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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의 활쏘기

장안평사

개괄적인 내용
장안편사는 우리의 전통적인 편사문화를 계승하기 위한 것이므로 전통활인 각궁에 죽시를 쏘는 궁사를 우선적으로 편사원으로 선발한다. 편사의 원형에 따르면 한편대에 고전, 거기, 획관, 획창까지 모두 합해서 20명으로 조직하게 되어 참가인원이 60명으로 한정이 된다. 또한 옛날 기생 · 악공의 역할은 경기 · 인천지방에서 편사놀이에 전문적으로 참여하는 창악팀을 골라서 장안편사형에 맞는 노래와 연주, 지화자를 한다. 청?백군이 사직공원에 도착했음을 알리는 징을 치면 황군이 알았다는 응답의 징을 치고서 농악대를 앞세워 영접행진을 하게 된다. 영접해서 3군편사원이 모두 황학정 정자 앞에 도착하면 서로 상견례를 한다.

편사 당일의 진행절차는 오전 9시 고사를 황학정 처마 밑에서 지내고 여유 있게 마련한 고사 음식은 잔디밭에 一자로 길게 놓은 사위에 옮기고 황학정이 포함된 항군편대가 편기와 정기를 앞세우고 정렬하고 악공과 함께 대기한다. 청군과 백군 편대는 9시 30분 사직공원에 집합하며 큰북 또는 징을 쳐 도착했음을 황학정에 알리고, 도착신호를 받는 황군쪽에서도 역시 북이나 징을 쳐 응답을 하고 나서 황군편대가 편기와 정기들을 앞세우고 풍악을 울리며 마중을 나가 사직공원에서 청?백군을 인도하여 편사장에 입장한다.

입장한 편대들은 편기와 정기들을 편사장 좌우에 나란히 꽂고 잔디밭의 긴상을 사이에 놓고 대면, 상견례를 하며 가볍게 고사술을 음복한다. 이 자리에서 주최하는 측의 인사말과 편사 진행방법과 주의사항을 전달하고 나면 편사원들은 물러나 자기편대의 천막으로 가고 잔디밭의 상을 치우고 나서 편사가 시작된다.

편사는 습사 없이 정사(正射)로 시작되는데 처음 수띠 3명이 사대에 나가 궁력과 연령을 보아 서로 앞자리를 양보해가며 자리를 정하면 획관이 발시를 명한다. 수띠 이외의 편사원들은 각편 2명씩 6명을 1대로 모두 7대로 편성해서 진행한다.

편사원들이 초순을 끝내게 되면 점심식사를 하고 식사 후에는 막간으로 여무사(女武士) 1대가 한복차림으로 나가 한순만 손 뒤에 편사원들의 재순을 시작할 수도 있다.

편사가 끝나면 시상식을 한 다음 창악을 승자편에 보내서 편기와 정기들을 앞세우고 퇴장 사직공원을 한 바퀴 돌며 풍악과 노래와 춤을 춘다.

주최측과 각정 사두와 원로들은 정자에 올라가 파연(罷宴)에 참석, 서로 노고를 위로하며 장안편사의 계승발전을 위해 협력할 것을 다짐한다.

조선시대에 성행했던 장안편사가 단절된 것은 1894년 갑오경장 이전 구조선 군대에서 활과 노(弩)를 무기체계에서 제외시키게 된 때로 추측된다. 또한 대략적인 격식과 조직진행에 대해서는 문헌상으로 전해지고 있을 뿐, 세부적인 격식과 절차에 대해서는 경험자나 아는 이가 없다.

현재는 각궁에 죽시를 쏘고 엄격한 예절과 사정(射亭) 법도를 지키던 전통적인 사풍(射風)은 쇠퇴 · 소멸하는 단계에 있으며 적중률(的中率)에만 치중하는 신소재의 개량궁과 플라스틱 내지는 카본살이 판치며 직업적인 프로선수가 시 · 도에 고용되는 단계에 이르고 있다.



진행절차
장안편사의 기본 구성은 다음과 같다. 행사참가는 청군(도성 안이 한 구역), 황군(남대문 밖에서 아현동 · 서대문 · 홍제동, 북한산에 이르는 지역), 백군(서강 · 마포 · 용산 · 한강 · 왕십리 등에 이르는 지역)으로 나뉘며 각 군은 두건, 두루마기, 토시, 행전 등 지정된 복장을 착용한다. 각 군은 편장 1인(각 군의 대표), 수띠 1인(각 군의 대표 편사원), 편사원 4명(각 군 소속 사원), 획청 1인(과녁의 적중 여부를 기록하는 사람), 거기(擧基) 1인(큰 깃발을 들어 적중 여부를 알리는 사람), 고전(告箭) 1인(작은 깃발을 들고 과녁의 적중 여부를 알리는 사람) 으로 편성된다.

<편사진행의 절차>
1. 각 군 수띠가 편장에게 출전 예를 표하고 사대에 정렬하여 정사(亭射)를 실시하고 초순의 결과를 편장에게 보고한다. 각 수띠는 “편장에게 아뢰오. 오늘 기온이 높아서 어제 보다는 활이 덜 채고 바람이 줌 뒤에서 줌 앞으로 약간 있으며 촉바람이 좀 셉니다”라는 형식으로 보고한다.
2. 보고를 받은 편장은 수띠에게 ‘수고했소'라는 말과 함께 수띠에게 술 한잔을 권한다.
3. 수띠가 보고 후 획청이 “기사통하시오”라고 하면 편사원은 계단 위에 양쪽으로 도열한 후 시문한다.
4. 편장은 편사원이 만든 시문을 통과하여 사대에 정렬한다.
5. 획청이 편장의 정사(활쏘기)를 알리는 의식을 행한다.
6. 편장의 정사가 시작되고 과녁에 관중여부에 관계없이 매시 호중을 불러준다.
7. 편장의 정사가 끝난 후부터는 황, 청, 백의 각 군 편사원 1번과 2번이 동시에 사대에 정렬하여 획청자의 지시에 따라 발시하고 이때부터는 관중시에만 호중을 불러준다.
8. 각 군 편사원 1번과 2번이 끝나면 이어서 각 군 3번과 4번이 순서대로 정사한다.

(절차 요약)
수띠 활쏘기 → (악공 : 랄리리~~~ 리나노~~~) → 수띠는 편장에게 활쏘기의 상태를 보고 → 편장은 수띠에게 술을 한잔 권함 → 획청이 ‘기사통하시오'하면, 편장이 사대로 나온다 → 획청이 편장의 정사를 알리는 의식을 한다 → 편장의 활쏘기 → (악공 : 랄리리~~~ 리나노~~) → 각 군의 편사원 1번과 2번의 활쏘기 → (악공 : 랄리리~~~ 리나노~~) → 각 군의 편사원 3번과 4번의 활쏘기 → (악공 : 랄리리~~~ 리나노~~)

* 과녁에 맞췄을 때 *
획청이 “변이요” 하고 악공과 창악이 함께 ‘지화자, 지화, 지화, 지화자~~~'를 한다. 과녁 근처에 있던 고전(告箭)은 작은 깃발을 들고 맞춘 위치를 알려주고, 맞춘 위치를 파악한 후에는 고잔은 작은 깃발을, 거기(擧基)는 큰 깃발을 들고 함께 빙빙 돌린다. 이때, 각 황, 청, 백의 해당 거기와 고잔이 이를 행한다.



참고자료
國弓 1번지 1994, 1996, 1998, 황학정 백년사

백일장

개괄적인 내용
활 백일장의 역사가 언제부터 인지 분명한 기록은 없다. 그러나 1598년 임진왜란이 끝난 후 선조가 온 국민에게 호국무예로서의 활쏘기를 권장한 이래 민간인들의 활쏘기 문화가 번성한 17세기 이후로 추정된다. 활쏘기는 신분고하를 막론하고 생활문화 속에 자리 잡으면서 자연스럽게 활 백일장이 생겨난 것으로 짐작된다.

그러다가 활 백일장이 본격화된 것은 일제시대에 들어와서이다. 특히 1920년대에는 서울주변 경기도와 개성주변(장단 · 개풍 · 연백 · 평산)에서 성행했다. 그리고 함경도 지방의 함흥 · 신포 · 경성 · 청진 등에서도 단오 날 ‘활 백일장'을 하는 풍습이 있었다. 뿐만 아니라 두만강 건너 중국 땅인 도문(圖們)과 용정(龍井)에서도 ‘활 백일장' 풍습이 행해졌다.

그러나 1930년대 이후 일제의 문화말살 정책으로 ‘활 백일장'도 쇠퇴할 수밖에 없었다. 해방 이후 경기도 고양 · 김포 지방에서 농한기에 ‘활 백일장'을 재현하는 노력이 있었으나 6·25 전쟁과 4·19와 5·16 등 급변하는 생활환경 속에서 완전히 맥이 끊기고 말았다.

‘활 백일장'은 보통 3~4일에 걸쳐 이루어졌다. 백일장이 열리는 동안 그 주변에는 5일장처럼 난장이 서는 등 축제 분위기가 조성되었다. 2~3일간은 예선을 하고 마지막 하루는 비교(比較)를 쏴서 1등에서 5등까지 입상자를 결정했다. 예선은 천으로 만든 과녁으로 가로 6m, 세로 4m의 넓은 천인 ‘솔포'를 맞추는 것이다.

‘활 백일장'은 예선과 본선으로 나누어져 시행된다. 먼저, 예선전에 참가한 사람은 신청금을 내고 화살 다섯 발을 쏘는 한 순을 한다. 이때 화살 다섯 발을 모두 과녁에 명중시킨 사람에게 1등(비교권)을 얻게 되는데, 혹시 1등이 되지 못한 사람은 신청금을 내고 1등이 되기 위해 몇 번이고 쏘았다. 이때 화살을 3발 이상 맞추지 못하면 예선에서 탈락하게 된다. 예선이 끝나면 1등에서 5등까지 비교권을 가진 사람들이 본선을 벌이게 된다.

본선에는 보통 과녁 거리 보다 가깝게 놓는다. 높이 6척 넓이 4척 정도로 작은 과녁을 가깝게 놓게 되면 거리 감각이 혼란스럽게 되고 맞추기가 어려워기지 때문이다.

1등이 결정되면 2등 비교를 쏘게 되고 2등이 결정되면 3등 비교를 쏘게 되는 식으로 5등 비교까지 가게 된다. 이때 1등을 한 자가 2등, 3등, 4등, 5등을 모조리 석권할 수도 있다. 그러나 각 등의 비교전에서 단둘이 최후 결전을 하게 될 경우에는 구사(舊射)가 신사(新射)에게 상을 양보하는 것이 미덕이었다.

일부지방에서 규모가 작은 활 백일장일 경우 씨름처럼 1등 하나만 상품을 걸고 쏘게 되는 방식이었다. 이 경우에는 예선 신청금을 내고 1 : 1로 붙어 올라가 최후까지 이긴자가 우승을 하는 방식으로 마치 씨름처럼 진행이 됐다.


「활 백일장」의 경기운영과 진행방법
1. 예선 하루 동안에는 3중 이상자에게만 비교권을 준다. 즉 5중을 하면 1등 비교권 4중을 하면 2등 비교권 3중을 하면 3등 비교권을 주고 4등, 5등은 없앤다. 따라서 예선 신청을 하고 2중, 1중을 한 자는 비교에 진출하지 못하고 탈락한다.

2. 참가자의 약 30%를 각궁 · 죽시 사용자로 추산하면 7 ~ 8백명 중 각궁 · 죽시는 240명 미만이고 개량궁은 560명 미만으로 봐야 한다. 이 인원을 하루(7시~19시)에 예선을 치르자면 솔포 넷은 쳐야 한다(솔포 넷으로 각궁 죽시부와 개량궁부가 효과적으로 나누어 진행해야 한다).

3. 여무사부는 각궁?죽시부나 개량궁부의 비교권을 얻지 못한 여무사들이 최종일인 비교전 날에 참가하여 신청금을 내고 솔포과녁 한순을 쏘아 3중 이상자만 추려 비교를 쏜다.

4. 각부의 비교전은 1등 비교전을 먼저 하고 2등, 3등 비교를 차례로 하되 진행속도를 높이기 위해 등별로 과녁을 나누어 병행할 수도 있다.

5. 창악(지화자)를 붙일 경우 각궁?죽시부의 비교전에 한해서 고려할 수 있다.

6. 각궁 · 죽시부, 개량궁부는 1?2?3 각 등별로 8강을 뽑고 그 8강이 1대로 평성 한 순을 쏘아 등참자를 선발하고 나머지 7명은 모두 장려상으로 돌린다. 여무사부는 비교에서 8강을 선발하고 8강이 함께 한 순을 쏘아 1등을 선발하고 나머지 7인은 장려상 대상이 된다.

7. 각궁 · 죽시부와 개량궁부에서 등참자는 그 아랫급의 8강전에 참가할 수 없다. 이는 한 사람이 1?2?3등을 모두 독차지 하는 것을 막아 등참의 기회를 넓히기 위함이다.

8. 여무사부를 제외한 모든 비교전은 주체측이 임의의 거리에 설치하는 지계관(6척×4척)을 쓴다.

9. 과녁별로 색깔이 다른 거기(90cm×6미터) 1명을 배치하고 맞은 살만 거기를 들게하고 진행석과 과녁의 심판석 간에는 인터폰을 설치하여 연락을 취한다.

10. 비교전에 출전하여 사대에 서게 되는 자는 주최측이 제공하는 한복하림을 해야 하고 여무사의 경우는 각기 자기 한복 차림을 해야 한다.

11. 기타 미비한 사항이 발생했을 때는 「활 백일장」의 원형 정신에 따라 주최측이 판단 처리한다.



원천자료
조선일보, 동아일보

참고자료
『황학정 백년사』, 황학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