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홈
  • 문화원형 라이브러리
인쇄 문화원형 스크랩

동북항일연군특무공작대와 간도협조회

시대 : 1926
인물 :
신분 :

세부 사항

방대근은 항일연군 사령부 직속으로 특수임무를 맡고 있었다. 만주에는 밀정이나 친일분자들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항일유격전이 계속괴면서 변절자나 투항자들이 늘어나고 있었다. 그들은 변절이나 투항으로 배신을 끝내는 게 아니었다. 부대의 기밀을 적에게 넘겨주었고, 적의 길잡이 노릇까지 하면서 2차의 배신을 저질렀다. 일본군은 그들에게 특별대우를 해주면서 초대한 이용해 먹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 그들은 정작 일본군보다 더 무서운 적이었다. 한 사람의 배신으로 수십명 수백명이 죽을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니까 어느 부대에서나 변절자나 투항자가 생겼다 하면 신속하게 부대를 이동시켜야 했다. 항일연군에서는 밀정과 악질 친일배들을 포함하여 그런 자들을 색출하고 제거하는 별동대로 특무공작대를 가동 시키고 있었다. 방대근은 그 별동대 대장이었다. 항일연군에서는 신흥무관학교를 거친 의열단 출신이라는 그의 경력을 필요로 했던 것이다. 특무공작대의 활동영역은 어디에 한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항일연군 부대들이 활동하고 있는 전역에 걸쳐 있었다. 그 임무는 고달프면서도 위험하기 이를 데 없는 일이었다. 방대근의 휘하에는 5명을 단위로 하는 네 개의 소부대가 구성되어 있었다. 그 행동대는 활동영역을 네 개로 분할하고 있었다. 그리고 각 소부대마다 부대장을 두었다. 이광민은 남만주 일대를 맡은 제1대의 부대장이었다. 그 대원들은 모두 젊고 건강하며 담이 큰 사람들이었다. 그런데다 특수훈련을 받아서 모두가 민첩하고 용감했다. 방대근은 그들 모두가 정신적으로나 전술적으로나 의열단원들의 수준을 갖추게 하려고 최선을 다했다. 방대근은 제2대를 이끌고 용정의 공동묘지 뒷산에서 밤이 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간도협조회 회장 김동한을 처치하기 위해서였다. 간도협조회의 공식명칭은 '공산주의 조직 파괴공작단체 간도협조회'였다. 그건 민생단 사건으로 공산당 빨치산부대들과 당조직이 흔들리고 있는 것을 확인한 일본헌병대가 그 내분을 더욱 격화시키기 위해 1934년 9월에 발족시킨 것이었다. 그런데 회장을 맡은 김동한은 소련계 조선사람이었다. 그는 소련군 장교로 근무하다가 스탈린 숙청정책의 하나인 트로츠키주의자로 몰려 블라디보스토크 감옥에서 몇 년 징역살이를 하고 석방되어 소련을 탈출했다. 만주땅 간도에 자리잡은 그는 철저한 반공주의자로 변신하게 되었다. 간도협조회에서는 헌병대가 지원하는 자금으로 공작원들에게 한 달에 25원에서 30원의 고정급을 지급하고 또 공작금은 따로 대주면서 항일유격대의 파괴공작을 감행했다. 그 공작에 휘말려 항일유격대 내의 민생단 처형이 더욱 가열된 것은 더 말할 것도 없었다. 방대근 일행은 용정에 잠복해 있는 제2로군의 고정책이 나타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용정과 국자가의 경비는 더욱 강화되어 밤에도 스며들기가 위험했던 것이다. 방대근의 별동대는 언제나 현지의 유격대와 긴밀하게 협조하며 작전을 수행하고 있었다. 각 군에서는 제거해야 될 자들을 색출하거난 지목하는 동시에 그에 대한 자세한 정보를 방대근의 특무공작대에 넘겨주었다. 각 군에서는 예하부대대마다 신속하고 치밀한 연락망을 짜놓고 있듯이 아무리 경계가 심한 곳이라고 해도 고정첩보원들은 꼭 심어놓고 있었다. 제1로군에서부터 제11로군까지 종횡무진하고 있는 방대근은 일본군에게 신분이 노출되는 것을 막기 위해 각 군에 따라서 이름을 바꾸고 있었다. 그러나보니 역 개가 넘는 가명을 사용했는데, 절반은 조선식 이름이었고 절반은 중국식 이름이었다. 그 작명도 쉬운 일은 아니었지만 방대근은 '백호'라는 이름은 쓰지 않았다. 그건 송수익 선생이 내리신 별호라 가슴에 깊이 담아 아끼고 싶었던 것이다.
어둠 속에서 인기척이 들렸다. 그리고 돌로 돌을 치는 소리가 똑·똑 네 번 울렸다. 방대근은 얼른 돌은 세 번 쳤다. 그리고 두 번재 암호를 던졌다. "백두산" "천년 산삼" 어둠 속에서 응답한 암호였다. "안 동지, 이쪽이오, 이쪽." 방대근은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 "오래 기다리셨지요. 헌데 저어……, 오늘 밤엔 안되겠는데요." 어둠 속에서 나타난 사람이 말했다. "무신 일이 생겼소?" "예, 긴급회의가 소집돼 잔치가 취소됐습니다." 헌병대장의 생일잔치에서 술취해 돌아오는 김동한을 처치하기로 했던 것이다. "이 일을 어떻게 하지요?" "얼매간 더 살게 둡시다." "며칠 머무시면서 기회를 다시 보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그럴 여유가 없소. 딴 임무가 또 있응게. 담에 또 봅시다." 방대근의 말은 칼날이었다. "예, 알겠습니다. 무사히 가십시오." 그들은 헤어졌다. 방대근은 용정 시가지의 먼 불빛들을 보며 대원들을 이끌었다. 용정, 북간도에서 가장 번화한 도시. 친일모리배들이 우글거리는 소굴. 방대근은 고개를 돌렸다. 김동한을 집으로 치고 들어가 처치할 수 없는 것이 문제였다. 그는 간도협조회 회장을 하는 덕으로 정원이 7백 평이나 되는 저택에서 호화롭게 산다고 했다. 그러나 지은 죄가 무서웠던지 집 안팎의 경비가 삼엄하다는 것이었다. 사나운 개들을 여러 마리 키울 뿐만 아니라 밤에는 무장한 협조회 회원들이 보초를 선다는 것이었다.

참고 문헌

《아리랑》 제10권, pp194~19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