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홈
  • 문화원형 라이브러리
인쇄 문화원형 스크랩

처인성전투

농민들의 대몽항전 농민들의 대몽항전
불가사의한 대몽승첩

1232년(고종19) 용인 처인성 전투는 고려의 대몽전 사상 가장 극적이면서도 불가해한 수수께끼를 안고 있는 대몽승첩 사례다.
처인성이 위치했던 처인부곡은 오늘날의 경기도 용인시 남쪽지역 일대다. 처인성은 낮은 구릉지에 토축된 길이 4백 미터 정도의 작은 성에 불과하다. 그리고 논을 사이에 두고 처인성과 정면으로 상대되는 아곡리의 구릉지에는 몽장 사르타크(살례탑, 撒禮塔, Sartag)가 화살을 맞고 사살되었다는 장소인 ‘살장(殺將)터’라는 곳이 지금도 전한다.

처인성전투 처인성전투
처인성 전투의 의의

처인성 전투에서 사르타크(살례탑)군을 무찔러 공훈을 세운 이는 백현원의 승려 김윤후다. 그러나 결코 그 한 사람에 의한 것은 아니었다. 처인부곡민 다수가 이곳에서 김윤후와 힘을 합쳐 몽골군의 공격에 대항했던 것이다. 처인부곡은 1232년 승첩 이후 1260년에 이르는 사이에 부곡에서 주현(主縣)으로 승격됐는데, 이는 1232년 승첩에 대한 보상으로 주어진 것으로 보인다.
처인성 전투는 순수한 지역주민들의 자위적 항전이었다. 지역민들의 자율적 능력이 유감없이 발휘되어 역사의 전면을 장식하는 것은 대몽항전이 갖는 중요한 특성이다. 처인성 승첩은 그중 가장 대표적이며, 최초의 예에 해당한다는 점에서 큰 의의가 있다.


[ 윤용혁, 1232년 용인 처인성에서의 대몽승첩 ]



- 몽골제국의 이름은 ‘몽골’로 통일해 표기했다. 단, ‘인용문헌 내용’과 ‘참고문헌의 제목’ 등은 원문에 충실했기 때문에 ‘몽고(蒙古)’로 표기되기도 했다.
- 몽골사람 이름은 처음 나올 때 ‘현 몽골발음표기(일반적인 발음표기, 한자표기, 알파벳표기)’로 표기했고, 두 번째부터는 ‘현 몽골발음표기(일반적인 발음표기)’로 표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