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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근환

시대 : 1922
인물 : 양근환(梁槿煥), 민원식(閔元植)
신분 : 독립운동가

세부 사항

양근환은 황해도 연백(延白)사람이다. 그는 천도교(天道敎)를 믿었으며, 3?1독립운동에 앞장 섰다가 그해 9월 일본으로 건너가 조도전(早稻田)대학 정치경제과에 입학하여 공부를 하였다. 이즈음 고양(高揚)군수를 지내고 총독부의 부찬의(副贊議) 직함을 가지고 있는 민원식(閔元植)이 친일단체인 국민협회의 회장이 되어 참정권 운동을 한다는 소식이 전해지고 1921년 봄 직접 동경으로 와서 참정권 운동을 펴기 위해 일본 정부와 의회에 내는 청원서는 이미 1만여명의 서명을 얻었으며 각계 각층을 방문하면서 목적달성을 위하여 맹활동을 펴고 있다는 소식이 연일 신문지상에 보도되었다.
그는 민원식을 민족의 이름으로 처단할 것을 결심하고는 2월 16일 정오경 비수를 간직하고 민원식이 거처하는 제국호텔로 찾아가 유학생동우회의 이기영(李基寧)이라는 이름으로 면회를 청하였다. 이때 민원식은 청원서에 많은 서명을 위하여 사람들을 만나고 있었다. 우선 동우회에서 환영회를 계획하고 있다고 하여 민원식을 안심시킨 뒤 다시 국내사항을 묻자 민원식은 "국내는 아주 평온하지?" 하며 거만스러운 태도로 나왔다. 그는 이때 큰 소리로 "지금 온 겨레가 모두 일어나서 독립을 부르짖는데 어찌 평온하다고 할 수 있는가? 당신은 조선사람이 아닌가? 당신은 정말 우리나라를 배반하는 자이다." 하고 호통을 쳤다. 이에 민원식이 놀라 흥분하며 "독립운동이라고? 상해에 있는 놈들은 모두 폭도이다. 이자들이 어떻게 독립을 한다는 거야"하고 지껄였다. 그는 기회를 놓치지 않고 품속에 감추었던 칼을 뽑아 민원식을 찔러 처단하였다. 거사에 성공한 후 그는 피신하여 동년 2월 24일 장기(長崎)에서 상해로 가는 팔번환(八幡丸)에 승선하려다 일경에 피체되었다. 1921년 6월 30일 동경지방재판소에서 무기징역을 언도받아 항소하였으나 1922년 5월 4일 동경공소원(東京控訴院)에서 무기징역이 확정되어 동경감옥에서 12년간 옥고를 치르다가 1933년 2월 11일 출옥하였다. 1945년 8?15광복이 되자 환국하여 혁신탐정사(革新探偵社)와 건국청년회(建國靑年會)를 조직하여 반공운동을 전개하였다.

참고 문헌

《東亞日報》
國史編纂委員會, 《韓國獨立運動史》 1∼5, 1965∼1969.
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독립운동사자료집》 7, 1976.