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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태조

태조 (왕) : 신궁 - 命中, 百發百中, 遠射, 騎射, 狩獵射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 그의 활솜씨에 대해서 설명한다는 것 자체가 그의 신기에 가까운 재주를 모독하는 것은 아닌가 여겨진다. 활쏘기의 모든 분야에서 탁월한 능력을 보여주는 태조는 신이한 능력뿐만 아니라 외모와 성격에 풍기는 분위기에서도 명궁임을 알 수 있다. 우선 남아의 기개와 포부 그리고 대장부의 기질은 조선을 건국할 만한 자질을 충분히 드러내며, 수려한 이목구비와 건장하고 다부진 체격은 신묘한 궁력을 발휘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특히 기사 시 말과 하나가 되어 백발백중의 활쏘기를 보여주는 그의 모습에서는 전율까지 느끼게 된다. 출중한 외모는 주목받기에 충분하며, 그와 버금가는 의형제 이두란과도 돈독한 우정을 보이는 진정한 남성다운 인물이다.

원천자료

『태조실록』총서71
○ 辛禑 十一年乙丑, 太祖 從 禑 전于 海州 。 矢人進新矢, 太祖 令亂揷紙丸於積稻之上, 射之皆中, 謂左右曰: “今日射獸, 當盡中脊。” 太祖 平時射獸, 必中右안翅骨, 是日射鹿四十, 皆正中其脊, 人服其神。 世人射獸, 獸在左則射獸之右, 獸自右, 橫走出左則射獸之左。 太祖 逐獸, 獸雖自右而左, 不卽射之, 必旋折其馬而鞭之, 使獸在左直走, 乃射之, 亦必中右안翅骨。 時人皆曰: “ 李公 射百獸, 必百中其右。” 禑 嘗於行宮, 命諸武臣射, 的用黃紙爲質, 大如椀, 以銀爲小的, 棲其中, 徑재二寸, 置五十步許。 太祖 射之, 終不出銀的, 禑 樂觀之, 繼之以燭, 賜 太祖 良馬三匹。 李豆蘭 言於 太祖 曰: “奇才, 不可多示人。”

원문번역

신우(辛禑) 11년(1384) 을축, 태조가 우왕을 따라 해주(海州)에서 사냥하였다. 화살 만든 장인(匠人)이 새 화살[新矢]을 바치니, 태조가 그로 하여금 지환(紙丸)을 쌓아 놓은 벼[稻] 위에 질서 없이 꽂아 놓게 하고 이를 쏘아 모두 맞히고는, 좌우(左右)의 사람들에게 이르기를, “오늘 짐승을 쏘면 마땅히 모두 등골을 맞힐 것이다.” 하였다. 태조가 평상시에는 짐승을 쏘면 반드시 오른쪽 안시골(안翅骨)을 맞혔었는데, 이날은 사슴 40마리를 쏘았는데 모두 그 등골을 바로 맞히니, 사람들이 그 신묘한 기술을 탄복하였다. 세상 사람들은 짐승을 쏠 적에, 짐승의 왼쪽에 있으면 짐승의 오른쪽을 쏘아서, 짐승이 오른쪽으로부터 가로질러 달아나서 왼쪽으로 나오면, 짐승의 왼쪽을 쏘는데, 태조는 짐승을 쫓아서 짐승이 비록 오른쪽으로부터 왼쪽으로 나오더라도 즉시 쏘지 아니하고, 반드시 그의 말을 돌려 꺾어서 채찍질하여 짐승으로 하여금 왼쪽에서 바로 달아나게 하고서, 그제야 이를 쏘는데 또한 반드시 오른쪽 안시골(안翅骨)을 맞히니, 이때 사람들이 모두 말하기를, “이공(李公)은 온갖 짐승을 쏘되, 반드시 쏠 때마다 그 오른쪽을 맞힌다.” 하였다. 우왕이 일찍이 행궁(行宮)에서 여러 무신(武臣)에게 명하여 활을 쏘게 하는데, 과녁[的]은 황색 종이로써 정곡(正鵠)을 만들어 크기가 주발만 하게 하고, 은(銀)으로써 작은 과녁[小的]을 만들어 그 복판에 붙였는데, 직경(直徑)이 겨우 2치[寸] 정도이었다. 50보(步) 밖에 설치했는데, 태조는 이를 쏘았으나 마침내 은 과녁 밖으로 나가지 아니하였다. 우왕은 즐거이 구경하기를 촛불을 밝힐 때까지 계속하였으며, 태조에게 좋은 말 3필을 내려 주었다. 이두란(李豆蘭)이 태조에게 말하였다. “세상에 드문 재주는 사람들에게 많이 보여서는 안 됩니다.”

시나리오

조선 태조 이성계

1. 산 속
소년 이성계가 활쏘기를 연습하고 잇다.
이성계가 쏜 화살이 날아가 배나무의 배를 맞힌다.


2. 들판
소년 이성계가 아버지 이자춘, 형 원계와 함께 말 달리며 활쏘기를 훈련하고 있다.


3. 평야
소년 이성계가 나무 공을 들고 있다.
나무 공을 공중으로 던지더니 활 시위를 당겨 공을 쏜다. 화살이 날아가는 공에 꽂힌다.


4. 산 기슭 + 과녁
소년 이성계가 말을 타고 과녁을 향해 화살을 쏘더니 질풍같이 말을 달린다.
과녁에 화살이 꽂히려는 순간, 말이 달려 지나친다.


내레이션 : 이성계는 고려 충숙왕 4년, 서기 1335년에 함경도 영흥지방에서 태어났다. 원이 설치한 쌍성총관부의 벼슬을 하고 있던 이자춘의 둘째 아들로, 어려서부터 총명 하고 담대하여 활쏘기, 칼쓰기 등 무예에 두루 뛰어났다. 특히 궁술에 뛰어나, 어린 시절부터 신궁으로 칭송을 받았다.

최윤덕

최윤덕 (무인) : 궁으로 국토를 확장하다 - 狩獵射(虎)

최윤덕은 4군6진을 개척한 무인으로서, 힘이 남달라서 강궁을 당기고 단단한 화살을 쏘며 사냥에서 늘 범을 잡았던 명궁이다. 용감하며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는 그의 성미는 마을을 혼란에 빠뜨리는 범을 잡아서 우환을 없애어 백성들의 존경을 받기에 마땅하다. 호랑이도 놀랄만한 거대한 체구와 우락부락한 얼굴과는 달리 차분하고 신중하며 부드러운 괴력의 선사자이다. 사납게 생긴 얼굴, 거구의 모습과는 대조적으로 섬세하며 신중한 선사자이다.

원천자료

『해동잡록』1, 본조 1
○ 崔潤德 通川人。字白修。襄莊公雲海之子。以武藝進。爲世名將。我英廟朝征野人。全師以還。右議政。謚貞烈。配享廟庭。
嘗判安州牧使。公務之暇。治廳後隙地。種瓜手自鋤之。村民不知爲公。問曰。相公今在某所。公태曰。在某所。入而改服。出廳決。 劇談 判安州時。有一村婦。泣曰。虎殺妾夫。曰。吾爲汝報仇。乃跡虎手射殺之。剖其腹取其骨肉支節。과以衣服。備棺槨埋之。其婦感泣不已 同上 我太祖幸海州講武。潤德扈駕而從。一日上欲徑渡巨川。潤德啓曰。臣請先試水之淺深。乃乘馬直入水中。控비縮頸。佯側其身。水及鞍천。卽還出啓曰。水深不可渡也。何乃欲涉此水耶。殆非道而不徑舟而不浮之意也。上嘉納而止。 行狀 崔貞烈出將入相。位至台司。嘗於居第南鑿雙池。種藕其中。又植花木嘉卉於其旁。號曰雙池。每於公退之暇。引耆老置酒談笑於其間。蕭然有山野之趣。 同上 崔貞烈率征婆猪江野人。將渡江直衝賊藪。有獐四隻突入營中。軍士射殺之。人頗怪之。公曰。吾聞武王伐紂。師渡孟津。白魚入于王舟。人曰。白商色也。今入于王舟。乃商人歸周之徵也。獐乃野獸也。今而自來。實野人見虜之兆也。因進兵搗其窟穴。勢如破竹。遂大捷而還。 同上 嘗鎭安州。種柳數萬株于州治之南。可以藏州基而한水災也。公歸之後。人思其德。愛其柳。遂爲鄕約。敢有伐其條者。禁罰之。其約至於數世而不替。人以甘棠比之。 同上 嘗鎭鏡城。胡人等畏服相戒曰。勇將在鎭之時。不可近塞。待其還朝。當復舊居。遂相率而遠去。 同上承命征野人。進兵婆猪江。會天大雨。人馬雨濕飢困。公仰天大號曰。惟玆野人。殺害我生靈。今天恕彼有罪。困我無辜。嗚呼皇天寧不我矜。言訖沾襟。須臾雨止。令諸將分道而進。遂大破之。 同上 自少英偉不群。父襄莊公以事流北靑。公時年二十一。棄官而歸。親負石作돌。採薪燎之。娛侍之餘。日漁獵以資甘旨。夜則於門外假寐。承候安否。終始不怠。 同上 嘗守泰安郡。所佩矢服粧鐵壞。工以官鐵補之。公聞之。卽命工還解所補鐵。其淸介類如此。 同上 自早歲久在軍旅之中。逼冒寒暑。因致勞傷。遂成痢疾而卒。 同上 崔貞烈生而母卒。養于同隣楊水尺家。稍長。려力絶人。隨水尺出獵山中。有大蟲。瞥出林莽。公一箭斃之。來報水尺。往視之。乃大虎也。 筆苑

원문번역

○ 본관은 통천(通川)으로 자는 백수(白修)이다. 양장공(襄莊公)운해(雲海)의 아들로서 무예로 진출하여 세상에 명장이 되었다. 우리 세종 때에 야인(野人)을 정벌하고 전 군사가 아무 탈 없이 돌아왔다. 우의정이 되었다. 시호는 정렬(貞烈)이며, 종묘(宗廟)에 배향(配享)되었다.
일찍이 안주목사(安州牧使)로 있을 때 공무의 여가에 청사 뒤에 있는 조그마한 땅을 갈아 오이를 손수 심어 밭을 매는데, 촌 백성들이 공(公)임을 알지 못하고 공에게 묻기를, “목사님은 지금 어느 곳에 계신가?” 하니, 공이 속여서 말하기를, “모처에 있다.” 하고, 들어가 옷을 갈아입고 청(廳)에 나와서 처결하였다. 《청파극담》
안주목사(安州牧使)로 있을 때 한 촌여자가 울며 말하기를, “호랑이가 나의 남편을 죽였습니다.” 하였다. 공이 말하기를, “내가 너를 위하여 원수를 갚아 주리라.” 하고, 곧 호랑이를 추적하여 손수 쏘아 죽여 그 배를 갈라서 그 남편의 골육과 팔다리를 꺼내서 의복으로 싸 관곽을 갖추어 묻어 주었더니 그 아낙네는 감격하여 그칠 줄 모르고 울었다. 동상
우리 태조(太祖)가 해주(海州)에 거둥하여 무술을 강습하니, 윤덕(潤德)이 어가(御駕)를 모시고 따랐다. 하루는 임금이 큰 냇물을 곧바로 건너려 하니, 윤덕이 아뢰기를, “신이 먼저 물의 깊고 얕은 것을 시험하겠나이다.” 하고, 말을 타고 곧장 물 가운데로 들어가서 고삐를 당기고 목을 움추려 거짓으로 그 몸을 옆으로 하니 물은 말의 안장에 이르렀다. 곧 돌아나와 아뢰기를, “물이 깊어 건널 수 없사온데, 어찌 꼭 이 물을 건너고자 합니까?” 하였다. 이는 길로 가고 지름길로 가지 않으며, 배를 타고 헤엄치지 않음을 은근히 간한 뜻이다. 임금이 그 말을 가상하게 여겨 건너지 않았다. 〈행장(行狀)〉
최정렬(崔貞烈 정렬은 최윤덕의 시호)은 나가면 장수요, 들어오면 재상으로 지위가 3공에 이르렀다. 일찍이 사는 집 남쪽에 한 쌍의 연못을 파 놓고 그 가운데 연(蓮)을 심고, 또 그 곁에다 꽃나무와 좋은 풀을 심고서 쌍지(雙池)라 불렀다. 매양 퇴청한 후 여가에 늙은 노인들을 불러다 술을 놓고 그 사이에서 담소하니, 시원히 산수를 즐기는 아취가 있었다. 동상
최정렬이 군사를 거느리고 파저강(婆猪江) 야인(野人)을 정벌할 때, 강을 건너 곧장 적의 소굴을 무찌르려는데 노루 네 마리가 뛰어들거늘 군사들이 이것을 쏘아 잡았다. 사람들이 퍽 괴이하게 생각하니 공(公)이 말하기를, “내 듣건대, 무왕(武王)이 주(紂)를 칠 적에 군사들이 맹진(孟津)을 건너는데 흰 고기가 왕이 탄 배에 들어오거늘 사람들이 말하기를, '흰 것은 상(商) 나라의 색깔이니, 지금 왕의 배에 흰 고기가 들어온 것은 곧 상 나라 사람이 주 나라에 귀순할 징조다.' 했으니, 노루는 곧 들짐승인데 지금 스스로 온 것은 실로 야인(野人)들이 포로가 되려는 징조다.” 하고, 곧 병사를 진격시켜 파죽지세로 그 소굴을 물리쳐 마침내 크게 이기고 돌아왔다. 동상
일찍이 안주(安州)를 지킬 적에 주청(州廳) 소재지의 남쪽에 버들 수만 그루를 심었으니 가히 고을의 터를 감싸 주고 수재를 막을 수 있었다. 공(公)이 돌아간 후에 그 덕을 생각하고 그 버들을 사랑하여 드디어 향약(鄕約)을 만들어 감히 그 가지를 베는 자를 금하고 벌 주었다. 그 향약이 두 세대가 되도록 변하지 않아서 사람들은 감당(甘棠)주D-001에 비유했다. 동상
일찍이 경성(鏡城)을 지킬 때에 되놈들이 두려워하고 심복하여 서로 경계하기를, “용장이 진(鎭)에 있을 때이니 국경에 가까이 하지 말고 마땅히 그가 조정으로 돌아감을 기다려 옛터를 복구하리라.” 하고, 서로 이끌고 멀리 떠났다. 동상
명을 받아 야인을 정벌하고자 병사를 파저강(婆猪江)에 진군시켰는데, 마침 큰 비를 만나 사람과 말이 비에 젖고 굶주림에 시달렸다. 이에 공(公)이 하늘을 우러러 크게 부르짖기를, “이 야인들이 우리의 생령(生靈)들을 죽였거늘 이제 하느님은 저것들의 죄를 용서하고 허물없는 우리를 곤경에 빠지게 하니, 아! 하느님은 어찌하여 우리를 가엾이 여기지 않으십니까?” 하였다. 말을 그치자 눈물이 옷깃을 적셨다. 조금 후에 비가 그쳤다. 제장(諸將)으로 하여금 길을 나누어 진격케 하여 드디어 적을 크게 격파하였다. 동상
어려서부터 영특하고 위대하기가 보통이 아니었다. 아버지 양장공(襄莊公)이 어떤 일로 북청(北靑)에 귀양 갔는데, 그때 공(公)의 나이 21세였다. 관직을 버리고 돌아가 친히 돌을 가져다 온돌을 놓고 나무를 해다 불을 때며 즐겁게 모시는 여가를 틈타 고기 잡고 사냥하여 반찬을 만들고, 밤이면 문밖에서 선잠을 자며 그 안부 돌보기를 처음부터 끝까지 게을리하지 않았다. 동상
일찍이 태안군수(泰安郡守)가 되어 차고 있는 시복(矢服 무사가 입는 군복)에 장식한 쇠가 헐었는데 공장(工匠)이 관용(官用)의 쇠로써 이것을 보수하여 주었다. 공은 이 말을 듣고 곧 공장을 명하여 도로 보수한 쇠를 끊어내게 하였다. 그의 청렴 개결한 점은 이와 같았다. 동상
젊어서부터 오랫동안 군려(軍旅)의 생활을 하여서, 추위와 더위를 무릅썼기에 몸살을 일으키고 마침내 이질(痢疾)이 되어 죽었다. 동상
최정렬(崔貞烈)은 태어나자 곧 어머니가 죽어서 이웃에 있는 양수척(楊水尺)의 집에서 양육되었다. 조금 자라자 힘이 성인을 초월하였다. 양수척을 따라 산중에 사냥을 갔는데 큰 짐승이 숲속으로부터 나오는 것을 보고, 공은 한 살로 이것을 죽이고 와서 양수척에게 알렸다. 양수척이 가 보니, 곧 큰 호랑이였다. 《필원잡기(筆苑雜記)》

시나리오

최윤덕

1. 산 기슭
소년 최윤덕(10세)이 소들에게 풀을 먹이면서, 산 속 배나무를 향해 화살을 날리며 활쏘기 를 연습하고 있다.
이때, 갑자기 산에서 호랑이가 나타나 소를 잡아먹으려고 덤벼든다.
소년 최윤덕, 재빨리 화살을 쏜다. 화살, 호랑이의 목에 명중한다. 호랑이 포효하며 소년에 게 덤벼들려고 한다. 그러나 소년, 다시 화살을 쏜다. 결국 호랑이 쿵 넘어진다.


2. 산 기슭--시간 경과
양수척(백정)이 호랑이 포효 소리를 듣고 달려온다.


양수척 : 윤덕 도련님! 도련님! 어디 다친 덴 없소?
소년 최윤덕 : 괜찮아요. 호랑이가 소한테 덤벼들길래 혼내줬어요.
양수척 : (뛰어와서) 맙소사! 아니, 이 집채만한 호랑이를.....도련님이 쏘아 죽였단 말입니까?
소년 : 네. 마침 내가 활 쏘기를 연습하고 있었거든요.
양수척 : 참......왕대밭에 왕대 난다더니.....장군 아버님의 피를 이어받아서 역시 남다르구만 요.


3. 마을 어른의 집
사람들, 호랑이를 둘러싸고 한바탕 놀란다.


노인1 : 아니, 이 큰 호랑일 어린애가 잡다니.....정말 믿어지지가 않는구려.
노인2 : 윤덕인 정녕 보통 아이가 아니구만. 아무래도 이 아일 제 아버지한테 보내는 게 좋 겠어. 이렇게 출중한 아이는 훌륭하게 돌봐야 하는데, 우리 마을에선 이 아이 재능 을 제대로 키워줄 사람도 없으니 말이야.
양수척 : 저도 걱정이 태산입니다요. 도련님의 어머님이 돌아가시자, 장군님께서 이웃이라고 저한테 도련님을 맡기고 멀리 떠나셨는데, 이렇게 비범한 도련님을 감히 맡아 모실 수가 없구만요.
노인1 : 그렇지. 이 아일 제 아버지한테 보내는 게 좋겠어.

이석정

이석정 (무인) : 활의 달인 - 百發百中, 命中, 暗中射, 遠射

이석정은 배후문과 함께 명궁으로 유명하며, 활쏘기를 늘 즐겼던 무인이다. 먼 거리의 유동 표적도 백발백중의 능력을 보여주는 선사자 중의 선사자이며, 밤에도 빛을 잃지 않는 그의 활 실력만큼이나 눈에 띄는 그 의 외모는 뭇 여성들의 가슴을 설레게 한다. 그가 메고 다니는 미끈한 활과 화살처럼 하얀 피부에 짙은 눈썹, 붉은 입술, 오뚝한 코 가지런한 치아 그리고 온몸에 베어 있는 넉넉함과 부드러움 속에서는 신묘의 사예가 나올 수밖에 없다.

원천자료

『성종실록』15년(1484), 12월 21일
故不廢其業, 不失其祿, 每於馬上挾毬而行, 遇平地則擊之。 諺傳李石丁 射侯、 具文信 擊毬者, 是也。

원문번역

그 직무를 폐하지 않았고 따라서 녹봉도 잃지 않았으므로, 매양 공을 가지고 말을 타고 다니다가 평지를 만나면 공을 치고는 하는데, 속담에, ‘이석정(李石丁)은 활을 쏘고 구문신(具文信)은 공을 친다.’는 것이 이것입니다.

시나리오

이석정

1. 산 속 (낮)
이석정이 친구와 말을 타고 달리면서 사냥을 하고 있다.
갑자기 멧돼지가 튀어나온다. 친구, 화살을 쏘지만 빗나가고, 멧돼지, 친구의 말을 덮친다.
친구 : (말에서 굴러 떨어지며) 으악!

뒤따라 달리던 이석정, 재빨리 화살을 쏜다. 날아가 멧돼지 목과 가슴에 연달아 꽂히는 화살.
멧돼지, 포효하다 뻗는다.
이석정, 친구를 일으킨다.

이석정 : 괜찮나? 다치진 않았어?
친구 : 휴! 고맙네. 자네 아니었다면 꼼짝없이.....
이석정 : 멧돼지가 사람을 잘못보고 덤빈 걸세.
친구 : 그러게 말야. 천하의 명궁을 몰라보고 덤벼들었으니, 저렇게 한 방에 뻗었지.

김세적

김세적 (무인) : 중국을 놀라게 한 조선의 명궁 - 百發百中, 命中, 狩獵射, 習射

김세적은 성종 5년(1474) 무과에 장원급제하여 성종의 눈에 들었으며, 선위부사가 되어 명나라에 갔을 때 각국 사신들이 모인 자리에서 연발연중의 활솜씨를 보여서 각국의 사신들을 크게 놀라게 한 무인이다. 그의 백발백중의 사예는 부지런한 습사에서 온 것이며 몸집은 작지만 다부진 체격과 뚜렷한 이목구비는 그의 활솜씨를 보고 경탄하는 사람들에게 조선의 명궁 이미지를 각인시키기에 충분하다. 특히 명중 후 내지르는 탄성과 강하게 쥔 주먹은 무장의 강인함을 드러낸다.

원천자료

『종종실록』6년(1511) 12월 6일
○ 承旨 尹熙平 曰: “今之武士, 步射者多, 而騎射者全無, 武才皆馬上所能, 而止習步射可乎? 成宗 御 慕華館 外門打圍, 使武士射狐, 金世勤 、 李季仝 輩, 皆樂爲之。 季仝 射虎, 墜馬傷臂。 今時則習俗, 不習騎馬, 誠非細慮。 請令該曹, 試馬上之才。 且將帥於戰(陳)〔陣〕, 不可不隷。 《歷代兵要》 , 雖粗知之, 我朝戰伐等事, 專不知之。 臣意 《東國兵鑑》 只二冊。 然其中不載 倭 變, 今可補遺頒行, 當武士講書時, 병講。”

원문번역

승지 윤희평(尹希平)은 아뢰기를, “오늘의 무사는, 보사(步射)3851) 하는 자는 많지만, 기사(騎射)3852) 하는 자는 전혀 없습니다. 무재(武才)란 모두 말 위에서 능해야 되는 것인데 보사만 익히니 되겠습니까? 성종께서 모화관(募華館) 바깥 문에 거둥하시어 타위(打圍)3853) 하실 적에, 무사들을 시켜 여우를 쏘게 하니, 김세적(金世勣)·이계동(李季仝) 등이 모두 즐겨서 하였으며, 이계동은 범을 쏘다가 말에서 떨어져 팔을 다쳤습니다. 지금 습속(習俗)은 말타기를 익히지 않으니, 진실로 작은 걱정이 아닙니다. 해조(該曹)로 하여금 마상재(馬上才)3854) 를 시험하도록 하소서. 또 장수는 전진(戰陣)을 익히지 않을 수 없는데, 《역대병요(歷代兵要)》는 대략 알지만 우리 나라의 전벌(戰伐)에 대한 일은 전혀 알지 못하니, 신의 생각으로는 《동국병감(東國兵鑑)》도 단 2책으로, 그 속에는 왜변(倭變)을 싣지 않았으니, 이제 이것을 보유(補遺)하여 반포해서 무사 강서(武士講書) 때에 모두 강하도록 함이 마땅합니다.” 하였다.

시나리오

김세적

1. 무과 시험장
김세적이 무과 시험을 보고 있다.
활을 쏘아 백발백중의 솜씨를 보인다.
명중하자 김세적, 주먹을 불끈 쥐고 탄성을 지른다.
성종도 신하들을 거느리고 보면서 감탄, 고개를 끄덕인다.


2. 모화관
성종, 무과 급제한 사람들에게 상을 내리고 있다.


성종 : 오늘 무과를 시험보아 출중한 무예 실력을 보인 자들 28인을 뽑았소. 이중에 백발백 중의 활솜씨를 선보인 김세적이 장원급제를 하였으니, 짐 앞에 나오시오.
김세적 : (나아가 무릎꿇고 절한다) 소인이 김세적이옵니다.
성종 : 공의 솜씨는 참으로 놀랍소. 일찍이 우리나라를 창업하신 태조 대왕마마께오서 활솜 씨가 뛰어나서 신궁이라 칭함을 받으셨는데, 공의 솜씨도 매우 뛰어나 내 마음이 흡 족하오. 북방에 야인들이 창궐하고 있으니, 공같이 무예가 뛰어난 장수들이 변방을 잘 방어해주길 바라오.
김세적 : 황공하옵나이다, 전하!

황진

황진 (무인) : 일본 통신사 - 百發百中, 命中, 戰射

황진은 위엄 있고 기개와 절의를 숭상하였으며, 키가 컸고 수염이 아름다워서 모습이 아주 듬직한 무인이다. 마른 체구이기는 하지만 힘이 뛰어나고 걸음이 빨라서 재빠른 것이 마치 나는 것과 같았다. 작은 과녁과 새처럼 움직이는 표적도 여지없이 명중시켜 구경꾼들이 탄복할 정도의 활쏘기 실력을 갖고 있다. 특히 전시에 탄환을 맞고도 그 고통을 참고 활쏘기를 멈추지 않으니 그의 참을성은 형언할 길이 없다. 하늘에서 신선이 내려온 듯한 착각이 들게 하는 그의 언행과 활솜씨는 일본인들을 감동시키기에 부족함이 없다.

원천자료

『선조수정실록』26년(1593) 6월 1일
○ 黃進 故相 喜 五代孫。 勇健善射, 嚴重忠信, 氣節過人。 從通信使入 日本 , 見賊情必動, 捐囊買寶劒一雙, 歸曰: “不久賊來, 當用此劒。” 爲 同福 縣監, 每衙罷, 輒환甲馳馬, 或距躍曲踊以習勇。 龍仁 之敗, 進 將別部, 獨全軍以還, 湖峙 之捷, 功爲第一。 初至 晋州 , 欲出爲外援, 金千鎰 特留之。 或以爲: “ 忠淸 兵使非干守 晋 , 戰于外可也。” 進 曰: “吾已與倡義公約, 不可負也。” 自 倭 亂以後, 凡諸將之行軍有法, 身先士卒, 有古名將風者, 皆推 進 爲首, 而不得究其才而死, 朝野莫不追惜。 贈右찬成。

원문번역

○ 황진(黃進)은 고상(故相) 황희(黃喜)의 5대손으로서 용맹 건장하고 활을 잘 쏘았으며 엄중하고 충신하여 기절(氣節)이 남보다 뛰어났다. 통신사(通信使)를 따라 일본에 들어갔을 때 적의 상황이 반드시 전쟁을 일으키리라는 것을 살피고는 주머니 돈을 털어 보검(寶劍) 한 쌍을 사가지고 돌아와 말하기를, “나는 이미 창의사(倡義使)와 더불어 공약(公約)을 하였으니 저버릴 수 없다.” 하였다. 왜란이 있는 이후로 모든 장수 가운데 행군에 법도가 있고 사졸에 솔선하여 옛날 명장(名將)의 풍도가 있는 자로는 모두가 황진을 추중하여 으뜸으로 꼽았는데, 재주를 다 발휘하지 못하고 죽었으므로 조야(朝野)에서 애석하게 여기지 않는 이가 없었다. 우찬성(右찬成)에 추증되었다.

시나리오

황진

1. 들판
하늘의 새를 보더니, 친구가 화살을 날린다. 새, 떨어지는 듯 하더니 다시 날아간다.
황진이 재빨리 활 시위를 당긴다.
화살이 날아가더니 새가 떨어진다.
친구, 감탄해서 박수를 친다.


2. 산 속
황진이 친구들과 말을 타고 사냥을 하고 있다.
노루가 도망가는 것을 보고 화살을 날린다.
노루, 명중 당해 쓰러진다.


친구 : 자네 활솜씨는 정말 대단하이! 나는 새나, 재빠르게 달리는 짐승이나 백발백중이니 말일세. 자네 활솜씨를 능가할 사람이 없을 거야. 대체 비결이 뭔가?
황진 : 비결은 무슨.
친구 : 그러지 말고 말해 보게. 무슨 비법이 있지?
황진 : 비결이라......글쎄.....그저 꾸준한 연습 뿐일세. 나는 누워서 잠이 들 때에도 천장을 쳐 다보면, 천장이 꼭 과녁처럼 보인다네. 마음의 눈으로 천장의 작은 과녁을 보면서 화 살을 쏘아올리곤 한다네.


3. 무과 시험
황진이 칼쓰기, 활쏘기 등 무과 시험을 치르고 있다.

이순신

이순신 (무인) : 명장 - 習射, 百發百中, 陸戰射

이순신은 선조대의 사람으로 22살에 무과에 급제하여 무예를 연마할 때도 동무들이 알아 모셔야 할 정도로 카리스마가 있었던 명장이다. 그러나 수많은 사람들을 휘어잡을 수 있었던 그의 능력은 하루 아침에 만들어진 것이 아니며, 평시에도 늘 무예를 연마하며 심신수련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여러 장수와 병사들을 호령하는 그의 모습에서 명궁의 이미지는 쉽게 찾아낼 수 있는데, 건장한 체구와 장신, 잘 다듬어진 몸매 그리고 아래턱에 난 수염 등을 소유한 무장의 손에서 날아간 화살이 적을 쓰러뜨릴 때는 온몸으로 전율을 느끼게까지 한다.

원천자료

『선조실록』25년(1592) 6월 21일
○ 慶尙 右水使 元均 , 與 全羅 左水使 李舜臣 , 約會 閑山島 。 時 舜臣 以戰船八十소, 乃於是年五月初六日, 進至 玉浦 前洋, 有賊船三十餘소, 四面圍帳, 竪立長竿, 亂懸紅白旗, 餘賊登陸, 焚怯閭家。 賊見舟師, 促櫓出陣, 與我軍相遇於洋中, 我軍焚賊船二十六소。 約以明日更擧大戰, 聞大駕西幸, 諸將不到, 仍爲相聚痛哭, 乃於初九日, 各還本鎭。 二十九日, 舜臣 、 元均 再會於 露梁 , 遇賊一船焚之, 俄見海邊一山, 有賊百餘長蛇而陣, 其下有戰船十二소, 緣崖列泊。 時早潮已退水淺, 大舟不得進。 舜臣 曰: “我佯退, 賊必乘船追我, 引出洋中, 巨艦合擊, 蔑不勝矣。” 回船未一里, 賊果乘船追之。 我軍令龜船突進, 先放大小銃筒, 盡燒其船, 餘賊遠望頓足叫呼。 方戰鐵丸中舜臣左肩。 初二日到 唐浦 , 賊船二十소, 列泊江岸, 中有一大船, 上設層樓, 外垂紅羅帳, 賊酋着金冠錦衣, 手執金扇, 指揮諸賊。 中衛將 權俊 , 回船促櫓, 直衝其下, 撞破其船, 仰射賊酋, 應弦而倒。 初四日進至 唐浦 前洋, 全羅 右水使 李億祺 領戰船二十五소來會, 諸將無不增氣。

원문번역

○ 경상 우수사(慶尙右水使) 원균(元均)은 전라 좌수사(全羅左水使) 이순신(李舜臣)과 약속하여 한산도(閑山島)에서 회합하였다. 이때에 이순신이 전선(戰船) 80척을 거느리고서 마침내 이해 5월 6일에 옥포(玉浦) 앞바다로 나아가니, 적선(賊船) 30여 척이 사면에 휘장을 두르고 길다란 장대를 세워 홍기(紅旗)·백기(白旗)들을 현란하게 달았으며, 나머지 왜적들은 육지로 올라가 마을 집들을 불사르고 겁탈하였다. 왜적들은 수군(水軍)을 보고는 노(櫓)를 빨리 저어 진지(陣地)를 나와 아군(我軍)과 바다 가운데서 만났는데 아군이 적선 26척을 불살라 버렸다. 이튿날 다시 대전(大戰)을 전개하기로 약속하였는데, 대가(大駕)가 서쪽으로 행행하였다는 소식을 듣고는 여러 장수들이 도착하지 않아, 그대로 서로 모여 통곡하고는 마침내 9일에 제각기 본진(本鎭)으로 돌아갔다. 29일에 순신과 균이 재차 노량(露梁)에서 회합하여 적선 1척을 만나 불살라버렸는데, 조금 후에 보니 바닷가 한 산에 왜적 1백여 명이 장사진(長蛇陣)을 치고 있고 그 아래로는 전선 12척이 벼랑을 따라 죽 정박하고 있었다. 때마침 일찍 들어온 조수(潮水)가 벌써 빠져나가 바닷물이 얕아져서 큰 배는 나아갈 수 없었다. 순신이, “우리가 거짓 퇴각하면 왜적들이 반드시 배를 타고 우리를 추격할 것이니 그들을 바다 가운데로 유인하여 큰 군함(軍艦)으로 합동하여 공격하면 승전(勝戰)하지 못할 리가 없다.” 하고서, 배를 돌렸다. 1리를 가기도 전에 왜적들이 과연 배를 타고서 추격해 왔다. 아군은 거북선으로 돌진하여 먼저 크고 작은 총통(銃筒)들을 쏘아대어 왜적의 배를 모조리 불살라버리니, 나머지 왜적들은 멀리서 바라보고 발을 구르며 울부짖었다. 한창 전투할 적에 철환(鐵丸)이 순신의 왼쪽 어깨를 명중하였다. 2일에 당포(唐浦)에 도착하니 적선 20척이 강 연안에 죽 정박하였는데, 그 중에 큰배 한 척은 위에 층루(層樓)를 설치하고 밖에는 붉은 비단 휘장을 드리워놓고서, 적장(賊將)이 금관(金冠)에 비단옷을 입고 손에 금부채를 가지고서 모든 왜적들을 지휘하고 있었다. 중위장(中衛將) 권준(權俊)이 배를 돌려서 노를 재촉하여 바로 그 밑으로 돌진하여 그 배를 쳐부수고, 적장을 쳐다보고 활을 쏘니 시위를 놓자마자 적장이 거꾸러졌다. 4일에 당포(唐浦) 앞바다로 나아가자 전라 우수사(全羅右水使) 이억기(李億祺)가 전선 25척을 거느리고 와 회합하니 여러 장수들이 기운이 증가되지 않는 이가 없었다.

시나리오

이순신

1. 마을 공터
소년 이순신이 아이들과 함께 전쟁놀이를 하고 있다.


소년이순신 : (막대기 칼을 들고) 자, 나를 따르라!
아이들 : 와! (달려간다)
소년이순신: 우리, 두 패로 나누어서 칼 싸움하는 거다. 나중에 이기는 사람끼리 또 칼싸움 해서 마지막 최후의 승자를 가리는 거야. 자, 두 줄로 서서 시작!


아이들, 나무 칼을 들고 상대편과 칼싸움을 시작한다.
한참 후에 이순신과 체격이 큰 아이 둘이 팽팽하게 칼싸움을 한다. 아이들, 두 패로 갈려 서로 응원한다. 결국 소년 이순신이 승리한다.


아이들 : 와! 순신이가 이겼다! 이순신 대장! 대장 만세!


2. 산 기슭
소년 이순신이 아이들을 데리고 활쏘기 연습을 하고 있다.
다들 과녁을 향해 화살을 날린다.
이순신의 화살이 연달아 과녁에 명중하자, 아이들, 환성을 지른다.


아이들 : 와! 명중이다, 명중! 순신인 커서 장군이 될 거야. 칼싸움, 활쏘기, 하여간 못하는 게 없잖아.
아이1 : 말 타기는 어떻고? 순신인 어른이 타는 커다란 말도 무지 잘 탄다!
어른1 : (지나가다 멈춰 보고는) 아니, 저앤 이순신 아닌가? 저 어린 나이에 저리도 훌륭한 활솜씨를 갖고 있다니.....
어른2 : 정말 장군감이구만. 순신이 집안은 선비 집안인데, 장군감이 태어났어.

임성정

임성정 (종친) : 풍류의 활쏘기 - 習射, 樂而射

임성정은 종실이며 거문고를 잘 타서 당시 으뜸이었다. 야윈 얼굴과 길고 가느다란 손가락에서 장부다운 매력을 찾아내기는 어렵다. 그가 들고 다니는 거문고에 의해 가려진 그의 모습은 애처롭기까지 하다. 하지만 3년 동안의 습사 끝에 활과 화살을 갖고 사정에 올라 과녁을 바라보며 활시위를 당기는 그의 눈매는 날카로울 뿐만 아니라 거문고의 현을 다루듯 부드러우면서도 힘찬 몸짓 그리고 화살을 날릴 때까지 미동도 하지 않는 그의 모습은 근엄하기까지 하다. 작은 체구에서 나오는 궁력은 보는 이로 하여금 탄성을 자아내게 하기에 충분하다. 거문고의 현을 올라탄 듯 그의 언행은 격조가 있으며, 부드러우면서도 일정한 템포가 느껴진다.

원천자료

이 륙(李 陸), 『청파극담(靑坡劇談)』

宗室任城正有志於藝。鼓琴爲當時第一手。世宗嘗曰。任城之琴。自有別調。非他人所及也。其宅在祟禮門外。每日早朝踞大門閾。迭擧左右手以拊膝。如是者三年。人不喩其意。皆以爲狂。蓋學杖鼓也。旣而傍口弄指。晝夜不止。人有謁者。視而不見。如是者三年。蓋學吹笛也。爲人羸弱。短於弓馬。每歎曰。吾雖殘劣不能射疎及遠。然以中爲賢。且以觀德。亦可學而能也。每朝携弓矢上山。終日射帿者又三年。而竟以能射鳴。其志可尙也已。

원문번역

종실(宗室) 임성정(任城正)은 예능(藝能)에 뜻을 두어 거문고를 잘 타기로 당시에 으뜸이었다. 그래서 세종대왕은 일찍이 말하기를, “임성정의 거문고는 독특한 가락을 지니고 있어, 다른 사람이 미칠 바가 아니다.” 하였다. 그의 집이 숭례문 밖에 있었는데, 이른 아침마다 대문턱에 걸터앉아 두 손을 번갈아 들었다간 무릎을 치곤했는데, 이렇게 하길 3년이 지났지만 사람들은 그 영문을 모르고 모두 미치광이로 여겼는데, 장고치기를 연습했던 것이다. 얼마 뒤에는 입가에 손을 대고 손가락을 놀려 주야로 그칠 줄 몰랐고, 찾아오는 사람이 있으면 보고도 못 본 체하며 3년 동안을 그렇게 하였는데 피리 부는 법을 연습했던 것이다. 사람됨이 파리하고 약하여 활쏘기 말타기는 잘하질 못했다. 늘 탄식하면서, “내 비록 몸이 약하여 화살을 멀리 가게 할 수 없지만, 명중시키는 것을 위주로 할 수 있는 일이고, 또 활이란 인격을 보는 것이니 또한 배움직한 일이다.” 하고, 매일 아침이면 활과 화살을 가지고 산에 올라가 종일토록 과녁을 쏘기 또 3년을 하여, 마침내 활 잘 쏘기로 이름을 떨쳤다. 그 의지야말로 높이 평가할 만하다.

시나리오

1. 궁궐의 한 정자

세종대왕, 여러 대신들이 술상을 놓고 앉아 있다.
임성정이 거문고를 연주한다.
신묘한 가락과 솜씨에 왕, 감탄하며 고개를 끄덕인다.
연주가 끝나, 임성정이 왕을 향해 절을 한다.

세종 :공의 거문고는 독특한 가락을 지니고 있구려. 그 누구도 임성정의 거문고 연주 솜씨에 미칠 사람이 없을 것이오.
임성정 : 황공하옵니다.
세종 :공이 그토록 거문고를 잘 타는 연유는 무엇이오? 남보다 음악에 소질을 잘 타고 난것이오, 아니면 다른 연유가 있는 것이오?
임성정 : 소질이 특출한지 어떤지는 알 수 없삽고, 다만 소신이 거문고를 좋아하여 낮이나밤이나 거문고를 끼고 살며 늘 가락을 생각하기 때문인 줄로 아옵나이다.

2. 연못

거문고 소리가 울려나오는 가운데, 연못의 오리들, 백조들이 음악에 맞춰 춤추듯 움직인 다.

내레이션 : 조선 세종대왕 때 사람 임성정은 예능에 뜻을 두어 거문고를 잘 타기로 당시에 으뜸이었다.

정조

정조 (왕) : 궁으로 나라를 다스리다 - 命中

조선의 22대왕인 정조는 문무를 겸비한 국왕으로서, 인자하고 여유로우며 재치가 있는 명궁이다. 입가에 그윽한 미소를 띠며 활시위를 당길 때는 화살이 과녁에 빨려드는 듯한 착각을 일으키게 한다. 得中亭에서 연사례를 할 때는 날카로운 눈빛과 함께 카리스마를 발산하며, 야간의 활쏘기에서도 그의 실력은 유감없이 발휘되어 매화포를 터뜨리는 불꽃놀이 속에서 드러나는 그의 실루엣은 아름답기 그지없다. 호방한 성격과 여유, 유머러스한 그의 몸짓은 왕의 체통을 떨어뜨리기보다는 오히려 신하와 백성이 가깝게 다가갈 수 있도록 보여주는 배려라 하겠다.

원천자료

『정조실록』16(1792) 10월 30일
○ 射的于 春塘臺 , 十巡獲四十九矢, 又射小的一巡全獲。 下古風于閣臣, 仍與諸臣聯句。 敎曰: “월我聖祖, 天縱聖武, 射法通神。 芟刈참亂, 百戰而成大業。 長弓大羽, 尙在於 풍沛 舊宮。 凡我臣庶, 敬之若 漢 家之斬蛇劒焉, 의歟盛哉! 自是聖繼神承, 重熙累洽, 文治之休明, 比隆三代, 而未嘗不以射藝爲重。 其炳랑於國史野乘者姑無論, 즉宮中之所傳誦, 予小子之所覩記。 射法之妙, 有非凡人所可仰測, 然則射者, 實我朝家法也。 予性喜射, 且念此亦仰述之一端。 少時射, 累獲四十餘矢, 而中輟者十餘年, 時或觀射, 每數巡而止, 未嘗射長화也。 是月十二日乙亥, 始爲長화之事, 其日獲四十一矢, 五十分; 越五日, 十六獲, 三十九分; 越翌日, 十七獲, 三十二矢, 三十八分; 十八日, 獲四十一矢, 五十二分; 二十日, 獲四十一矢, 五十一分, 즉進箋諸臣陪射時也。 二十二日, 獲四十六矢, 五十八分; 二十六日, 獲四十七矢, 五十一分。 其日以筆一下古風於內閣, 謂曰: ‘此後四十九矢以前, 皆用此例。’ 二十八日, 又射獲四十一矢, 五十二分; 二十九日, 獲四十五矢, 五十七分; 又射小小片革, 單巡獲全巡; 又射小小片布, 單巡獲四矢, 古風如前日, 始長화凡九日所獲或多或少, 而要之不能較舊業而過之, 是日射柳葉箭。 小的十巡, 先四巡連獲全矢, 第五巡又連獲至四矢。 凡射者之擬四十九矢者, 自第四巡以왕, 四中則止, 而每存其一, 過第九巡, 령射一巡, 以當所存之數。 故予亦如其例, 餘矢留而不發, 巡旗偃而不竪。 第六巡如之, 第七巡亦如之, 第八巡、九巡皆如之。 旣射九巡, 령射一巡, 獲全矢以足之, 然後병竪五旗。 第十巡連獲至四矢, 謂左右曰: ‘不可以盡也。’ 乃發射左第五矢乃中之。 通十巡四十九, 矢七十二分, 第一巡五中八 第一巡五中八分, 第二巡五中七分, 第三巡五中七分, 第四巡五中七分, 第五巡五中六分, 第六巡五中八分, 第七巡五中八分, 第八巡五中七分, 第九巡五中七分, 第十巡四中七分。 又射小小片革單巡, 獲五矢, 七分, 又射柳葉箭一巡, 獲五矢六分。於是乎所獲之多, 始無以加焉, 而殆若有相之者然也。” 乃下古風於閣臣。 【 吳載純 、 徐有防 、 李秉模 、 朴祐源 、 徐龍輔 、 鄭東浚 、 尹行恁 、 徐榮輔 、 南公轍 、 金祖淳 。】 各半熟馬一, 檢書官以下錫賚有差。 又書下於古風紙面曰: 射藝즉我家法也, 不敢不留意, 而十餘年來, 久抛長화之射。 近日試臂力, 數次射長화, 而以十巡四十餘中, 書下古風, 卿等進箋稱謝, 適戱謂之曰: “中至四十九矢, 始可請古風。” 今日矢數, 準於設約, 玆以文房馬帖等種, 分與諸臣, 以示踐言之意, 而卿等旣進謝箋, 又當以古風答之, 兼欲勉之以正心立朝。 《詩》 曰: “無德不報。” 又曰: “時靡有爭, 王心載寧。” 즉此義也。 又款之曰: “是日燈下漫題。” 仍與諸臣聯句

원문번역

○ 춘당대에서 활쏘기를 하여 10순에 49발을 맞혔다. 또 작은 과녁은 1순 전부를 모두 맞히고 각신들에게 고풍(古風)을 내렸다. 그리고 뒤이어 여러 신료들과 연구시(聯句詩)를 지었다. 전교하기를, “우리 성조(聖祖)께서는 하늘이 내신 뛰어난 무예로 활 쏘시는 솜씨가 신비의 경지에 이르렀다. 그리하여 난을 일으키는 무리들을 모조리 제거하고 백 번 싸워 대업을 이룩하셨다. 그 활과 화살이 지금도 풍패(豊沛)의 옛 궁에 간직되어 있다. 우리 모든 신하와 백성들은 그것을 마치 한(漢)나라 고조가 뱀을 베어버린 검과 같이 소중하게 여기고 있는데 그 얼마나 훌륭한가. 그로부터 성스럽고 거룩한 임금이 대를 이어 오면서 선업을 더욱 빛내고 백성들에게 흡족한 덕을 베풀었기에 문치(文治)의 아름다움이 삼대(三代)에 비길 만하였다. 그러나 사예(射藝)를 소중히 여기지 않은 때는 없었던 것이다. 역사와 야승(野乘)에 분명하게 적혀 있는 것들은 그만두고라도 궁중에 전해 내려 오는 얘기들과 또는 내가 직접 보고 아는 것만 하더라도 활 쏘는 기법의 신묘함이 보통 사람으로서는 헤아릴 수 없는 바가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활 쏘는 것이 사실 우리 왕조의 가법(家法)인 것이다. 나도 천성이 활쏘기를 좋아하고 또 그것이 선업을 이어가는 한 가지 일이라는 생각도 들어 젊은 시절에는 활쏘기를 자주 했고 쏘았다 하면 40여 발을 맞힌 적이 자주 있었으나, 중간에 10여 년은 그만두기도 했었다. 그리고 그 10여 년 동안에도 때로 혹 활쏘기를 하긴 했어도 매번 몇 순(巡)에서 그쳤고 10순을 다 쏘아본 적은 없었다. 그러다가 이달 12일 을해에 처음으로 10순을 쏘아 그날은 41발을 맞혀 50점을 얻었고, 5일을 지나 16일에는 39점을 얻었고, 다음날 17일에는 32발을 맞혀 38점을 얻고, 18일에는 41발을 맞혀 52점을 얻고, 20일에는 41발을 맞혀 51점을 얻었는데 그 날이 바로 전(箋)을 지어 올린 제신들이 함께 모시고 쏘았던 날이다. 22일에는 46발을 맞혀 58점을 얻었고, 26일에는 47발을 맞혀 51점을 얻었는데 그 날은 내각에 고풍으로 붓 한자루를 내리고 이르기를 ‘이 뒤로는 49발 안쪽으로는 모두 이 격례(格例)를 쓰리라.’ 하였던 날이다. 28일에는 또 41발을 맞혀 52점을 얻었고, 29일에는 45발을 맞혀 57점을 얻었으며 또 작은 가죽 과녁을 쏘아 한 순에 모두를 명중시켰고 또 작은 베과녁도 쏘아 한 순에 4발를 맞히고는 전일과 같이 고풍을 내렸다. 처음 10순을 다 쏘기 시작한 지 모두 9일 동안에 많이 맞힌 때도 있었고 혹 적게 맞히기도 하였으나 요컨대 옛날의 성적과 비교하여 솜씨가 더 나아진 것은 없었다. 그 날은 또 유엽전(柳葉箭)으로 작은 과녁을 쏘아 10순에서 앞 4순은 연이어 전 수를 명중시켰고 제5순에서 또 연거푸 네 발까지 명중시켰다. 보통 활쏘기를 하는 자들이 49발을 맞힐 것을 목표로 할 경우 제4순부터 이후에는 네 발을 명중시키면 중지하고 매번 남은 그 한 발을 두었다가 제9순을 지나 따로 모아 둔 것으로 1순을 쏘아 모아 둔 바의 숫자를 가름하는 것이다. 그래서 나 역시 그 관례에 따라 남은 화살을 모아 두고 쏘지 않았으며 순기(巡旗)도 눕혀두고 세우지 않았었다. 제6순도 그리 하였고 제7순도 그리 했으며 제8순과 9순도 모두 그렇게 하였다. 9순을 다 쏘고서 따로 1순을 쏘아 모든 화살을 명중시켜 채우고 난 뒤에야 순기 다섯 개를 함께 세웠던 것이다. 제10순에 와서 연거푸 맞히다가 네 번째 화살을 쏘려면서 좌우에 이르기를 ‘다 쏘는 것은 옳지 않다.’ 하고서 왼쪽 제5시(矢)를 쏘아서 명중시켰다. 통틀어 10순(巡)을 쏘아 49발을 맞히고 72점을 얻었는데 제1순에 다섯 발 명중에 8점, 제2순은 다섯 발 명중에 7점, 제3순은 다섯 발 명중에 7점, 제4순은 다섯 발 명중에 7점, 제5순은 다섯 발 명중에 6점, 제6순은 다섯 발 명중에 8점, 제7순은 다섯 발 명중에 8점, 제8순은 다섯 발 명중에 7점, 제9순은 다섯 발 명중에 7점, 제10순은 네 발 명중에 7점이었고 또 작은 가죽 과녁을 쏘아 한 순에 다섯 발을 맞혀 7점을 얻고, 또 유엽전 한 순을 쏘아 다섯 발을 맞히고 6점을 얻었다. 이쯤 되고 보니 더 이상은 얻을 수 없는 많은 점수를 획득하여 마치 무엇인가 도와주고 있는 것 같았다.” 하고, 이에 각신들에게 【오재순·서유방·이병모·박우원·서용보·정동준(鄭東浚)·윤행임·서영보·남공철·김조순.】 고풍으로 각기 길이 덜 들여진 말 1필씩 내리고 검서관(檢書官) 이하는 선물을 차등있게 내렸으며, 고풍 지면에다 글을 써서 내리기를, “활 쏘는 기예는 바로 우리 가법이어서 유의하지 않을 수 없는데 10여 년 이래로 10순을 다 쏘는 일은 계속하지 않다가 근일에 와서 팔의 힘을 시험해보기 위해 몇 차례 10순을 다 쏘아보았는데 10순에 40여 발이 명중되어 고풍을 내렸더니 경들이 전을 올려 축하하기에 내가 장난삼아 말하기를 ‘49발까지 맞히면 그 때 가서 고풍을 청하라.’ 했었는데 오늘 명중한 화살 수가 약속했던 그 수와 맞아떨어졌기에 문방(文房) 용구와 마첩(馬帖) 등을 제신들에게 나누어 줌으로써 전에 했던 말을 실천하려는 것이었다. 그런데 경들이 이미 축하 전을 올렸으니 또 고풍으로 답을 해야겠다. 그리고 겸하여 바른 마음으로 조정에 서줄 것을 권하고 싶은 것이다. 《시경》에 이르기를 ‘덕에는 반드시 보답이 있다.’ 하였고 또 이르기를 ‘이에 다툼이 있지 않으니 왕의 마음이 편안하다.’고 하였는데 바로 그 뜻인 것이다.” 하고, 또 끝에다 낙관하기를, “이날 등불 아래서 생각나는 대로 쓴다.” 하였다. 그리고 이어 제신들과 연구(聯句)를 하였다.

시나리오

정조

1. 궁전 활 터
정조가 사대에 올라 활을 쏘고 있다.
화살을 연달아 쏜다.
과녁에 꽂히는 화살.....


내레이션 : 정조는 청년시절부터 활쏘기를 즐겼다. 독서를 하다가 틈을 내서 활쏘기를 한 것 이 아니라, 별도로 시간을 정해놓고 규칙적으로 활터에 나가 활을 쏘았다. 그의 활솜씨는 10발을 쏘면 9발을 명중시킬 정도로 뛰어났다.


대신1 : 전하! 과연 명궁이십니다!
정조 : 경도 활을 쏘아 보시오.
대신1 : 전하! 소신은 활을 쏘아본지 아주 오래되었사옵니다. 활쏘기는 소신에겐 잘 맞지 않 는 듯 하여, 소신은 글 읽기에만 전념하고 있사옵니다.
정조 : 문신이라고 해서 무예 닦기를 소홀히 하면 안된다고 생각하오. ‘수신제가 치국평천하’ 라고 하질 않소? 문과 무가 다 똑같이 수신하는 방법이 아니겠소? 건강한 몸에서 건강한 정신과 덕이 나오는 법. 문신들도 여가에 활쏘기를 하여 무덕을 익힌다는 생 각을 갖기 보다는, 무예 그자체를 열심히 익혀 몸과 정신을 두루 건강하게 갖는 것 이 좋겠소.
대신들 : 전하! 명심하겠사옵니다!


2. 동 장소
정조, 화살을 쏘고 있다. 마지막 화살 한 대가 남자, 사대에서 내려온다.


대신 : 전하! 아뢰옵기 황송하오나, 마지막 화살 한 대는 어찌하여 안 쏘시고 그만 내려오시 는지요?
정조 : 짐은 항상 화살 50대를 들고 나가오. 하지만 마지막 한 대는 남기는 걸 원칙으로 삼 고 있다오.
대신1 : 소신은 그 점이 무척 궁금하옵나이다.
정조 : 허허. 그림을 생각해 보시오. 화가가 그림을 그릴 때, 화폭 전체를 다 그림으로 채워 넣지 않질 않소?
대신1 : 아. 여백을 남기는 것과 같이 전하께오서도......
정조 : 하하. 꽉 채우기 보다는 여백을 남기는 편이 인생의 멋이 아니겠소?

안택순

안택순 (사대부) : 흥취의 활쏘기 - 醉射

안택순은 고종 때의 서울 사람으로 허리춤에 술통을 달고 다니며 거리를 배회했던, 늘 술의 흥취에 빠져 지냈던 고주망태 명궁이다. 빨갛게 변해 버린 코와 풀려버린 눈동자 그리고 之의 비틀거리는 보행 자세는 그가 활을 쏠 수 있을까 하는 의심마저 들게 한다. 술기운을 이기지 못하여 반쯤 열린 입은 언뜻 보면 미소를 연상케 하며, 여유로운 모습까지 볼 수 있으나 그의 손에 활이 들리면 상황은 달라진다. 사정에 올라서 시위를 당기며 과녁을 바라보는 모습은 진지하기 이를 데가 없으며, 화살을 떠나보낼 때는 평소보다 2-3배 크게 눈을 뜨고 표적을 노려보며 정신을 바짝 차려서 화살이 목표를 명중시킬 때까지 무인의 기질은 유감없이 드러났다.

원천자료

이중화, 『조선의 궁술』, 신한서림, 1970.

安宅舜은 漢城에 世居하니 高宗時人이라 善射하야 常히 一劃五十矢의 矢數를 射하며 酒를 醉하기 好하야 醉하지 안이한 日이 無하며 泥醉昏迷하야 酒力을 不勝하나 弓을 執하고 亭에 登하야 弦을 控하고 滿開할 에도 昏迷一楊에 身이 風搖의 樹와 如하되 바야흐로 離箭할 時를 當하야 眼을 忽開하고 精神을 抖擻하야 放箭한 즉 虛發의 無함이 平時와 如하얏다 하도다.

원문번역

안택순은 고종 때 사람으로 서울에서 대대로 살았다. 활을 잘 쏘아서 늘 한 획 50시의 시수를 쏘았으며, 술을 좋아하여 취하지 않은 날이 없었다. 엉망진창으로 취하여 정신까지 오락가락하며 술기운을 이기지 못하지만 활을 잡고 사정에 올라서서 시위를 당기고 만개할 때에는 혼미한 모양이 바람에 흔들리는 나무와 같은데, 바야흐로 화살을 떠나보낼 때는 눈을 번쩍 뜨고 정신을 차려서 화살을 날리면 빗나가는 것이 없는 모양이 평상시와 같았다.

시나리오

안택순
1. 서울의 한 거리
안택순이 취해서 건들거리며 걷는다. 허리춤의 술병을 들어 술을 한 모금 마신다.
그의 어깨엔 활과 깍지통이 둘러메어 있다.


건달1 : 어이! 걸음도 못 가누면서 활은 무슨 멋으로 메고 다녀?
안택순 : 너희가 내 경지를 어찌 알 것인가! 술 마시고 활을 메고 걸으니 신선이 따로 없구 나!
건달2 : 얼씨구. 입 있다고 씨부려대긴.
건달1 : 어디 활 좀 줘봐. 고주망태가 활을 메고 다니면 누가 무서워 할 줄 알고?
안택순 : 내 너희들 길을 방해하지 않았으니, 너희들도 내 길을 방해하지 마라.
건달1 : 어쭈! 이게!


건달1, 2 덤벼들어 안택순을 친다.
이때 맞은편에서 제자가 오다가 이 광경을 발견한다. 제자, 건달1, 2를 무술로 제압한다.
나가떨어지는 건달들.


제자 : 이놈들이 어디서 까불어?
건달들 : 자, 잘못했습니다!


건달들, 걸음아 날 살려라, 하고 도망친다.

부낭

부낭 (여성) : 여성 무사 - 狩獵射, 騎射

부낭은 평안도 자성에서 태어난, 목축과 수렵으로 업을 삼는 가정의 무남독녀이다. 검게 그을린 얼굴과 거친 손 그리고 중성적인 성격은 얼핏 보면 남자로 오인하기 쉽다. 그러나 가녀린 몸매와 다소곳한 자태, 낭랑한 목소리 등은 그녀가 미인임을 확신케 한다. 하늘이 그녀에게 내려준 축복 중에 하나는 바로 남성들을 능가하는 무예, 특히 사예와 지략이다. 섬세하면서도 부드러운 그녀의 기질은 뛰어난 계략뿐만 아니라 백발백중의 활솜씨에서도 그대로 드러나며, 기사 시 긴 머리의 작은 체구가 뿜어내는 궁력을 가히 폭발적이다.

원천자료

안 확(심승구譯), 『자산 안확의 조선무사영웅전』, 한국국학진흥원, 2005.

부낭(夫娘)은 평안도 자성의 여자이다. 가세가 목축ㆍ수렵으로 업을 삼으니 이로 인하여 낭 또한 기사(騎射)에 능하였다. 낭이 무사(武事)를 즐겨하여 매양 목장에서 아이들과 대오를 지어 군사놀이를 하되, 스스로 말을 타고 대장이 된 후 나뭇가지로 궁시와 창칼과 기계 등을 만들어 여러 아이에게 나누어 주고 호령과 규율을 정돈하였다. 그 아비가 질책하여 가로되, “이는 남자의 일이다. 네 본분을 돌보지 않고 이를 배워 무슨 소용이 있느냐?” 하매, 낭의 말이 “훗날에 나라의 원수가 생기면 마땅히 부친을 대신하여 종군하리다.” 하였다. 이후 날로 더욱 무예를 연습하였으며 야간에는 문자를 배워 병사를 공부하였다.

원문번역

안 확(심승구譯), 『자산 안확의 조선무사영웅전』, 한국국학진흥원, 2005.

부낭(夫娘)은 평안도 자성의 여자이다. 가세가 목축ㆍ수렵으로 업을 삼으니 이로 인하여 낭 또한 기사(騎射)에 능하였다. 낭이 무사(武事)를 즐겨하여 매양 목장에서 아이들과 대오를 지어 군사놀이를 하되, 스스로 말을 타고 대장이 된 후 나뭇가지로 궁시와 창칼과 기계 등을 만들어 여러 아이에게 나누어 주고 호령과 규율을 정돈하였다. 그 아비가 질책하여 가로되, “이는 남자의 일이다. 네 본분을 돌보지 않고 이를 배워 무슨 소용이 있느냐?” 하매, 낭의 말이 “훗날에 나라의 원수가 생기면 마땅히 부친을 대신하여 종군하리다.” 하였다. 이후 날로 더욱 무예를 연습하였으며 야간에는 문자를 배워 병사를 공부하였다.

시나리오

부낭
1. 산 속
아버지와 어린 부낭이 말을 타고 달린다. 아버지가 활을 쏘아 꿩을 떨어트린다.


부낭(어린) : 와! 아버지! 벌써 꿩 다섯 마리째에요!
아버지 : 하하. 꿩을 내다 팔면 양식을 좀 장만할 수가 있겠구나.
부낭 : 아버진 최고의 사냥꾼이야. 나도 크면 아버지처럼 사냥꾼이 될래. 그래서 곰이랑 멧 돼지랑 많이 많이 잡을 거야.
아버지 : 이녀석이. 넌 여자니까 시집가서 살림을 해야지. 사냥은 사내들이 하는 거다. 알겠 니?
부낭 : 피. 난 말 타고 사냥하는 게 재밌어요. 뭐, 여자라고 맨날 바느질이나 하고 빨래만 하 라는 법이 있나 뭐.
아버지 : 아, 물론이지. 남자, 여자가 제각각 할 일이 따로 있는 법이다. 녀석, 꼭 선머스마 같아가지고, 누구한테 시집갈지 걱정이다.


2. 산 기슭
부낭이 사내애들을 모아놓고 병정놀이를 하고 있다. 말을 타고 아이들에게 호령을 한다.


부낭 : 난 너희들의 대장이다! 졸병들은 대장 말에 무조건 복종하는 거, 알지?
소년1 : 알았어. 우리 중에 너 혼자만 말을 탈 줄 아니까 네가 대장이야.
소년2 : 치. 계집애가 대장 하는 게 어딨냐?
부낭 : 뭐, 계집애? 너, 말 다했어?
소년2 : 아니, 난 그냥......
부낭 : 다시 그딴 소리 한번만 해봐라. 땅바닥에 패대기칠 테니. 아니, 병정놀이에 다신 안 끼워줄 테다. 알았지?
소년2 : 아, 내가 잘못했어........
부낭 : 전쟁에서 이길려면 활쏘기, 칼쓰기를 잘해야 해. 오늘은 활쏘기 훈련을 한다. 활들 준 비해 왔어?
소년1 : 실은....준비 못했어. 아버지가 활을 안 만들어 주지 뭐야? 조그만 게 무슨 활이냐고.
부낭 : 어휴, 이 바보들. 활 갖고 온 사람, 아무도 없니?
소년들 : 응......
부낭 : 에이. 알았어. 내가 활하고 화살을 만들어줄게.
소년1 : 뭐? 활도 만들 줄 알어?
부낭 : 그럼. 아버지가 만드는 걸 보고 배웠는걸. 다들 나뭇가지를 꺾어 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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