(口)의 반절(反切)이니, 어깻죽지 앞의 살이다.】 관통하는 것을 상(上)으로 삼는데, 건두(乾豆)로 만들어 종묘(宗廟)에 받들며, 오른쪽 귀 부근을 관통하는 것이 이에 다음 가는데, 빈객(賓客)을 접대하며, 왼쪽 비(脾)에서【비는 포(捕)와 이(爾)의 반절(反切)이니, 넓적다리 뼈이다.】 오른쪽 연( )으로【이(以)와 연(沿)의 반절이니, 어깨 뼈이다.】 관통하는 것을 하(下)로 삼는데, 포주(포廚)에 충당한다. 여러 짐승을 서로 따르는데, 다 죽이지 아니하고, 이미 화살에 맞은 것은 쏘지 아니하며, 또 그 면상(面上)을 쏘지 아니하고, 그 털을 자르지 아니하고, 그것이 표(表) 밖에 나간 것은 쫓지 아니한다.

4) 그치려고 하면 병조에서 기(旗)를 사냥하는 구역 안에 세운다. 어가(御駕)의 북과 여러 장수들의 북을 크게 치면 사졸(士卒)들이 고함을 치고, 짐승을 잡은 여러 사람은 기(旗) 아래에 바치면서 그 왼쪽 귀를 든다. 큰 짐승은 공용(公用)으로 바치고, 작은 짐승은 사용(私用)으로 한다. 사자(使者)를 보내어 잡은 짐승을 가지고 달려가서 종묘(宗廟)에 올리고, 다음에는 악전(幄殿)에서 연회를 열고, 따르던 관원들에게 술 세 순배(巡盃)를 돌린다.

5) 사냥할 때 여러 장수들은 사졸(士卒)들이 서로 섞이지 아니하도록 하고,

6) 어가(御駕) 앞에 기를 세워서 첨시(瞻視)를 구별하도록 하며,

7) 어가 앞에 가까이에 있는 사람들은 내금위(內禁衛)와 사금(司禁) 이외 모든 잡인(雜人)들을 일체 금하게 하며,

8) 차례대로 벌여 서서 짐승을 에워싼 속으로 모두 몰아들이는데 빠져 나가는 놈은 군사들이 쫓아가 화살로 쏘는데, 그 위차(位次)를 지나면 중지하고 쫓지 못하게 하며,

9) 모든 잡인(雜人)들은 에워싼 앞으로 먼저 가지 못하게 하며, 에워싼 안에서 화살을 쏘고 매와 개를 풀지 못하게 하며,

10) 영(令)을 어긴 자는 당상(堂上)관이 임금에게 아뢰어 죄를 주게 하고, 3품(品) 이하는 병조(兵曹)에서 바로 처단하게 하며, 도피(逃避)한 사람은 죄 2등(等)을 더하며, 비록 에워싼 밖이라도, 앞을 다투어 화살을 쏘아서 인명(人命)을 상하거나, 개나 말을 상한 자는 각각 본률(本律)에 의하여 시행한다.



원천자료
국조오례의, 세종실록오례의, 국조속오례의

군례의식 (향사의)

향사의 <절차/의식>

1) 해마다 3월 3일에【가을이면 9월 9일】 개성부(開城府) 및 여러 도(道)의 주(州)·부(府)·군(郡)·현(縣)에서 그 예(禮)를 행한다. 1일전에 주인(主人)이【소재 관사(所在官司)임】 빈(賓)에게 알린다.【효제(孝悌)하고 충신(忠信)하여 예의(禮儀)를 좋아하고, 행실이 난잡하지 않은 사람을 선택한다】 그날에 주인의 자리를 사단(射壇) 동쪽에 서향하여 설치하고,【학당(學堂)의 근처에 땅을 깨끗이 소제하고 사단(射壇)을 만든다】

2) 그날 주인의 위(位)를 사단(射壇) 동쪽에 서쪽을 향하여 [학당(學堂)의 근처(近處)에 땅을 깨끗이 소제하고 사단(射壇)을 만든다】 빈(賓) 2품(品) 이상의 자리를 사단 서쪽에 동쪽을 향하여 북쪽을 상위(上位)로 하게하고, 중빈(衆賓) 3품(品) 이하의 자리를 남행(南行)에 동쪽을 상위(上位)로 하여【2품(品) 이상이 없는 경우에는 6품(品) 이상은 서쪽에, 참외(參外)는 남쪽 줄에서 동쪽·서쪽으로 나누어 앉고, 중앙은 넓게 틔워 놓는다】 서인(庶人)은 사단(射壇) 아래에 동쪽·서쪽에서 마주보게 설치하는데, 북쪽을 상위(上位)로 한다.

3) 주탁(酒卓)을 사단(射壇) 남쪽의 동쪽 가까이에, 단(壇)에 오르지 못한 사람의 주탁(酒卓)은 그 앞에 설치한다. 이에 후(候)를 펴는데, 사단(射壇)에서 90보(步) 떨어지게 한다.

4) 빈(賓) 이하가 시각에 맞춰 집합해 모이면, 주인이 문 밖에 나아가 맞아서【빈(賓)과 주인이 예(禮)를 행할 적에는 모두 상자(相者)가 지도(指導)한다】 읍양(揖讓)하고 먼저 들어오면 빈(賓)이 비로소 들어오며, 중빈(衆賓)이 이를 따라서 사단(射壇)에 이른다. 주인은 동쪽에, 빈(賓)은 서쪽에서 빈(賓)이 두 번 절하면 주인이 답하여 두 번 절한다. 다음에 중빈(衆賓)이 예(禮)를 행하는 것도 위의 의식과 같이 한다.【참외(參外)는 주인의 자리 앞에 나아가고, 서인(庶人)은 뜰에서 례(禮)를 행하는데, 주인은 답례(答禮)가 없다】

5) 주인이 빈(賓) 이하와 모두 자리에 나아간다. 공인(工人)이 금슬(琴瑟)을 가지고 주탁(酒卓) 남쪽에 올라와 앉는데, 동쪽을 상위(上位)로 하고, 풍악을 연주하기를 평상과 같이 한다.【본래 풍악이 없는 곳에서는 굳이 풍악을 쓸 것은 없다】 집사자(執事者)가 탁자(卓子)를 설치하고 술을 따르면, 주인이 빈(賓)에게 술잔을 드리고, 빈(賓)이 주인에게 술잔을 돌리기를 평상의 예(禮)와 같이 한다.【중빈(衆賓)도 이와 같이 한다. 다만 뜰에 있는 사람은 집사자(執事者)가 술을 돌린다】 술이 세 순배(巡杯) 돌면 이내 주탁(酒卓)을 치운다.

6) 사사(司射)가 빈(賓)에게 활쏘기를 청하면, 빈(賓)이 이를 허락한다. 사사(司射)가 주인에게 고하고 서계(西階)로 내려와서 제자(弟子)에게 명하여 사기(射器)를 바치게 한다. 사사(司射)가 활을 가지고 네 대의 화살을 등에 꽂고 사단(射壇)으로 도로 올라와서 활을 쏜다.

7) 활쏘기를 마치면, 빈(賓)과 주인이【임시(臨時) 해서 서로 짝을 짓는다】 화살 3개를 등에 꽂고 1개를 손가락 사이에 끼우고서 차례차례 활을 쏜다.【화살을 쏠 적마다 모두 풍악이 시작되고, 화살을 쏘면 반드시 절차에 맞게 한다】

8) 활쏘기를 마치면, 사사(司射)가 제자(弟子)에게 명하여 술잔을 주탁(酒卓)에 설치하는데, 화살을 맞히지 못한 사람은 술잔을 가져다가 술을 채워 가지고 조금 뒤로 물러나 서서 술잔을 비운다. 그리고 도로 주탁에 놓는다. 중빈(衆賓) 중에서 맞히지 못한 사람은 차례대로 잇달아 술을 마시고, 만일 주인과 2품(品) 이상의 빈(賓)이 맞히지 못하면, 제자(弟子)가 술잔을 씻어 올리고, 술잔을 받아가지고 서서 술을 마신다. 마시기를 두루 다하면 술잔을 치우고, 빈(賓)과 주인이 모두 일어나서 두 번 절하는 예(禮)를 행하기를 처음과 같이 한다.

9) 빈이 내려와서 나가면, 중빈(衆賓)이 따라 나가는데, 주인이 문밖에서 보내기를 평상의 예(禮)와 같이 한다.

10) 사사(司射)는 여러 사람이 추앙 복종하는 사람으로 정한다. 치레(置禮) · 적청(籍請) · 구장(具狀) · 예책(禮責) · 제적(除籍) · 상자(相者) · 지판(支辦) 등의 일은 모두 향음주(鄕飮酒)의 의식과 같다.



원천자료
국조오례의, 세종실록오례의, 국조속오례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