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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 사절, 대당전쟁 경과를 알려오다

시대 : 661
인물 : 일본 조정, 당군
신분 : 일본에 간 고구려 사절

시대적 배경

백제를 무너뜨린 당과 신라는 곧바로 고구려 공격에 나섰다. 나당연합군의 고구려 공격은 크게 두 가지 방면에서 전개되었다. 하나는 이전처럼 요하를 건너 요동 일대를 거쳐 압록강 이남으로 진출하려는 당군과, 다른 하나는 바다를 건넌 당군이 신라군의 지원 아래 고구려 수도 평양성을 직접 공략하는 것이었다. 이에 맞서 고구려는 압록강 이북의 요동 방면을 고수하기 위한 방어선을 정비해야 하였고, 다른 한편으로는 평양성 일대로 침입해 온 당군을 격멸해야 하는 어려움에 처하였다. 특히 고구려의 남쪽에서 신라를 견제해줌으로써, 고구려의 남방전선에 대한 위협을 저지해주던 백제가 사라진 지금, 고구려의 대당항전은 어려움이 클 수 밖에 없었다. 이러한 고구려와 나당연합군 간의 공방전은, 당시까지 직접적인 행동에 나서지 않고 있던 일본이 백제부흥운동을 지원하기 시작하면서, 전혀 다른 국면으로 발전해 나간다. 일본의 새로운 움직임은 특히 수세에 몰려 있던 고구려측에게는 커다란의미가 있었다. 이에 고구려는 대일본 외교를 통해 일본과의 관계를 긴밀히 하고 일본측의 적극적인 참전을 이끌어 내려 하였다. 평양성 공방전의 소식이 곧바로 일본 조정에 알려진 까닭도 여기에 있다.

세부 사항

《일본서기》에 따르면 고구려가 전해온 정보는 다음과 같았다. ‘이 해 고구려국은 몹시 추워 패강이 얼었고, 당군은 운제와 충차를 내세워 성을 공격해 왔다. 그러나 용감한 고구려군이 당군의 공세를 격파하였고, 뿐만 아니라 성 밖의 당군에게 반격을 가하여 보루 2개를 손에 넣을 수 있었다. 당군은 무릎을 껴안고 울 정도로 진지를 잃고 추위에 노출되는 곤경에 빠졌다’고 하였다. 당시 평양성 방면에서는 소정방이 이끈 당군이 고구려 수도를 공략하고 있었으나, 고구려군의 완강한 저항에 밀려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었다. 또한 남쪽에서 소정방군과 합류하려던 신라군의 진출도 백제부흥군 때문에 용이하지 못하였다. 이에 소정방군은 김유신의 결사대가 전해준 보급품을 받은 직후, 철군하고 말았다. 자세한 경과에 대해서는 소개되지 않고 있지만, 《일본서기》의 내용은 당시 평양성 일대에서 전개되고 있던 전황의 대체를 전하여 준다. 즉 고구려는 혹독한 날씨 속에서 양측의 공방전이 벌어졌다는 것, 당군의 공격이 실패로 돌아가고 당군이 곤경에 처하여 있다는 등, 고구려가 전황을 유리하게 이끌고 있음을 곧바로 알려주었다. 이를 통해 고구려는 일본측이 적극적으로 나당연합군에 대항하여 고구려를 필두로 한 반나당연합전선에서 일익을 담당하여 줄 것을 기대하였던 것이다.

참고 문헌

《일본서기》 27, 천지천황 즉위년, 12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